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앵커>
지난 3월 투병 중인 80대 할머니를 남편과 아들이 숨지게 한 사건이 있었습니다. 간병 끝에 돌보던 가족을 숨지게 하는 간병 살인이 잇따르고 있지만, 그동안 정확한 실태가 파악된 적 없었는데요. 저희가 지난 18년 동안의 데이터를 분석한 정부 차원의 보고서를 입수했습니다.
권지윤 기자의 단독보도입니다.
<기자>
이 60대 노부부는 장애를 가진 자녀를 22년째 돌보고 있습니다.
긴 간병 끝에 마주한 건, 파산이었습니다.
[아버지 (22년째 장애아들 간병) : 아파트 조그마한 거 팔고, 가게 사업장 그거 팔고 모든 재산을 팔고 저희도 개인 파산을 받았습니다.]
아버지는 병까지 얻었습니다.
[아버지 (22년째 장애아들 간병) : 제가 간암 시술을 또 받았어요. 자녀이기 때문에 한쪽 마음이 그냥 항상 아파서 놓을 수 없는 거죠.]
간병의 무게를 버티는 이들도 있지만 누구나 다 견딜 수 있는 건 아닙니다.
아버지와 단둘이 살던 대학생 A 씨가 그렇습니다.
A 씨의 아버지는 5년 전 뇌출혈로 쓰러졌습니다.
간병은 하나뿐인 아들 A 씨 몫이었습니다.
[A 씨 (20대, 아버지 간병) : 오후 9시에 출근해서 퇴근이 오전 8시였나… 깨어 있는 동안은 병원에서 일단 알려준 대로 소변 통 갈고 약 주고 (그렇게 했죠.)]
편의점 야간 일과 간병을 함께하는 건 점점 버거워졌고 어느 순간, 절망에 빠졌습니다.
[A 씨 (20대, 아버지 간병) : 일이 제대로 안돼 가지고 잘렸었어요. 당장 아버지한테 나갈 돈은 많은데 잘렸을 때 거의 다 포기했었던 것 같아요.]
아들의 실직 소식에 아버지도 희망을 놓은 듯 보였습니다.
[A 씨 (20대, 아버지 간병) : 아버지가 '방에 들어오지 말라' 하시고 나서 더 그때부터 안 들어갔던 것 같아요.]
투약을 줄이고, 하루 세 번인 치료식도 일주일에 10번 정도만 제공했다고 합니다.
아버지는 얼마 뒤 영양실조 상태로 숨졌습니다.
존속 살해범이 된 A 씨는 징역 4년형을 받고 복역하다 최근 출소했습니다.
[A 씨 (20대, 아버지 간병) : 힘들어서 그랬던 것 같아요. 제가 감당할 수 있었던 것보다 너무 그 이상으로 돼버리니까.]
SBS가 입수한 보고서에 따르면 간병 살인은 2006년부터 2023년까지 모두 228건, 매년 13건 이상 발생했습니다.
부모와 조부모를 숨지게 한 경우가 99건, 43%로 가장 많았고, 다음으로 부부 대상, 자녀 순이었습니다.
피해자는 60대 이상이 66%, 가해자 역시 60대 이상이 73%였습니다.
고령화 추세로 노인이 노인을 돌보는 '노노 간병'이 늘면서 간병인의 신체적, 정신적 부담이 심해지는 걸로 분석됩니다.
가해자의 75%는 무직 상태였고, 94.3%는 환자와 동거했습니다.
또, 10명 중 6명 이상은 우발적으로 범죄를 저지른 걸로 나타났습니다.
[김성희 경찰대 치안정책연구소 실장/보고서 저자 : (우발적 살인은) 분노와 연관이 많이 돼 있습니다. 근데 간병 살인은 분노가 아니라 절망에서 비롯된 살인이라고 생각됩니다. 이 상황이 너무 절망적인 거예요. 어떻게든 벗어날 수가 없는 거죠.]
절망의 범죄를 저지른 A 씨는 지금 어떤 심정일까.
[A 씨 (20대, 아버지 간병) : 후회돼요. 그냥 도망갈 것 같아요. 나중에 알게 된 게 (보호자가 연락을 끊으면) 병원에서 환자를 계속 치료는 한다 하더라고요. 그러면 아버지도 좀 더 오래 사실 수 있었지 않았을까.]
(영상취재 : 오영춘·배문산·신동환, 영상편집 : 김종태, 디자인 : 박소연, VJ : 신소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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