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oading...

새 단장한 조선 왕실의 위엄…종묘 정전, 5년 수리 마치고 공개

종묘 정전 (사진=국가유산청 궁능유적본부 제공, 연합뉴스)
▲ 종묘 정전 (사진=국가유산청 궁능유적본부 제공, 연합뉴스)

조선 왕조의 정통성을 상징하는 공간이자 한국 전통 건축의 '정수'로 꼽히는 종묘 정전(正殿)이 오랜 공사를 끝내고 모습을 드러냅니다.

국가유산청은 대규모 수리를 마친 종묘 정전을 20일 공개합니다.

건물 노후화로 주요 부재와 기와, 월대 일부가 파손되는 등 안전 문제가 우려돼 2020년 대대적인 보수·수리에 나선 지 약 5년 만입니다.

국가유산청 측은 "1989년부터 1991년까지 정전 지붕과 기둥을 수리했으나, 이번이 가장 규모가 큰 공사"라며 "30년 만에 이뤄진 대규모 공사"라고 설명했습니다.

종묘 정전

종묘 정전은 조선 왕실의 사당인 종묘에서 가장 중심이 되는 건물입니다.

조선 초에는 태조 이성계(재위 1392∼1398)의 4대조(목조, 익조, 도조, 환조) 신위를 모셨으나, 이후 공덕이 있는 역대 왕과 왕비의 신주를 모시고 제사를 지내는 곳이 됐습니다.

총 19칸의 방에 왕과 왕비 등 신주 49위를 보관하며 1985년 국보로 지정됐습니다.

마치 굵은 선 하나를 그어놓은 듯 100m 넘게 이어진 건물은 그 무엇보다 정제되고 장엄한 건축물이라는 평가를 받습니다.

1995년 유네스코 세계유산(종묘)에 등재됐습니다.

공사 전 정전 모습

새로 단장한 정전에서 가장 주목해야 할 부분은 지붕 기와입니다.

기존에 지붕 앞쪽에는 공장제 기와, 뒤쪽에는 수제 기와를 얹어 하중이 한쪽으로 쏠렸던 현상을 개선하기 위해 수제 기와 약 7만 장을 만들어 모두 교체했습니다.

국가무형유산 제와장 김창대 보유자 주도로 전통 기법과 재료를 가능한 활용해 기와를 제작했습니다.

지붕의 기와를 잇는 작업은 국가무형유산 번와장인 이근복 보유자와 이주영 전승교육사 부자(父子)가 맡았습니다.

국가유산청 관계자는 "암키와를 놓고 보면 기존 공장제 기와는 무게가 약 9kg이지만, 수제 기와는 6kg로 약 33% 가벼워졌습니다. 색상도 인위적이지 않아 자연스럽게 어우러진다"고 설명했습니다.

공사 전 정전 모습

웅장하고 위엄 있는 건축물 본연의 모습을 살리려는 노력도 있었습니다.

정전 앞에 깔려 있던 시멘트 모르타르는 걷어내고 수제 전돌(흙을 벽돌 모양으로 구워 만든 건축재료로 주로 바닥과 벽에 쓰임)을 깔았습니다.

시멘트 모르타르는 1928년에 설치했다고 알려져 있으나, 자세한 내용은 확인되지 않았습니다.

국가유산청은 이번에 수리를 진행하면서 전통 소재를 이용한 기법으로 외부 단청도 칠했습니다.

또, 정전을 받치는 넓은 기단 형식의 대인 월대의 석축도 일부 보수했습니다.

당초 공사는 2022년 마무리될 예정이었으나, 지붕을 해체하는 과정에서 부재 상태가 좋지 않다는 판단에 따라 수리 범위가 넓어진 것으로 전해졌습니다.

서월랑의 경우, 계획과 달리 초석(礎石·주춧돌)과 기단까지 해체했습니다.

건물 뒤쪽과 서쪽 익랑 부근에서는 '목조 문화유산 천적'으로 알려진 흰개미 피해가 확인돼 방재 작업도 이뤄졌습니다.

전체 보수 공사에는 약 200억 원이 투입됐다고 국가유산청은 전했습니다.

수리 과정에서 종묘 정전의 역사와 가치를 재확인한 점은 의미 있는 성과입니다.

상량문 보존 처리 과정

국가유산청은 "주요 목 부재의 연륜(나이테) 연대를 조사한 결과, 광해군(재위 1608∼1623) 대의 목재가 사용됐다는 점을 확인했다"고 밝혔습니다.

조선왕조실록과 의궤 등 문헌 기록에 따르면 종묘 정전은 1395년 처음 건립됐으나 임진왜란으로 소실됐고, 광해군 대인 1608년 11칸 규모로 다시 지었습니다.

이후 영조(재위 1724∼1776)와 헌종(재위 1834∼1849) 대에 각각 4칸씩 증축됐습니다.

광해군이 재위하던 시기의 목재가 쓰였다는 점은 광해군 대에 종묘를 중건했다는 문헌 기록을 재확인한 셈입니다.

상량문(上樑文)이 발견된 점도 주목할 만합니다.

상량문 보존 처리 과정

상량문은 목조 건물을 짓거나 고칠 때 최상부 부재인 종도리(마룻도리)를 올리고 제의를 지내면서 쓴 글로, 건축 역사를 알 수 있는 자료로 여겨집니다.

국가유산청은 2023년 4월 정전의 11번째 방의 종도리 하부에서 상량문을 찾았습니다.

국가유산청 측은 "영조 대에 정전을 증축하면서 제작된 것으로 추정된다"며 "1726년 공사 과정을 기록한 '종묘개수도감의궤'(宗廟改修都監儀軌)와 부합한다"고 설명했습니다.

공사가 마무리된 만큼 왕과 왕비의 신주는 본래 자리로 돌아갑니다.

국가유산청은 그동안 창덕궁 옛 선원전으로 옮겼던 조선의 역대 왕과 왕비 신주(神主·죽은 사람의 위패)를 다시 종묘로 옮기는 환안(還安) 행사를 이날 오후에 엽니다.

환안 의례는 고종(재위 1863∼1907) 7년인 1870년 이후 155년 만입니다.

왕의 신주를 운반하는 가마인 신연(神輦)을 비롯해 전국에서 모은 가마 28기와 말 7필이 시민 행렬단과 함께 광화문에서 종묘까지 약 3.5㎞ 구간을 행진하는 장면이 펼쳐집니다.

신연

종묘에 도착한 뒤에는 신주가 무사히 돌아온 것을 고하는 고유제와 기념식을 엽니다.

국가유산청은 유네스코 등재 30주년을 맞아 종묘에서 다양한 행사를 열 계획입니다.

정전에서는 24일부터 5월 2일까지 종묘제례악 야간 공연이 펼쳐지며, 26일∼5월 2일에는 조선시대 왕비가 참여했던 국가 의례를 엿볼 수 있는 재현 행사를 선보입니다.

조선 왕실의 제사 중 가장 규모가 크고 중요한 종묘대제는 약 6년 만에 일반에 공개됩니다.

종묘 정전 제향

최응천 국가유산청장은 "종묘 수리는 우리 기술로 옛 장인의 손길을 되살리고, 과거와 현재, 미래를 연결한 시간이었다"며 "국가유산의 가치를 온전히 전하도록 노력하겠다"고 말했습니다.

(사진=국가유산청 궁능유적본부 제공, 연합뉴스)
NAVER에서 SBS NEWS를 구독해주세요
댓글 아이콘댓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