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형배·이미선 재판관 '퇴임'…헌재 떠나며 마지막 당부

문형배 헌법재판소장 권한대행(사법연수원 18기)이 6년의 헌법재판관 임기를 마치고 오늘(18일) 퇴임하며 헌재 결정에 대한 존중을 비롯해 재판관 구성 다양화, 더 깊은 대화가 헌재 책무를 다하기 위해 필요하다고 밝혔습니다.

문 대행은 오늘 오전 11시, 다른 재판관들과 함께 퇴임식이 열리는 헌재 대강당에 직원들의 박수를 받으며 입장했습니다.

행사장에는 최근 윤석열 전 대통령 탄핵심판 이후 이목이 쏠린 탓에 평소보다 많은 취재진이 몰렸습니다.

문 대행은 헌재 구성원들에게 허리 숙여 인사한 뒤 퇴임사를 시작했습니다.

3쪽 분량의 원고가 준비됐으나, 그는 퇴임사를 모두 암기해 구성원들과 눈을 마주치며 퇴임의 소회를 전했습니다.

문 대행은 "헌재가 헌법이 부여한 사명을 다하기 위해 사실성과 타당성을 갖춘 결정을 해야 한다"며 이를 위해선 △재판관 구성 다양화, △더 깊은 대화 △결정에 대한 존중이 보충돼야 한다고 말했습니다.

먼저, 문 대행은 "(헌재의) 결정에 대한 존중이 필요하다"며 "학술적 비판은 당연히 허용돼야겠지만 대인논증 같은 비난은 지양돼야 한다"고 말했습니다.

대인논증은 경력이나 사상 등을 지적하면서 비판하는 것을 뜻합니다.

이는 문 대행을 비롯해 재판관들에게 그간 이뤄진 '이념·성향' 등에 근거한 일각의 문제 제기를 우회적으로 비판한 것으로 풀이됩니다.

문 대행의 경우 대표적 진보 성향 판사 출신이란 평가와, 우리법연구회 회장을 역임한 점을 들어 사안 판단에 비판이 이뤄진 바 있습니다.

문 대행은 "흔히 대통령중심제 국가에서는 대통령과 국회 사이에 정치적 해결이 무산됨으로써 교착상태가 생길 경우 이를 해소할 장치가 없다고들 한다"고 운을 뗐습니다.

이어 "그러나 헌법의 설계에 따르면, 헌재가 권한쟁의 같은 절차에서 사실성과 타당성을 갖춘 결정을 하고 헌법기관이 이를 존중함으로써 교착상태를 해소할 수 있는 길이 열려 있다"며 "견제와 균형에 바탕한 헌법의 길은 헌재 결정에 대한 존중으로 더욱 굳건해질 것"이라고 강조했습니다.


또 문 대행은 "집단사고의 함정에 빠지지 않기 위해, 다양한 관점에서 쟁점을 검토하기 위해 재판관 구성의 다양화가 필요하다"며 "이를 위해 헌법실무 경험이 많은 헌법연구관이나 교수에게 재판관이 되는 길을 터줘야 한다"고 제언했습니다.

또 "재판관과 재판관 사이에서, 재판부와 연구부 사이에서, 현재의 재판관과 과거의 재판관 사이에서 더 깊은 대화가 필요하다"며 "타인의 의견을 경청하는 과정과 경청 후 자신의 의견을 수정하는 성찰의 과정이 포함된다"고 덧붙였습니다.

문 대행은 다른 재판관과 헌재 구성원 등에 감사를 전하며 "시민의 한 사람으로 돌아가 제 나름의 방식으로 헌재를 응원하겠다"고 말했습니다.

헌재 내 테니스·걷기 동호회 회원들에게도 "특별한 감사"를 전하는 대목에서 참석자들 사이에 웃음이 터져 나오기도 했습니다.

문 대행은 법률교양 분야 베스트셀러인 '생활법률 상식사전'을 쓴 법원공무원 김용국 씨, 문 대행이 부산에서 판사로 재직할 당시 그의 판결에 관해 많은 기사를 작성한 김훤주 전 경남도민일보 기자에게도 별도로 감사를 표했습니다.

오늘 퇴임사는 통상 헌재 공문 틀이 아닌 일반 문서 형태로 제시돼 눈길을 끌었습니다.

헌재 로고가 들어가고, 재판관 이름이 궁서체로 표지에 적힌 퇴임사가 아닌 '표지 없는' 퇴임사가 배포됐습니다.

내부에서는 소탈한 평소 스타일이 반영됐다는 얘기가 나왔습니다.

문 대행은 경남 하동 출신으로, 서울대 법대를 졸업한 뒤 1992년 부산지법 판사로 법관 생활을 시작했습니다.

창원지법 진주지원장, 부산가정법원장, 부산고법 수석부장판사 등을 거쳤고 문재인 전 대통령의 지명을 받아 2019년 4월 헌법재판관에 취임했습니다.

그는 이종석 전 헌재소장이 퇴임한 지난해 10월부터 권한대행을 맡아왔고, 윤석열 전 대통령 탄핵심판에서 파면을 선고한 주문을 낭독했습니다.

문 대행은 원래 거주지인 부산으로 내려가 당분간 휴식을 취할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그간의 경찰 경호도 오늘부로 해제됩니다.


문 대행과 같이 임기를 시작한 이미선 재판관도 이날 함께 퇴임했습니다.

이 재판관은 퇴임사에서 "국가기관은 헌법을 준수해야 한다. 이는 주권자인 국민의 명령이고, 자유민주국가가 존립하기 위한 전제"라며 "국가기관이 헌법을 준수하지 않고 무시할 때 우리 사회를 지탱하는 질서가 흔들릴 수 있다"고 말했습니다.

이 재판관은 헌재를 향해서도 "헌법의 규범력이 훼손되지 않도록 헌재가 그동안 해왔던 것처럼 국민의 기본권 보호와 헌법 질서의 수호·유지에 전력을 다해달라"고 당부했습니다.

(사진=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