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여성 폭력에 더 이상 침묵하지 않겠다는 의미로 열쇠 흔드는 시민들
이탈리아에서 14세 소녀가 19세 전 남자친구에게 무참하게 살해돼 페미사이드, 즉 여성 살해 문제가 다시 조명받고 있습니다.
현지 일간지 코리에레델라세라에 따르면 현지시간 28일 새벽, 이탈리아 남부 나폴리 외곽도시의 폐건물 옷장 안에서 14세 마르티나 카르보나로가 시신으로 발견됐습니다.
경찰은 19세 알레시오 투치를 살인과 시신 유기 혐의로 긴급 체포했습니다.
투치는 경찰 조사에서 "돌로 내리쳤다. 다시 만나주지 않으려고 해서 그랬다"고 진술했습니다.
투치는 지난 26일 범행을 저지른 뒤 집에 가서 씻고 아무 일 없었다는 듯이 친구들과 외출했습니다.
카르보나로가 집에 돌아오지 않자 가족과 친지들은 실종신고를 하고 수색을 시작했으며, 투치는 이들과 함께 수색에 참여하며 마치 진심으로 걱정하는 듯한 모습을 보였습니다.
그는 자신의 휴대전화에서 카르보나로와 채팅 기록을 삭제하는 등 범행 은폐를 시도했지만 범행 현장 인근 CCTV에 피해 여성과 함께 폐건물에 들어갔다가 혼자 나오는 장면이 찍히며 덜미를 잡혔습니다.
이 사건은 이탈리아 사회 전반에 큰 충격과 분노를 불러일으키고 있습니다.
멜로니 이탈리아 총리는 "마르티나는 겨우 14살이었다"며 "지난 몇 년 동안 사회·문화적 변화를 끌어내기 위해 노력했지만 충분하지 않았다. 모두 더 많은 일을 해야 한다"고 밝혔습니다.
제1야당인 민주당(PD)의 슐라인 대표도 "젠더 폭력 문제 앞에서는 정쟁을 멈추고 나라 전체가 함께 나아가야 한다"고 응답했습니다.
신문은 여야를 대표하는 두 지도자가 일치된 목소리를 낸 것은 거의 처음이라고 전했습니다.
이 와중에 캄파니아주 주지사인 빈첸초 데 루카는 한 토론회에서 "그렇게 어린아이가 연애한다는 게 정상인가. 왜 아무도 말리지 않았느냐"고 말해 논란이 일었습니다.
이에 대해 함께 출연한 인플루언서 발레리아 안치오네는 "문제는 연애가 아니라 살인"이라고 일침을 놨습니다.
가부장적 전통이 강한 이탈리아에선 페미사이드가 심각한 사회문제로, 올해 들어서만 여성 살해 사건이 이미 16건 이상 발생했습니다.
그중 상당수가 전 남자친구나 남편, 연인에 의해 벌어졌습니다.
약 6주 전에도 이틀 간격으로 여대생 2명이 잇따라 살해되는 사건이 발생해 큰 파장을 낳았습니다.
2023년 11월에는 여대생 줄리아 체케틴이 전 남자친구에게 잔인하게 살해됐는데, 이 사건으로 2023년 올해의 단어로 페미사이드가 선정될 만큼 국민적 공분이 일었습니다.
(사진=이탈리아 안사(ANSA) 통신 캡처,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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