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경기 의왕경찰서 전경
채팅 앱을 통해 우울증이 있는 20대 여성을 자기 집으로 부른 뒤 스스로 목숨을 끊는 행위에 관여한 20대 남성이 '위계에 의한 촉탁살인' 혐의로 긴급체포됐습니다.
경찰은 숨진 여성이 자살을 결심하고 실행하는 과정에서 20대 남성 A 씨가 깊이 개입돼 있을 거라고 판단해 해당 혐의를 적용했습니다.
위계에 의한 촉탁살인은 말 그대로 속임수 등에 의해 자살을 결심하게 하거나 실행을 촉탁하게 했을 때 적용하는 혐의입니다.
자살을 시도하려 한 여성이 범죄에 노출되는 건 처음 있는 일이 아닙니다.
이달 초 인천에서는 온라인 커뮤니티 '우울증 갤러리'에서 알게 된 10대 여학생들을 성폭행한 20대 남성 2명이 중형을 선고받기도 했습니다.
경기 의왕경찰서는 위계에 의한 촉탁살인 혐의로 A 씨를 지난 27일 긴급체포했다고 28일 밝혔습니다.
A 씨는 최근 채팅 앱을 통해 20대 여성 B 씨를 알게 됐습니다.
A 씨가 올린 게시물을 본 B 씨가 A 씨에게 연락을 취해왔고, 이들은 의왕시 소재 A 씨의 오피스텔에서 며칠 함께 머무른 것으로 파악됐습니다.
이후 B 씨는 지난 27일 오후 9시쯤 출동한 경찰에 의해 숨진 채 발견됐습니다.
현장에는 의심스러운 도구 등과 함께 B 씨가 가족에게 남긴 편지 형태의 유서도 함께 발견됐습니다.
B 씨는 과거 우울증 진단을 받고 치료를 받아온 것으로 확인됐습니다.
A 씨는 출동한 경찰에 "술을 마시고 자고 있었는데 오전 11시쯤 일어나 보니 B 씨가 숨져 있었다"며 "자세한 것은 기억나지 않는다"고 진술한 것으로 전해졌습니다.
경찰이 출동했을 당시 현장에는 A 씨와 함께 10대 C양도 있었습니다.
경찰은 실종 신고가 접수된 C양의 위치를 파악하기 위해 통신 수사를 벌이던 중 C양이 A 씨의 오피스텔에 있는 사실을 확인해 현장을 방문한 상황이었습니다.
C양은 B 씨와 마찬가지로 채팅 앱을 통해 A 씨를 알게 돼 B 씨가 숨진 이후인 같은 날 오후 A 씨의 오피스텔로 왔으며, 경찰이 출동하기까지 6시간여를 머물렀습니다.
B 씨의 시신은 복층 구조의 오피스텔 위층에 있어 C양이 시신을 목격하지는 않은 것으로 파악됐습니다.
C양이 다른 범죄 피해를 본 정황은 발견되지 않았습니다.
오피스텔 안에서는 B 씨 것뿐 아니라 A 씨의 유서도 발견됐습니다.
위계에 의한 촉탁살인죄는 형법 제253조에 명시된 혐의로 위계 또는 위력으로 자살을 촉탁 또는 승낙하게 하거나 결의하게 했을 때 적용됩니다.
법정형은 사형, 무기 또는 5년 이상의 징역으로 살인죄와 동일합니다.
위계는 목적 및 수단을 상대에게 알리지 않음으로써 목적을 달성하려는 것을 말하며, 기만뿐 아니라 유혹도 포함됩니다.
죄의 성립요건 중 가장 중요한 것은 속임수 등으로 상대방의 의사를 조정했느냐의 여부입니다.
상대를 속여 자살을 결심하게 하거나 촉탁하게 해 실행으로 이어졌을 경우 살인죄와 동일한 행위로 보는 것입니다.
단순히 상대의 촉탁이나 승낙을 받아 살해한 행위는 형법 제252조 촉탁살인죄에 해당해 상대적으로 가벼운 1년 이상 10년 이하의 징역형에 처합니다.
이번 사건에서 A 씨가 구체적으로 어떤 행위를 했는지는 아직 드러나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A 씨가 위계로 촉탁살인을 저질렀다고 의심할 정황은 다수 존재합니다.
A 씨는 채팅 앱을 통해 대상자를 물색한 뒤 B 씨를 집으로 불렀습니다.
며칠을 머무른 뒤 유서도 함께 썼지만, A 씨도 함께 실행한 정황은 아직 나오지 않았습니다.
게다가 A 씨는 B 씨가 숨진 이후에도 C양을 집에 들인 뒤 함께 머물렀습니다.
A 씨가 B 씨가 숨진 이후 재차 C양에게 연락해 집으로 불렀는지, 그 이전에 연락을 주고받았는지는 아직 조사되지 않았습니다.
A 씨가 B 씨 사망 사실을 신고를 하지 않았기 때문에, C양에 대한 실종 신고에 따라 경찰이 출동하지 않았다면 이후에 어떤 상황이 벌어졌을지는 가늠하기 어렵습니다.
이번 사건은 과거 '우울증 갤러리'를 매개로 한 사건들을 연상시킵니다.
해당 사건은 2023년 4월 우울증을 앓던 10대 여학생이 스스로 목숨을 끊는 상황을 SNS로 생중계한 사건 이후 수면 위로 드러났습니다.
해당 여학생은 우울증 갤러리를 매개로 형성된 가출팸에 속해 심리적 지배를 받으며 성 착취, 마약 투약 등 각종 범죄에 노출돼 온 것으로 조사됐습니다.
가출팸을 운영하며 피해자를 감금하고 성 착취한 주범들에게는 징역형이 선고됐습니다.
당시 재판부는 "우울증을 앓고 있는 13세 아동을 도와주기는커녕 성욕을 해소하는 수단으로 삼았다"며 "피해자가 자기 파괴적인 행동을 하며 관심과 도움이 필요한 상태임을 알면서도 모텔 숙박료를 대신 내주며 성 매수를 하고 성 착취 영상을 찍었다"고 질책하기도 했습니다.
지난해 8월 인천에서도 우울증 갤러리에서 알게 된 20대 남성으로부터 10대 여학생이 성폭행당한 사건이 발생, 20대 남성 3명이 각각 1심에서 징역 7∼8년을 선고받기도 했습니다.
이들은 "비행기 삯을 줄 테니 서울로 오라"고 유인한 뒤 9차례에 걸쳐 성범죄를 저질렀으며, 피해자를 폭행하는가 하면 성관계 영상을 유포할 것처럼 협박하기도 한 것으로 조사됐습니다.
다만 이번 사건 피의자 A 씨가 다른 범행을 목적으로 피해자를 유인했는지는 아직 밝혀지지 않았습니다.
경찰 관계자는 "B 씨가 숨지는 과정에서 A 씨가 보다 능동적인 개입을 했다고 판단해 위계에 의한 촉탁살인 혐의를 적용한 것"이라며 "A 씨가 어떤 동기로 이 같은 범행을 저질렀는지에 대해 집중 수사할 방침"이라고 말했습니다.
(사진=경기남부경찰청 제공,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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