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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름한 단칸방 숙소가 인기 폭발한 이유…특별한 '질문'의 힘 [스프]

[오프 더 모먼트] 최재원 (플랫폼 라이프쉐어 · 브랜드 이너시티 대표)
라이프쉐어
바쁜 현대인들의 일상 속에서 자신을 돌보는 잠깐의 '틈'을 만들어갈 수 있도록, 마음을 돌보는 일상의 라이프스타일을 제안합니다. 성인 4만 4천 명을 상담했던 장재열 상담가가 자신의 삶에서 소진을 겪었던 전문가를 만나 일상 속 멈춤과 쉼의 비결에 대해 묻습니다.
인터뷰어 : 장재열 (상담가 겸 작가, 월간 마음건강 편집장)
인터뷰이 : 최재원 (플랫폼 라이프쉐어 · 브랜드 이너시티 대표)

여러분은 '질문'이라는 단어를 들으면 어떤 장면이 가장 먼저 떠오르시나요? 취업 면접? 혹은 "먹고 갈 건가요, 포장해 가실 건가요?"라고 묻는 매장의 직원? 아니면 이제 막 서로를 알아가는 풋풋한 연인들이 주고받는 설레는 대화일 수도 있겠죠? 우리는 '질문'이라는 단어에서 떠올리는 이미지가 참 각양각색입니다. 질문은 그 자체로는 단순한 '말'에 불과하지만, 의도와 형식에 따라 아주 다양한 의미를 가질 수 있기 때문이지요. 마치 누가 어떻게 사용하느냐에 따라 재앙이 되기도 하고, 삶의 필수 요소가 되기도 하는 '불'과도 같다고 할까요? 누군가에게 가슴을 후벼파는 공격적인 상처가 될 수도, 한 사람을 살리는 아주 따스한 연결이 될 수도 있는 질문. 그 질문이 가진 힘을 믿는 사람, 그리고 그 힘을 통해 전문가가 아닌 보통의 일상을 사는 우리들도 서로를 치유하고 회복하는 존재로 거듭날 수 있게 하는 사람. '라이프쉐어', '이너시티'라는 브랜드를 통해 세상과 사람을 연결하는 최재원 님을 모셨습니다.

장재열(이하 장) : 안녕하세요, 간단한 소개 부탁드립니다.

최재원(이하 최) : 반갑습니다. 대화카드인 라이프쉐어, 웰니스 공간인 이너시티를 만든 최재원입니다. 사람들 사이에서 좋은 감정적 연결이 일어날 수 있는 장면을 만드는 걸 좋아하는 사람이고요. 스스로를 웰니스 프로듀서라고 말하고 싶네요.

장 : '웰니스 프로듀서'는 좀 신선한 이름이에요. 이건 스스로 만든 직함인가요?

최 : 네, 제가 만든 직함이에요. 사실 '기획자'라는 말도 좀 모호하고, 크리에이터라 하자니 뭔가 콘텐츠 중심 같고. 저는 콘텐츠보다도 그걸 통해서 일어나는 감정의 움직임, 사람들 사이의 연결에 더 집중하고 싶었거든요. 그래서 '웰니스'라는 개념과 '프로듀서'라는 실행자의 의미를 결합해서 소개하게 됐어요. 말하자면, 좋은 사람, 좋은 감각, 좋은 자원을 잘 섞어서 장면을 기획하고 연출하는 사람이라고 생각하면 될 것 같아요.

장 : 그러고 보니 맨 처음 커리어의 시작점도 기획하는 일, 광고 회사였었죠? 언젠가 이 시기를 일컬어 '회색 인간'이라는 표현을 쓰셨던 게 기억나요.

최 : 맞아요. 대기업 계열 광고 대행사에서 AE로 시작했어요. 처음에는 뭔가 '크리에이티브'에 대한 환상이 있었죠. 그런데 어느 순간부터 '이건 아닌데' 싶더라고요. 어느 날 출근길에 문득 든 생각이 그거였어요. "나는 지금 안테나를 꺼둔 채, 그냥 몸만 출근하고 있구나." 말 그대로 회색 인간이 된 기분이었어요. 조직개편이 있었던 시기에, 정말 최선을 다해서 일했던 선배들이 모두 좌천되는 걸 봤어요. 예초기가 일정 수준 이상의 자란 풀은 예외 없이 잘라버리잖아요. 선배들은 연봉도 높고 연차도 쌓인 잘려 나가는 풀이었고, 저는 아직 덜 자라서 예초기 칼날에 닿지 않았던 거예요. 오히려 더 좋은 부서로 발령이 났지요. 그런데 저 혼자만 살아남았다는 죄책감이랄까요. 그리고 내 미래일 수도 있다는 불안감도 오더라고요. 그러면서도 겉으로는 잘나가는 회사, 탄탄한 연봉, 간판이라는 게 있으니까... '내가 이걸 놓으면 손해 보는 거 아닐까?' 하며 못 벗어나는 상태였죠.

장 : 그런데 바로 이 회사를 그만두고 웰니스를 시작하신 게 아니라고 알고 있거든요. 음반회사로 이직을 한 번 더 하셨던 걸로 아는데, 그 회색 인간을 벗어나야겠다고 느낀 결정적 순간이 있었던 걸까요?

최 : 맞아요. 어느 날 퇴근하고 집에서 멍하니 TV를 틀었는데, 우연히 어떤 밴드 경연 프로그램이 나오더라고요. 그런데 무대 위에 있던 프런트맨이, 고등학교 때부터 알고 지내던 친구였어요. 같이 노래방 가고, 음반 얘기하고, 둘 다 음악 좋아했는데 저는 '현실'을 선택했고, 그 친구는 자퇴까지 하면서 음악을 택했던 사람이었어요. 근데 그날 무대 위에서 그 친구는 눈이 살아 있었고, 저는 소파에 앉아서 '죽은 눈'으로 그걸 바라보고 있었죠. 가슴 안쪽에서 숯덩이 같은 게 타오르는 기분이었어요. 그날 밤 많이 울었어요. 부끄럽고, 슬프고, 답답하고... 너무 복잡했어요.

장 : 그 장면이 결정적인 계기가 되었던 거군요.

최 : 네, 그날 이후로 '지금 아니면 진짜 안 된다'는 마음이 들었어요. 그래서 퇴사를 결심하고, 음악 제작사로 이직했어요. 아티스트의 앨범을 기획하고, 곡을 고르고, 콘셉트를 정하고, 제작을 관리하는 A&R(Artists & Repertoire) 역할이었죠.

장 : 현실은 어땠나요?

최 : 굉장히 가혹했어요. 일단 돈이 안 됐어요. 연봉이 거의 절반 이하로 줄었고요. 무엇보다 조직 내 분위기가 이전 직장과는 달랐죠. 제가 나름 광고 회사에서는 똑똑한 사람이라고 생각했는데 그건 예산과 시스템이 갖춰져 있었기 때문이더라고요. 저 자신이 완전히 제로에서부터 해야 하는 것은 전혀 다른 상황이었고, 거기에 조직문화도 전혀 달라서 당시의 제 눈에는 굉장히 험해 보였다고 할까요?

가족의 반대도 심했는데, '잘못 온 게 아닐까' 고민하던 차에 심지어 어머니가 갑자기 뇌출혈로 쓰러지신 거예요. 병원비가 급하게 필요했는데, 월급이 너무 적어서 어쩔 수 없이 부업을 시작했어요. 낮엔 회사 다니고, 밤엔 프리랜서로 광고 프로젝트를 따서 작업을 했죠. 전에 다니던 회사 친구들에게 전화해서, 큰 회사에서 하기에는 조금 작아서 거절한 프로젝트들이 있으면 소개해 달라면서 농가를 살리는 프로젝트도 하고요. 당시에는 필사적으로 이중생활을 하고 있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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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 : 그때 인생의 큰 전환점이 되는 에어비앤비를 그때 시작하신 건가요?

최 : 맞아요. 라이프쉐어가 탄생한 계기가 에어비앤비였는데요. 부업 삼아 당시 살던 투룸 중 하나를 에어비앤비로 돌리게 됐어요. 2평 남짓한 방이었고, 정말 허름했어요. 천장도 낮고, 벽지는 낡았고, 가구는 거의 없었고요. 창문을 열면 바로 옆 건물이 보이는 곳 있잖아요. 그런데 그냥 꾸밈없이 제가 뭐 하는 사람인지 소개 글을 쓰고, 저렴한 가격에 내놓았는데 1박에 1만 오천 원이었어요. 너무 허름했으니까. 그래서 대부분 배낭여행자들이 왔거든요. 그 친구들을 어떻게든 따뜻하게 맞으려고 했는데 저도 당시에 넉넉하지 않았잖아요. 그래서 하는 수 없이 했던 것들이 콘텐츠가 돼버린 거예요. 그리고 입소문을 타고 한국 대표 호스트가 된 거죠.

장 : 어떤 콘텐츠였나요?

최 : 뭘 하려고 한 건 없고요. 제가 퇴근이 늦어지면, "미안한데 나 일하는 데 와서 좀만 기다려줘라"라고 했거든요? 그런데 그게 막 홍대의 라이브 공연장이었던 거죠. 제가 담당하는 아티스트 소극장 공연하면 거기 맨 뒤에 와서 공연 보면서 저를 기다리는 거예요. 이거 자체가 너무 재미있잖아요, 그 친구들 입장에서는. 그러고 나서 끝나면 당시에 많았던 '노가리 1천 원' 이런 가게들에 가요. 거기 가서 노가리에 맥주 먹으면서 제 하소연을 그렇게 했어요. 그냥 너무 사는 게 팍팍하니까. 근데 이 친구들에게는 그런 과정 자체가 너무나 신선한 경험이고 체험이었던 거죠.

친구가 되어버리니까 리뷰에 평가가 아니라 감사 편지를 써주더라고요. 그러면서 '서울이라는 도시에서 가장 인기 있는 숙소', '슈퍼 호스트 중의 슈퍼 호스트' 이런 타이틀을 받았고, 결국 파리에서 열리는 에어비앤비 글로벌 콘퍼런스에 한국 대표로 초청받기도 했어요. 근데 사실 그보다 더 중요한 건, 그 방 안에서 매일 밤 벌어졌던 대화들이었어요. 진짜 대화요. 이름도, 나이도, 직업도 모르는 사람과 맥주 한 잔 앞에 두고 삶을 나누는 시간. 그게 저한테는 무척 소중한 시간이었던 거죠.

장 : 그렇게 계속 에어비앤비를 하다가, 정말 '질문'의 힘을 느끼게 만들었던 특별한 손님이 있었죠? 루카스였나요?

최 : 맞아요. 루카스는 독일에서 공공의료를 공부하고 있는 친구였어요. 환자들이 병원에서 치료받기보다 공동체 내에서 정서적으로 회복될 수 있는 구조, 즉 커뮤니티 케어를 연구하고 있었죠. 정서적 지지가 면역체계나 회복 속도에 얼마나 영향을 미치는지를 연구하는 친구였고, 그래서 대화나 질문을 구조적으로 체계화해서 할 수 있는 사람이었어요. 처음에는 저의 숙소가 너무 인기 있어서 계속 예약에 실패했는데, 꼭 오려고 했던 이유가 '이 숙소는 도대체 뭐지?'라는 생각이 들었던 거예요.

장 : 본인의 연구 주제로 생각하는 그 대화와 보통 사람들 사이의 정서적 회복이 에어비앤비 안에서 일어나니까?

최 : 맞아요. 그렇게 어렵사리 만나서 저와 이야기를 시작했는데, 너무 충격적이었어요. 그냥 '느낌'이 아니라 데이터와 임상 연구로 증명된 이야기들을 들으면서, 동시에 저와 나눈 대화 속에서 '정서적 연결'이 실제로 일어나고 있다 보니까 '아 이게 진짜 큰 힘이구나'를 깨달은 거죠.

장 : 그래서 그 대화를 구조화하고 싶다는 생각이 드셨군요.

최 : 네. 이 대화는 나만의 체험으로 끝내면 안 되겠다는 마음이 들었어요. 그래서 대화의 맥락을 만들고 싶었고, 구조화된 형태로 질문을 준비하기 시작했어요. 그게 라이프쉐어 대화 카드의 시작이었죠. 처음엔 카드 없이 페이스북에 '나는 라이프쉐어라는 거를 경험했는데, 너무 좋아서 함께하고 싶다'라고 올리고 잤는데, 100명이 넘게 신청한 거예요. 저는 당시에 페이스북 친구가 200명 정도밖에 안 되는 평범한 직장인이었거든요. 유명한 사람도 아니었고, 그런데 공유에 공유를 타고 그 작은 2평짜리 저희 집 방 한 칸에 들어올 수 없을 만큼 사람들이 신청한 거죠.

장 : 당시에 첫 라이프쉐어 어떻게 진행했나요?

최 : 지금도 그렇지만 참여자들이 서로에 대해 배경지식을 알지 않은 상태에서, 오직 질문 하나로 대화를 시작해요. "살면서 가장 나를 울렸던 말은?", "지금 내 감정은 어떤 색깔인가?" 같은 류의 질문이요. 그런 질문 하나로 대화가 열리고, 그날 밤 진짜 많은 사람들이 울고 웃고 이틀 밤을 꼬박 새우면서 아무도 집에 안 가고 대화가 이어지는 거예요.

장: 그 대화 속 질문들이 라이프쉐어 대화 카드로 만들어지고, 또 와디즈라는 펀딩 사이트에서 대단한 사랑을 받으면서 2010년대 후반에 세상에 나왔죠. 이제 카드 이야기로 좀 더 들어가 볼게요. 그동안 수많은 사람들이 이 대화 카드를 통해 감정적인 변화를 겪었다고 들었어요. 어떤 이야기들이 있었나요?

최 : 정말 많았어요. 그런데 그중에서도 가장 자주 들었던 반응이 이거예요. "이렇게까지 이야기할 줄 몰랐어요." 질문은 간단한데, 생각보다 깊어요. 예를 들어 "나는 나를 좋아하나요?" 같은 질문이 있어요. 말은 쉬운데, 막상 대답하려면 내가 나를 어떻게 보고 있는지를 돌아봐야 하거든요. 그걸 말로 꺼내는 순간, 자기 자신과 연결되는 경험이 시작돼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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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 : 실제로 그런 질문 하나에 마음이 열리는 걸 본 적도 있겠죠?

최 : 많죠. 기억에 남는 건 한 기업 워크숍에서 한 직원분이 "오늘이 제 인생의 생일 같아요"라고 하셨던 거예요. 그냥 '업무'로 참석한 자리였는데, 질문에 답하면서 울고 웃고 나중엔 서로 포옹까지 하셨어요. 감정을 눌러두고 살다가 처음 자기 얘기를 털어놓은 거였다고 해요.

장 : 감정적 환기, 정서적 해소가 일어나는 거네요?

최 : 맞아요. 한 번은 중년 여성분이 "나는 감정이 없다고 생각했는데, 나도 속이 있더라고요"라고 하셨어요. 그 말이 너무 울컥했어요. 그분은 평생 가족을 챙기느라 자기감정을 미뤄두고 사셨던 거예요. 근데 카드 하나, 질문 하나에 자기감정이 터져 나오는 걸 보고 본인도 놀라셨죠.

장 : 왜 그렇게 깊은 대화가 가능해질까요?

최 : 아마 '익명성'과 '선언'의 힘인 것 같아요. 우리는 처음에 이렇게 말하거든요. "오늘 이 자리는 한 번 보고 다시 보지 않는 자리입니다." 그러면 평소보다 훨씬 용기 있게 말할 수 있어요. 평가, 조언, 해석 없이 그 사람의 이야기를 그냥 듣는 환경이 되니까요.

장 : 익숙한 관계보다 낯선 관계에서 더 솔직해질 수 있는 구조군요.

최 : 그렇죠. 오히려 친구나 가족 앞에서는 숨기는 이야기도, 이 자리에서는 꺼낼 수 있어요. 왜냐하면 '나를 고치려 하지 않고 들어주는 사람'이 있다는 게 사람한테 정말 큰 힘이거든요. 어떤 분은 "나 지금까지 계속 누르고만 살았구나" 하고 깨달으세요.

장 : 결국, 질문 하나가 사람을 열고 회복의 실마리를 제공하는 거네요.

최 : 네, 그래서 저는 라이프쉐어가 그냥 대화 카드가 아니라, '질문을 통한 회복의 매뉴얼'이라고 생각해요. 누구나 할 수 있지만, 아무나 만들 수 없는 장면이 있거든요. 그 장면을 만들 수 있도록 돕는 게 제 역할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그 장면은 카드 외에도 확장이 되더라고요. 지금은 정기적인 리트릿, 워크숍, 기업 강의, 학교 협업, 팟캐스트까지 확장됐어요. 다만 저는 여전히 '장소'나 '시스템'을 키우는 데 집중하기보다는, 매 순간의 '질문'과 '관계'에 더 집중하고 있어요. 몇 명이 오든, 어디서 하든, 그 질문 하나가 누군가의 마음을 열 수 있다면 그걸로 충분하다고 생각해요.

장 : 이제 마무리로 요즘 이야기 조금 더 여쭤보고 싶어요. 최근엔 '이너시티'라는 새로운 브랜드도 만들고, 명상 쪽으로도 활동 영역이 확장된 것 같아요.

최: 맞아요. 사실 명상이라는 단어는 제게 너무 익숙한 거였어요. 어릴 때부터 집안이 정통 불교 집안이었거든요. 어머니는 매일 아침 금강경 사경을 하시고, 아버지는 정토회의 초기 멤버셨고, 저도 분류 학교에 다녔어요. 애들은 여름 성경 캠프 가는데, 저는 여름 불교 캠프 가고, 퀴즈 대회 나가고 그랬죠. 그러다 보니 '명상'이라는 걸 들으면 오히려 '답답하다', '억눌린다'는 느낌이 있었어요. 하고 싶을 땐 못 하게 하고, 말하면 안 되고, 움직이면 안 되고. 그래서 한동안은 오히려 거부감이 들었어요.

장 : 그러다 다시 명상을 붙잡게 된 이유가 궁금해지네요.

최 : 해외에 나가서 알게 된 거죠. 유럽이나 인도 같은 데서 접한 명상은 너무 다르더라고요. 절제나 무소유 중심의 고전적 명상이 아니라, 감정을 허용하고, 애고를 절제하는 게 아니라 오히려 애고에게 물을 부어주는 방식이랄까요. 감정을 다 쏟아내게 하고 나서 그 텅 빈 상태에서 진짜 고요한 코어로 들어가는 구조. 춤이나 노래, 움직임과도 결합되는 액티브 메디테이션(Active Meditation)이라고 부르는 다양한 방식들이 너무 매력적이었어요. 저처럼 감정이 많은 사람한테 딱 맞는 방식이더라고요.

장 : 그러니까 대화와 감정의 흐름이 명상과 연결된 거군요.

최 : 맞아요. 저는 늘 누군가와 깊이 있는 대화를 나누면서 정서적 해소를 경험했는데, 그게 곧 명상이더라고요. 마음을 비우는 게 아니라, 마음을 통과해서 도달하는 고요함. 그게 저한테는 '명상'이었어요.

장 : 그렇게 해서 '이너시티'라는 브랜드가 태어난 건가요?

최 : 네. 사실 제가 한동안은 재정도 안 좋고, 정신도 불안정하고, 라이프쉐어 브랜드가 너무 공공적으로 되니까 그 안에서 제 개성을 못 드러내겠더라고요. 그래서 새롭게 또 다른 나를 담은 브랜드를 하나 만들고 싶었어요. '잘하려고 하지 않아도 되는', 나 같은 사람들을 위한 콘텐츠. 그래서 만든 게 이너시티예요. 이름은 'Inner City', 즉 '내면의 도시'이자, 'Inner Sincerity', 진심 어린 내면이라는 의미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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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 : 지금은 그 가치를 어떤 식으로 구현하고 계시나요?

최 : 정릉이라는 동네에 10년 된 한옥을 매입해서 이너시티 리트릿 공간을 만들었어요. 북한산 자락에 개천 흐르고, 햇살 잘 드는 작은 공간이에요. 여기서 명상 모임도 하고, 대화 워크숍도 하고, 가끔은 식물을 소재로 엠비언트 음악 명상도 열어요. 최근엔 '구해줘! 홈즈'에도 나왔고, 서울시 로컬 크리에이터, 한국관광공사 친환경여행지에도 선정됐어요. 관심은 많이 받았지만, 저한텐 여전히 '누군가에게 쉼이 되는 공간'으로 남아 있으면 좋겠다는 마음이에요.

장 : 앞으로의 계획이나 바람이 있다면요?

최 : '성장'보다는 '지속'에 가까운 바람이 있어요. 더 많이, 더 크게 하기보다 오래, 깊게 하고 싶어요. 오프라인 기반으로 질문과 감정을 나누는 시간을 계속 만들어가고 싶고요. 그리고 언젠가는, 제 감정이 다 비워질 만큼 고요해졌을 때, 다시 어떤 형태든 책이나 기록으로 남길 수 있지 않을까 싶어요. 아직은 그런 마음입니다.

장 : 오늘 말씀을 듣고 나니, 명상도 콘텐츠도 결국은 '정직한 감정에서 출발해야 한다'는 메시지가 남는 것 같아요.

최 : 맞아요. 정답을 말하려는 게 아니라, 지금 내 안에 있는 걸 그냥 꺼내놓고, 그걸 바라봐 주는 누군가가 있다는 것. 저는 그게 회복이라고 생각해요. 앞으로도 그런 장면을 계속 만들고 싶어요.

장 : 오늘 인터뷰를 통해 정말 '사람이 살아 있다는 것'이 무엇인지 다시 생각해 보게 됩니다. 마지막으로, 마음이 쓰이는 분들은 어떤 분들인지, 그분들에게 한마디 건네신다면?

최 : 지금 바닥에 있다고 느끼는 분들. 거기는 실패가 아니라, 다시 방향을 잡을 기회라는 말을 꼭 드리고 싶어요. 저도 너무 무력했고, 쓸모없다고 느껴졌고, 세상에 아무 의미도 없는 것 같았지만, 지금 돌이켜보면 그 순간이 삶을 바꾸는 입구였어요. 중요한 건 "지금 내가 가진 것"에 집중하는 거예요. 저는 2평짜리 방 하나, 글을 쓰는 능력, 사람을 진심으로 대하는 태도밖에 없었지만, 그게 전부였고, 그게 재료가 되어 지금까지 왔거든요. 누구나 자기만의 재료가 있다고 말씀드리고 싶고요. 꼭 그걸 발견하실 수 있길 바랍니다.

(남은 이야기는 스프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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