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새뮤얼 해먼드는 미국 혁신 재단의 수석 경제학자다.
미국이 다른 여러 나라와 무역 불균형 문제를 해소할 방법이 있기는 하다. 관세는 답이 아니다. 지금 미국이 해야 할 일은 수출 역량을 높이는 데 전념하는 것이다.
수출 역량 강화란 곧 기술 산업 자산에 투자하고, 허가받는 데 드는 시간을 줄이고, 세계 시장을 겨냥한 국내 생산의 규모를 키울 수 있는 금융 구조를 만들어가는 것을 의미한다.
미국의 무역적자는 반칙의 결과가 아니다. 현재 무역적자는 전 세계가 저축의 수단으로 달러를 선호하는 데서 비롯된 막대한 자본 흑자의 거울상이라고 할 수 있다.
이러한 자본 흑자를 생산적인 국내 투자로 전환하지 못한다면 아무리 높은 수준의 관세를 부과하더라도 무역적자는 좀처럼 개선되지 않는다.
1971년 이후 전 세계적으로 관세가 인하되었음에도 미국은 지속적으로 무역적자를 기록해 왔다. 달러는 세계 기축통화로서 국채, 부동산, 기술주 등 달러 표시 자산에 대한 지속적인 수요를 창출해 낸다. 세계 기축통화 보유국으로서 미국의 지위를 "과도한 특권"이라고 부르는 이유 가운데 하나다.
하지만 이러한 "특권"을 바라보는 또 다른 시각이 있다. 외국의 달러 보유자들은 새로 등장한 생산적인 기업에 투자하는 대신, 상대적으로 안정적이고 유동적인 종이 자산으로 달러를 보유하는 것을 선호한다. 한편 미국 제조기업들은 수십 년간 만성적인 투자 부족에 시달려왔고, 이에 따라 수출 산업은 시들어가고 있다.
이것이 바로 2023년 당시 상원의원이었던 J.D. 밴스 부통령이 고전적인 "자원의 저주(화석 연료 자원이 풍부한 국가는 부유해지지 못하는 경향)"와 달러의 기축 통화 지위 간 잠재적 유사성을 지적한 이유다.
공화당과 민주당은 이제 오로지 국가 안보를 위해서라도 미국의 산업 기반을 재건해야 할 필요성을 인식하게 됐다. 미국이 군용 드론을 중국 공급망에 의존한다면 중국을 견제할 수 없다. 그러나 재산업화(reindustrialization)는 단순히 관세 장벽을 세워 현존하는 공장을 보호하는 것 이상이어야 한다. 새로운 산업을 구축하고, 이들이 경쟁 기업과 공격적으로 경쟁하며 생산 규모를 늘리고 제품을 수출할 수 있도록 독려해야 한다. 국가는 값싼 수입품을 대체할 비싼 대체품을 만들어 부유해질 수 없다. 부유해지는 길은 세계가 사고 싶어 하는 물건을 만드는 것뿐이다.
동아시아의 성공 사례를 떠올려보자. 한국과 대만, 중국은 자국 기업을 경쟁으로부터 보호하지 않고 오히려 노출함으로써 산업 역량을 강화했다. "수출 규율(export discipline)"로 알려진 정책을 통해 기업은 세계 시장에서 경쟁력을 증명할 수 있을 때만 국가의 지원을 받았다. 수출 시장에서 실패한 기업은 지원이 끊겨 고사했다. 성공한 기업은 국제 경쟁력을 갖추게 됐다.
한때는 미국도 이런 방식을 썼다. 전후 제조업 경제의 토대는 재건금융공사나 미 해사위원회 같은 공공기관이 마련했다. 2차 세계대전 동안 연방 정부는 알루미늄과 항공기, 고무, 선박을 생산하는 공장을 포함, 수천 개의 산업 시설을 직간접적으로 소유하고 지원했다.
기업은 보조금을 받는 대신, 새로운 분야에서도 빠르게 생산량을 늘려야 하는 경우가 많았다. 이처럼 전시에 투자를 받은 분야 가운데 상당수는 전후 수출 산업으로 성장했다. 일례로 디트로이트의 자동차 제조업은 제너럴모터스(GM) 디젤 엔진 사업부에 대한 전시 투자가 탱크와 상륙정, 선박용 경량 엔진의 혁신으로 이어지면서 성장할 수 있었다.
20세기 후반, 미국은 과학기술 분야에 대한 연방 정부의 대규모 투자 덕에 더욱 복잡하고 수익성 있는 상품을 만들어내기 시작했다. 아폴로 프로그램은 우주 비행사를 달로 보내는 데 그치지 않고, 기술 연구 및 개발의 촉매제가 되어 이후 상업적으로도 큰 성과를 냈다. 인공위성과 반도체, 인터넷 경제 등 여러 분야에서 실리콘밸리가 지금과 같은 지위를 누리게 된 것은 국방부가 뿌린 씨앗 덕분이다. 소련과의 경쟁을 의식한 미국 제조업계와 혁신가들이 별을 쏘아 올린 사례라고 할 수 있다.
트럼프 정부는 이와 정반대로 연방 과학 연구개발 프로그램에 대한 지원을 대폭 삭감하는 동시에, 기존 산업을 젖은 담요로 감싸는 접근법을 취하고 있다. 관세는 국내 제조업체가 사용하는 핵심 부품의 가격에도 영향을 미치기 때문에, 미국의 산업 역량을 새로운 수준으로 끌어올리기보다는 쇠퇴를 부추길 가능성이 훨씬 더 크다.
에너지부의 대출사업부가 대표적인 사례다. 에너지부는 최근 몇 년간 전기자동차 배터리부터 원자력 기술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첨단 제조업에 수십억 달러를 조용히 지원했다. 4천억 달러 이상의 대출 능력을 갖춘 이 부서는 오늘날의 산업은행 같은 기관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트럼프 정부는 이런 부서를 계속해서 지원해 나가기는커녕 오히려 도마 위에 올려놓고 있다.
미국에 필요한 것은 감세와 관세가 아니라 종합적인 산업 전략이다. 무역 부문에 대한 산업 금융 공사의 투자, 수출 신용 보증의 확대, 공급업체를 한데 모으고 투입 비용을 낮추기 위한 경제특구 조성 등이 전략에 들어가야 한다. 미국 제조업체가 세계 무대에서 경쟁할 수 있도록 하는 가장 좋은 방법은 전면적인 관세 인상이 아니라 수출업체에 대한 관세 면제다.
그리고 자동화 역시 반드시 전략에 포함되어야 한다. 인공지능과 로봇 공학이 빠르게 발전하면서 제조업이 다시 일자리 창출의 원천이 되지 못할 가능성이 크지만, 이는 나쁜 일이 아니다. 미국이 수출 중심의 강국이 되려면 인구 고령화와 인건비 상승이라는 조건에 대응하기 위한 인공지능과 자동화를 통한 생산성 향상이 필요하다.
이는 수출 인프라의 효율성에도 적용되는 이야기다. 경쟁국들이 24시간 돌아갈 수 있는 로봇 항구를 건설하는 동안에도 항만 노조는 트럼프 대통령의 축복 속에서 항만 자동화를 오히려 막고 있다. 미국이 세계와 경쟁하려면 노동 공정성과 생산성의 글로벌 표준을 결합할 방안을 찾아내야만 한다.
트럼프 정부는 미국 항구에 정박하는 중국산 선박에 막대한 수수료를 부과하는 한편, 7년 이내에 미국 수출의 15%를 미국 국적 선원이 승선한 미국 국적 선박으로 운송하는 것을 의무화할 예정인데 이에 따라 컨테이너당 수백 달러의 운송 비용이 늘어날 것으로 예상된다. 물론 정책의 배경은 이해할 수 있다. 현재 전 세계 상선의 절반 이상은 중국이 건조하고 있고, 미국 조선업은 위축되어 가는 중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여기서도 역효과가 우려된다. 조선소의 생산성을 높이는 노력이 수반되지 않는다면, 이미 허리띠를 졸라매고 있는 미국 수출업체들의 물류비용 부담만 커질 뿐이기 때문이다.
(남은 이야기는 스프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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