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하나뿐인 지구를 지키려면 우리 모두의 힘이 필요합니다. 환경을 생각하는 '지구력'.
하나뿐인 지구를 지키려면 우리 모두의 힘이 필요합니다. 환경을 생각하는 '지구력'.
매일 마시는 물뿐만 아니라 공기 중에서도 미세플라스틱이 검출된 바 있습니다. 사람 몸도 다르지 않습니다. 입이나 코로 흡입된 미세먼지가 혈액을 따라 장기 곳곳으로 옮겨지고 있다는 사실도 잇따르는 연구를 통해서 드러났습니다. 최근 미국 뉴멕시코대 연구에 따르면 숨진 사람들의 뇌 부검 샘플을 분석한 결과 의사결정 및 행동 조절과 관련된 전전두엽에서 미세플라스틱 입자가 집중적으로 나타났으며, 일반인보다 치매 환자 뇌에서 더 높은 농도가 확인되기도 했습니다.
관심은 몸속으로 들어온 미세플라스틱 입자의 인체 위해성 여부입니다. 방금 말씀드린 뉴멕시코대 연구 결과처럼 일반인과 치매 환자 간 검출 차이 같은 간접적인 상관관계가 차츰 드러나고 있습니다. 지난해 이탈리아 캄파니아 루이지 반비텔리대학 연구에선 혈관 내 미세플라스틱이 발견된 사람은 뇌졸중이나 심장병 등의 위험이 4배 이상 높다는 연구 역시 이런 간접적인 영향을 시사합니다.
저독성·저반응성 플라스틱... 100년간 잘 써왔는데
하지만 정반대로 이런 의문도 있습니다. 지난 100년간 인류가 플라스틱 물질을 사용해 오면서 이렇다 할 인체 위해성이 불거지지 않은 것은 상대적으로 플라스틱 물질의 안전성을 방증하는 게 아니냐는 겁니다. 대표적으로 이덕환 서강대 명예교수 같은 분입니다. 이 교수는 "플라스틱은 자연환경에서 100년이 지나도 썩지 않는다. 플라스틱이 화학적으로 매우 반응성이 낮은 저독성 물질이기 때문"이라며 "미세플라스틱의 인체 유해성을 확인했다는 연구 결과는 많지 않다"라고 지적합니다.

이런 가운데 국내 연구진이 미세플라스틱, 그중에서도 기존 미세플라스틱보다 수백분의 1 정도로 작은 나노플라스틱의 뇌신경 손상의 병리 메커니즘을 밝힌 연구 결과가 나와 주목됩니다. 간접적인 차원의 인체 위해 상관관계를 넘어 직접적인 증거가 될 수 있기 때문입니다.
나노플라스틱이 뇌세포 속 미토콘드리아에 쏠린 까닭은

해당 연구는 한국뇌연구원과 국가독성연구소가 공동으로 진행했습니다. 연구진은 50나노미터 크기의 나노플라스틱을 실험용 쥐의 코로 흡입시키는 방식으로 실험을 진행했습니다. 이 미세플라스틱에는 형광 물질이 입혀져 이동 경로가 추적 가능합니다. 실험 결과 이 가운데 폐를 거쳐 혈액을 타고 뇌혈관장벽을 넘어 뇌신경세포까지 이동한 사실이 확인됐습니다. 특이한 건 뇌신경세포로 이동한 나노플라스틱 입자들이 세포 내 소기관인 미토콘드리아 부근에 쏠려 있다는 사실입니다.
미토콘드리아는 세포 내에서 화학적 에너지 ATP를 생산하는 에너지 공장과 같은 역할을 합니다. 이번 연구를 수행한 김도근 한국뇌연구원 치매연구그룹 박사는 나노플라스틱 입자가 미토콘드리아의 ATP 생산을 방해하고 이로 인해 에너지 공급이 중단돼 세포가 사멸하는 일련의 과정이 이번 연구에서 드러났다고 밝힙니다. 나노플라스틱으로 인해 신경세포에 병리현상이 일어나는 메커니즘이 최초로 규명된 셈이라는 겁니다. 뿐만 아니라 뇌혈관장벽의 이상 및 신경 염증이 유발되는 과정도 드러났다고 설명합니다.
나노플라스틱 뇌신경 독성 발현 원인은?

결론적으로 나노플라스틱의 실험쥐 뇌에서 신경 독성을 일으키는 과정이 드러났다는 건데, 그렇다면 궁금한 건 미토콘드리아의 ATP 생산기능에 장애를 일으킨 원인이 뭘까라는 점입니다. 연구진도 아직 이 질문에 대한 구체적인 대답은 내놓지 못합니다. 다만 몇 가지 추정되는 가설을 제시하는 수준입니다. 첫 번째는 '전기화학적 간섭'입니다. 고분자 물질일 때 아주 안정적이던 플라스틱이 나노 단위로 극미세화될 경우 전자적 안정성이 깨질 수 있다는 겁니다. 문제는 미토콘드리아에서 ATP를 생산하는 과정도 막을 통한 이온의 이동과 전위차가 쌓여서 이뤄지는 전기화학적 메커니즘을 거친다는 점입니다. 안정성을 잃은 나노플라스틱 입자가 이 같은 전기화학적 메커니즘을 방해할 가능성을 김 박사는 추정했습니다.
두 번째는 플라스틱 입자 자체의 독성이 아니라 플라스틱 생산 과정에서 들어가는 다양한 화학 성분의 첨가제 탓이 아니냐는 겁니다. 실제로 플라스틱 생산시 물성을 유연하게 하는 가소제나 안정제, 난연재 등 다양한 화학물질이 함께 쓰입니다.
셋째는 나노플라스틱이 햇빛 속에 있는 자외선과 풍화작용에 의해 물리적 스트레스가 가해져서 미세하게 쪼개질 때 겉 표면과 모양새가 이전에는 없던 거칠고 날카로운 구조들을 나타낸다는 점입니다. 동시에 표면적이 크게 늘어나는 효과도 생기고요. 이런 생김새적 특성으로 인해 몸속 생체 분자와 결합할 가능성이 커지는 게 독성 발현의 또 다른 원인으로 추정되기도 한다는 게 함께 연구했던 이규홍 국가독성연구소 가습기살균제보건센터장의 설명입니다.

이번 한국뇌연구원 연구진은 나노플라스틱뿐 아니라 미세먼지에 대해서도 실험쥐 흡입 실험을 진행했고, 이를 통해 미세먼지의 뇌신경 손상 메커니즘도 규명하는 데 성공했습니다. 연구진은 초미세먼지인 PM 2.5를 실험쥐에 흡입시킨 뒤 뇌 변화를 관찰한 결과, 뇌혈관 주변에서 신경세포의 가지돌기(Dendrite) 손실과 미세아교세포(Microglia) 활성화가 두드러지게 나타났다고 밝혔습니다. 김 박사는 이는 염증 반응의 증가와 더불어 신경 기능 저하를 시사한다고 설명했습니다.
또 뇌혈관 장벽의 손상으로 인해 뇌혈류가 감소할 뿐만 아니라, 뇌 속 노폐물 배출을 담당하는 글림프 시스템에도 이상을 일으킨다는 점도 드러났습니다. 이 가운데 노폐물 배출의 핵심 역할을 하는 별아교세포(Astrocyte)란 게 있는데, 이 세포의 수족 구조(Aquaporin-4)가 줄어드는 현상이 확인된 겁니다. 이는 뇌의 해독, 정화 기능에 이상이 생길 수 있다는 걸 의미한다고 연구진은 밝혔습니다.
세포별 유전자 피해 드러내는 신기술 한몫

특히 이번 연구에서는 실험실에서 배양된 뇌혈관 내피세포를 대상으로 공간 전사체 기법의 분석도 병행됐는데, 미세물질의 뇌신경 영향을 파악하는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는 게 연구진의 설명입니다. 공간 전사체 분석 기술은 인체 장기 내 세포들을 위치에 따라 공간적으로 구분한 뒤, 병리현상이 나타나는 세포별 유전자 발현 변화를 세포 단위로 정밀하게 추적할 수 있는 기술입니다.
공간 전사체 분석 결과, 뇌 속으로 들어간 미세먼지 물질이 뇌세포의 특정 유해물질 수용체를 활성화시키는 기전이 관찰됐습니다. 우리 뇌 속에는 자동차 배기가스 등 지용성 환경 독성물질이 침입할 경우 이를 알아채고 대응하기 위해 해독 효소를 내도록 작용하는 특정 유전자 발현으로 이어지는 시스템을 갖추고 있습니다. 실험에 쓰인 미세먼지는 금속이온과 다환방향족탄화수소(PAH)가 합쳐져 만들어졌는데, 바로 이 PAH 탓에 해당 수용체가 활성화됐다는 게 연구진 설명입니다. PAH란 2개 이상의 벤젠 고리가 결합된 구조의 유기화합물인데 자동차 배기가스나 소각로 등 유기물의 불완전 연소시 부산물로 발생하는 유독물질입니다. 이번 연구 결과는 환경 독성 물질이 혈관을 통해 뇌에 영향을 미치는 경로가 파악됐다는 의미를 지닌다고 연구진은 설명했습니다.
동일한 미세먼지에 노출됐더라도 신경세포, 아교세포, 혈관세포 등 각기 다른 세포 유형이 서로 다른 방식으로 반응한다는 사실도 드러났습니다. 공간 전사체 기술 덕분입니다. 기존엔 파악하기 어려웠던 세포별 영역별 특이반응의 실체가 드러났고, 미세먼지로 인한 뇌 손상이 단일 메커니즘이 아닌 복합적이고 세포 특이적인 경로를 통해 발생할 수 있다는 근거가 제공됐다고 연구진은 밝혔습니다.
(남은 이야기는 스프에서)

댓글 아이콘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