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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자배구 전성기 이끈 '돌고래 스파이커' 장윤창, 지병으로 별세

대한민국스포츠국가대표선수회 회장으로 선출될 당시의 장윤창 경기대 교수(사진=연합뉴스)
▲ 대한민국스포츠국가대표선수회 회장으로 선출될 당시의 장윤창 경기대 교수

1980∼90년대 한국 남자 배구의 전성기를 이끌었던 왕년의 '명스파이커' 장윤창 경기대 스포츠과학부 교수가 오늘(30일) 지병으로 별세했습니다. 향년 65세입니다.

장윤창 교수는 한국 남자 배구 최고의 스타였습니다.

1978년 인창고 2학년 때 최연소(17세)로 국가대표에 발탁된 그는 그해 세계선수권대회에서 한국의 4강 진출에 앞장섰습니다.

이어 그해 방콕 아시안게임과 1982년 뉴델리 아시안게임에서 금메달 사냥을 주도했고, 1986년 서울 아시안게임에서 은메달을 목에 걸었습니다.

국가대표로 활약하던 시절의 장윤창(3번)(사진=연합뉴스)

1983년 '조직력 배구'의 대명사인 고려증권의 창단 멤버로 참가해 현대자동차써비스와 함께 실업 배구의 전성시대를 이끌었습니다.

프로배구의 발판이 된 대통령배 원년 대회(1984년) 때 인기 선수상을 받은 것을 시작으로 최우수선수(MVP)에 오르기도 했습니다.

그의 활약을 앞세워 고려증권은 초대 챔피언을 비롯해 최다인 6회 우승을 차지할 수 있었습니다.

특히 왼손 아포짓 스파이커였던 그는 남자 배구 처음으로 '스카이 서브'(스파이크 서브)를 선보였고, 활처럼 휘어지는 유연한 허리를 이용한 타점 높은 공격으로 '돌고래'라는 별명을 얻기도 했습니다.

장 교수가 남자 배구 '왼손 거포'의 원조로 이름을 날렸고, 이후 김세진 한국배구연맹(KOVO) 운영본부장과 박철우 우리카드 코치가 계보를 이었습니다.

현역 은퇴 후 미국으로 유학을 떠나 조지워싱턴대에서 체육학 석사 학위를 받았고, 한국체대에서 박사 학위를 취득한 후 모교인 경기대에서 스포츠과학부 교수로 활동해 왔습니다.

또, 대한배구협회 강화이사를 거쳐 2011년 출범한 대한민국스포츠국가대표선수회 회장과 한국배구연맹 경기위원을 역임했습니다.

(사진=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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