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가 만난 두 분 선생님의 이야기를 들려드리겠습니다.
보이지 않아도 '교사의 꽃' 담임 맡았다
피어라 선생님은 2학년 수업 시간, 박두진 시인의 동시 <해>에 나오는 유명한 시구 '해야 솟아라'를 설명하면서 자신의 이름의 유래를 저렇게 설명했습니다. 흥미로운 설명에 학생들 눈은 반짝였고, 간간이 웃음이 터졌습니다. 여느 중학교 교실 분위기와 다르지 않죠? 선생님의 목청은 또 얼마나 큰지, 마이크 사용하지 않아도 교실에 쩌렁쩌렁 울려 퍼집니다. 다른 교실과 딱 하나 다른 건, 선생님이 앞을 제대로 볼 수 없는 시각장애인이라는 점입니다.
피어라 선생님은 저시력인입니다. 전방 30~50cm 앞 사물의 실루엣 정도는 식별이 가능하지만 그 이상은 보지 못합니다. 그래서 수업을 준비하고 진행할 때, 확대독서기와 보조 교사의 도움을 받습니다. 탁상형 확대독서기를 활용해 수업 자료를 준비하고, 수업 진행 중간중간 내용 확인이 필요할 땐 손에 쥔 휴대용 확대독서기를 활용합니다. 보조 교사는 수업 중 피어라 선생님이 보지 못하는 교실 뒤편 학생들을 챙겨봐 주고, 교무실과 교실 사이를 이동할 때 선생님의 방향을 안내해 줍니다. 이 정도 지원만 있으면 선생님은 문제없이 수업할 수 있습니다. 지원이란 게 대단히 어렵거나 불가능한 일처럼 보이지 않으시죠?
피어라 선생님은 2학년 담임도 맡고 있습니다. 지난해에 이어 올해로 두 번째입니다. 선생님과 같은 중증 장애인 가운데 서울에서 담임을 맡고 있는 선생님은 단 2명이 불과하다고 합니다. 아무래도 장애인 교원에겐 선뜻 담임을 맡기지 않는 분위기가 있습니다. 선생님도 8년 차가 돼서야 담임을 처음 맡게 됐는데, 동료 선생님들의 전폭적인 지지가 있었다고 합니다.
"이 사람이 교사로서 교사의 꽃은 담임인데, 평생 교사를 할 수도 있는데 '지금 충분히 할 수 있다'라고 같이 지지를 많이 해 주시고, 교장·교감 선생님도 저를 믿어주셔서 그래서 일단 시작하게 됐습니다. 2년 차가 되니까 '담임, 비담임 고를래?' 이런 얘기 아무도 하지 않고 임피어라 선생님은 그냥 당연히 담임이라고. 자연스럽게 또 2년 차를 이어가게 된 것 같아요."
처음이 어렵지, 시작하면 당연한 것, 아무것도 아닌 일이 됩니다.

"아이들이 오히려 선생님이 잘 안 보이니까 '우리가 이렇게 해야 돼!'라는 생각을 깊이 하는 것 같더라고요. 농담으로 '나라서 애들이 많이 봐주는 것 같아.'라고 생각을 한 적이 한두 번이 아니거든요. 오히려 더 잘해주고 더 집중해 주고 더 웃어주고 하는 그런 느낌을 저 혼자 받고 있어요. 검증받지는 않았어요. (웃음)"
"(학부모 민원?) 단 한 번도 없었습니다. 부모님께서 솔직한 심정으로 '처음에는 걱정을 했는데 선생님 얼굴을 보자마자 걱정이 없어졌어요.'라고 말하시는 분은 만났지만, 힘든 일을 많이 겪지는 않은 것 같아요. 제가 뭘 잘해야 된다고 생각하냐면, 아이들과의 관계뿐만 아니라 수업이 제대로 서 있으면 그 선생님에 대한 신뢰도가 쌓인다고 생각을 하거든요. 그래서 수업에 가장 힘을 쏟는 편이에요."
독서교육을 좋아해 국어 교사가 되기로 마음먹고 임용 시험을 통과하기까지, 앞이 보이지 않으니 두 세배 그 이상으로 노력했을 선생님의 지난 시간은 일일이 설명 듣지 않아도 미루어 짐작할 수 있습니다. 수업 자료를 만들 때도, 동료 선생님들보다 훨씬 많은 시간을 걸리니, 선생님은 주로 방학 때 수업자료를 미리 준비해 둔다고 합니다. 쉼 없이 시간과 정성의 최대치를 쏟아붓고 있는 피어라 선생님의 진심을 학생들도 느끼고 있지 않을까요?
"저는 외형적인 건 그냥 순간이라고 생각해요. '저 선생님은 다리가 불편하시구나.' '조금 안 들리시는구나.' 이건 아이들은 굉장히 빨리 받아들여요. 그다음부터는 다 똑같은 선생님이거든요. 저는 눈을 이렇게 뜨면 사실 안 보여요. 초점이 안 맞아서 자세하게 보려면 깜빡깜빡해야지 되는 거라 저도 겉보기는에는 다를 수도 있어요. 하지만, 그 사람이 가지고 있는 가치관이라든지 교육 철학이라든지 아니면 아이들을 생각하는 마음, 그게 다르지 않다고 말씀을 드리고 싶어요."
들리지 않아도 장애 학생과 소통한다
5년 차 특수학교 교사 최윤정 선생님과의 인터뷰는 처음에 이런 식으로 진행됐습니다. 청각장애인인 선생님의 발음이 부정확해서 중간중간 제대로 알아듣지 못했습니다. 그때마다 보조 교사의 도움을 받았는데, 참 이상한 건 대화가 이어질수록 선생님의 말이 잘 들렸습니다. 선생님이 자주 사용하는 단어, 표현들을 알게 되니 인터뷰 막바지엔 대화를 주고받는데 큰 무리가 없더군요. 물론 기자의 입모양만 보고도 무슨 말인지 척척 이해하는 최윤정 선생님의 역할이 컸습니다.

"제가 '이것만은 꼭 해야겠다!'라는 부분은 학생들이 나중에 사회 나가서도 혼자서 독립할 수 있는, 자립할 수 있도록 돕는 수업이 중요하다고 생각하거든요. 처음에 가르쳤을 때 조금 느릴 때도 있지만 계속 알려주고 반복적으로 하다 보면 어느새 조금 더 성장이 되어있는 그런 모습을 볼 수 있어요."
이곳은 선생님도 학생들도 장애가 있다 보니 소통에 어려움이 있는 건 사실이지만, 함께 성장하는 느낌도 받는다고 합니다.
"제가 불편한 부분이 있을지라도 학생들이 오히려 저를 도와주는 그런 느낌도 있어요. 서로 도와주는 모습을 통해서 함께 성장해 가는 거 같아 종종 보람을 느껴요."
장애인 교원과 함께 살아가기 위해 필요한 것
장애인 교원들은 내일(20일) 국회 정문 앞에서 기자회견을 엽니다. 선생님들은 다음 달 들어설 새 정부에 <7대 포용적 교원 정책 핵심 과제>를 제안할 예정인데, 주요 내용은 다음과 같습니다.
<7대 포용적 교원 정책 핵심 과제>
1. 임용 혁신: 장애인 교원 선발 확대 및 공정한 임용 시스템 구축
2. 근무환경 개선: 정당한 편의제공 국가 책임 강화 및 접근성 보장
3. 권리 보장 및 역량 강화: 법·제도 기반 권리 보장 및 전문성 신장 지원 ((가칭)장애인교원지원법 제정 포함)
4. 컨트롤타워 구축: 교육부 내 장애인 교원 정책 총괄 컨트롤타워(전담 부서 및 지원센터) 설치·운영
5. 협력 네트워크 활성화: 부처 및 유관기관 간 유기적 협력 시스템 구축
6. 노조 협력 강화: 장애인 교원 노동조합 활동 보장 및 실질적 정책 파트너십 구축
7. 인식·문화 개선: 장애인식 개선 및 포용적 학교 문화 국가 책임 정착
"지원을 받아본 선생님은 똑같이 말하시거든요. 지원이 있으면 선생님으로서 자신감도 지키고, 수업할 때도 좋고, 앞으로도 학교생활이 더 즐거워질 것 같다고. 정말 별거 아니지만 지원이 있고 없고의 차이가 너무 크거든요. 선생님들은 지원을 받음으로써 좋은 수업을 가르치고 학생들과 즐겁게 학교생활을 할 수 있는 그런 제도, 그런 시스템이 갖춰졌으면 좋겠어요."
- 최윤정 선생님(청각장애 교원)
전국 장애인 교원은 약 4천6백 명입니다. 지난해 장애인 인권증진 토론회에서 나온 통계를 보면, 학교급 별 학교 수 대비 장애인 교원의 비율은 초등학교 5.4개 교당 1명, 중학교 2.7개 교당 1명, 고등학교는1.4개 교당 1명 꼴입니다. 전국의 교원이 44만 명인데 장애인 교원의 비중은 1.5%에 불과합니다. 교육 현장에서 장애인 교원을 만나기 어려운 게 당연할 수밖에 없는 현실인데, 교육 당국이 어떤 지원책을 마련하고 사회 인식이 어떻게 달라지느냐에 따라 그 비중은 크게 달라질 수 있을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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