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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똥내 나는 와인'에 전 세계 힙스터가 열광한다고? '내추럴 와인'의 모든 것 [스프]

[스프카세] "샴페인 주세요!"…그게 정말 샴페인일까?
와인 (사진=게티이미지코리아)
 

<와인에 몹시 진심입니다만,>, <와인과 페어링>의 저자 임승수 작가가 와인 이야기를 들려드립니다.​
 

19세기 산업혁명 이후, 인간은 기계를 통해 자연을 통제하고, 기술을 통해 더 나은 삶을 설계할 수 있다는 믿음을 키워왔다. 자연의 우연성과 시간의 느긋한 흐름보다는, 예측 가능하고 통제 가능한 빠른 결과가 더 중시되었다. 규격화와 대량생산의 시대가 열린 것이다.

농업에서는 '녹색 혁명'이라는 이름 아래 기계, 화학비료, 농약이 빠르게 보급되었고, 수확량을 늘리는 것이 가장 중요한 가치로 떠올랐다. 이전 시대의 전통적인 농법은 '비효율적'이고 '뒤처진 방식'으로 여겨졌다. 식문화도 비슷한 궤적을 따라갔다. 천천히 끓이고, 제철을 기다리고, 서로의 입맛을 살피던 식사는 시나브로 사라지고, 계량화된 레시피와 표준화된 맛의 가공식품이 '편리함'이라는 이름으로 식탁 점유율을 높이기 시작했다. 거주 공간도 그러해서, 시공간을 효율적으로 나누고 구조와 재료를 표준화한 아파트식 주거 모델이 도시의 기본 단위가 되었다.

와인의 세계도 예외는 아니다. 생산 효율을 높이기 위해 포도는 단일 품종으로 재배되고, 비료와 제초제, 살충제로 통제 및 관리되며, 비용 절감을 위해 기계로 수확된다. 양조 과정에서도 상업 효모, 이산화황, 필터링과 오크통 숙성 등 각종 기술이 동원되어, 와인은 점점 균일하고 예측 가능한 풍미의 공산품으로 변화해 갔다. 해마다 맛이 달라지는 것은 결함으로 여겨지고, 일관된 품질과 익숙한 풍미를 재현하는 능력이 '좋은 와인'의 기준이 되었다.

하지만 이런 개입과 통제, 효율 중심의 시대에 피로를 느끼는 이들이 점차 나타나기 시작했다. 1980년대 후반 이탈리아에서 시작된 슬로푸드 운동은 빠르고 표준화된 음식 문화에 대한 반발로 등장했고, 지역성과 계절성, 덜 가공된 식재료를 중시하는 흐름은 유기농 열풍과 자연주의 생활 방식으로 확산되었다. 예술에서도 비슷한 변화가 감지됐다. 디지털 기술이 정교해질수록 사람들은 오히려 붓질의 흔적이 남은 회화, 거친 질감, 작가의 손길이 드러나는 표현에 끌리기 시작했다. 음악에선 완벽한 믹싱 대신 날것의 현장성과 실수까지 미학으로 수용하는 로파이(Lo-Fi) 스타일이 주목받았다. 정제된 것보다 덜 정제된 것, 예측 가능한 것보다 우연히 발생한 감각에 더 큰 애정을 느끼는 사람들이 늘어나고 있었다.

이러한 흐름은 와인에도 영향을 미쳤다. 현대 와인 산업이 발전시킨 정밀한 양조 기술을 일부러 내려놓고, 포도와 자연의 발효 과정에 주도권을 넘기는 와인. 그렇게 해서 1980~90년대, '내추럴 와인'이라는 이름의 새로운 흐름이 본격적으로 등장하게 된다.

내추럴 와인은 말 그대로 자연에 최대한 맡긴 와인이다. 인간의 개입을 줄이는 철학은 포도밭부터 시작된다. 대부분의 내추럴 와인은 유기농 또는 바이오다이내믹 방식으로 재배된 포도를 사용하며, 농약, 제초제, 화학비료를 쓰지 않고, 기계를 사용하기보다 사람이 직접 손으로 돌본다. 수확 역시 손으로 이루어지는 경우가 많다.

양조 과정에서도 인위적인 조작을 최소화한다. 상업용 배양 효모 대신 포도 껍질이나 양조장 주변 공기 중에 있는 야생효모로 발효를 유도하고, 정제와 여과를 하지 않으며, 보존제인 이산화황(SO₂)도 극미량을 사용하거나 아예 넣지 않는다. 이 때문에 해마다, 그리고 병마다 맛이 달라지는 경우가 많고, 균일함보다는 매번 다른 개성과 생동감을 체험하게 된다.

잘 만든 내추럴 와인은 흔히 즙이 터지는 듯한 과일의 생생함, 입안에서 살아 있는 듯한 질감, 그리고 시간이 만든 자연스러운 복합미로 묘사된다. 어떤 병에서는 발효된 과일 껍질의 향, 어떤 병에서는 흙과 짚, 바람에 실린 허브 향기가 느껴지기도 한다. 정제되지 않은 만큼 표현의 폭이 넓고, 병 속에서 계속해서 맛이 변화하는 경우도 있어, 한 병을 마시는 시간이 곧 관찰이자 모험이 되기도 한다.

내추럴 와인은 1980~90년대 프랑스 보졸레와 루아르 지방에서 시작되었다. 상업적인 맛의 표준화에 지친 일부 생산자들이 자발적으로 기술적 개입을 줄이고, 전통적인 방식으로 와인을 만들기 시작한 것이다. 이들은 처음에는 주류 업계에서 다소 괴짜 취급을 받았지만, 2000년대 중후반부터 파리의 젊은 셰프와 소믈리에 사이에서 열광적인 지지를 얻기 시작했고, 2010년대 중반에 이르러서는 도쿄, 뉴욕, 런던, 서울 등 대도시에 '내추럴 와인 바'가 우후죽순처럼 들어서며 트렌드로 자리 잡았다.

하지만 내추럴 와인에 대한 찬사만 있는 건 아니다. 하나의 '철학'으로 자리 잡고, 또 '문화적 현상'으로까지 확산되면서, 자연스럽게 반발도 생겨났다. 가장 흔한 비판은 '결함도 개성으로 둔갑한다'는 지적이었다. 산화, 불안정한 발효, 탁한 질감, 휘발산 같은 문제들이 때로는 '내추럴이라서 그런 것'이라며 정당화되곤 했다. 그렇다 보니 '맛이 이상한데도 괜찮다고 해야 하는 분위기', '결함을 미학으로 포장하는 말장난'이라는 반응도 적지 않다.

내추럴 와인 특유의 불균일함도 문제였다. 같은 생산자의 같은 와인인데도 병에 따라 맛이 다르거나, 한 병 안에서도 시간이 흐르며 급격히 변질되는 일이 있었다. 내추럴 와인을 마시는 취향이 종종 하나의 '신념'이나 '정치적 올바름'으로 포장되면서, 내추럴 애호가들을 '힙스터 엘리트'라고 냉소하는 시선도 나타났다.

무엇보다도 내추럴 와인의 맛에 관해 가장 민감한 주제는 브렛(Brettanomyces)이다. 브렛은 야생효모의 일종으로, 발효 과정에서 두엄, 마구간 같은 동물적인 느낌의 향을 만들어낸다. 좀 더 노골적으로 표현하는 이들은 '똥내'라고 하기도 한다. 브렛이 내추럴 와인에서 유독 자주 발견되는 것은, 이산화황을 거의 사용하지 않고 상업 효모 대신 야생 효모를 쓰며, 여과도 생략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어떤 이들은 이 향에서 자연 발효의 야생성과 복합미를 느끼지만, 또 어떤 이들은 그것을 도저히 마실 수 없는 결함으로 받아들인다. 브렛은 내추럴 와인의 감각적 매력을 좌우하는 요소이자, 가장 극단적으로 호불호가 갈리는 향미 중 하나다. 심지어 논쟁 과정에서 내가 옳다느니 네가 그르니 하며 감정적으로 격해지기도 한다. 그렇다면, 브렛에 대한 나의 견해는 어떠하냐고?

2025년 5월 12일, 히로시마 시내의 와인바 Le Clos Blanc. 나와 아내의 눈앞에는 내추럴 와인 한 병이 놓여 있었다.

Domaine Jean Foillard Morgon Côte du Py 2021. 프랑스 보졸레 지역을 대표하는 내추럴 와인으로, 생산자인 장 포이야드(Jean Foillard)는 1980년대 보졸레에서 내추럴 와인 운동을 이끈 'Gang of Four'의 일원으로 잘 알려진 인물이다. 포도는 모르공(Morgon) 지역의 일급 포도밭 '코트 뒤 피(Côte du Py)'에서 재배되었으며, 내추럴 와인 가운데서도 상대적으로 브렛 향이 심하지 않다고 평가받는다.

"이 와인 향기 어때?"
"헉. 무슨 거름 냄새 같은 게 심하게 나네."
"마시기에 괜찮아?"
"아냐. 굳이 마시고 싶지 않아."
"그래? 난 향기가 아주 매력적인데…."

참고로 나와 아내는 와인 경험치가 거의 비슷하다. 늘 한 병을 반씩 나눠 마셔왔기 때문이다. 그런데도 평가가 이렇게나 극명하게 갈린다. 혹시나 해서, 옆자리에 있던 미성년자 두 딸에게 향만 맡게 해 봤다. 평소에도 맛과 향에 민감한 첫째는 딱히 이상한 걸 모르겠다고 했고, 오히려 아무거나 잘 먹는 둘째가 "똥내 나는데?"라고 한다.

그렇다. 내추럴 와인을 좋아한다고 감식안이 뛰어난 것도 아니고, 싫어한다고 감각이 둔한 것도 아니다. 그저 취향의 문제다. 새우깡이 입에 안 맞는다고 해서, 누가 그 사람의 미각을 비웃는 일은 없지 않은가. 그러니 "이 맛을 모르면 무지한 거야", "그걸 맛이라고 마시냐" 두 가지 모두 지양해야 할 태도라고 생각한다.

(남은 이야기는 스프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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