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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위스로 조력 사망 하러 갑니다"…'금기' 대신 '담론'이 필요한 이유 [스프]

[뉴욕타임스 칼럼] There's a Lesson to Learn From Daniel Kahneman's Death, by Katarzyna de Lazari-Radek and Peter Singer
조력사망
 

* 카타지나 라자리라덱, 피터 싱어는 철학과 교수다. 이들은 어떤 삶이 좋은 삶인지 탐구하고 생각해 보는 팟캐스트를 진행한다.
 

2024년 3월 19일, 우리는 노벨상을 받은 심리학자 다니엘 카네만에게 우리 팟캐스트 "잘 사는 인생(Lives Well Lived)"에 출연해 달라는 초대장을 이메일로 보냈다. 5월쯤 출연하는 게 어떨지 제안을 담았다. 그는 곧바로 팟캐스트 출연이 어려울 것 같다는 답을 보냈다. 그런데 이유가 뜻밖이었다. 답장에는 지금 스위스로 가고 있는데, 90세 나이에도 자신은 건강한 편이지만, 약 일주일 뒤인 27일 의사 조력자살을 계획하고 있다고 쓰여 있었다.

카네만 교수는 며칠 뒤 자신의 친구들이 받아볼 편지도 미리 보여주면서 설명을 이어갔다.
저는 제가 10대 시절부터 나이 들어 죽기 전 마지막 몇 년간 겪는 고통과 굴욕은 불필요하다고 믿어왔습니다. 이제 그 믿음에 따라 행동하고 있습니다. 저는 여전히 활동적이고, (매일 보는 뉴스를 제외하면) 인생의 많은 것들을 여전히 즐기고 있으며, 그렇게 행복한 사람으로 생을 마감할 겁니다. 하지만 제 신장은 이제 거의 기능을 멈췄고, 정신이 흐릿하거나 오락가락할 때도 자꾸 늘어납니다. 저는 90살입니다. 이제 갈 때가 됐어요.

그가 사랑하는 사람 중에는 그에게 더는 생명을 연장하는 게 의미가 없다는 점이 명확해질 때까지 기다려보지 않겠냐고 설득한 사람도 있었다. 하지만 결국엔 다들 마지못해라도 그의 선택을 지지하게 됐다고 그는 덧붙였다.

우리는 카네만 교수를 굳이 말리려고 하지 않았다. 대신 사람들에게 잘 살기 위해 꼭 기억해야 할 것이 있다면 무엇이라고 생각하는지 우리와의 인터뷰에서 이야기해 달라고 부탁했다. 그는 인터뷰 요청을 수락했다. 다만 조력 자살로 생을 마감하기로 한 결정에 관해선 이야기하고 싶어 하지 않았다.

인터뷰는 3월 23일에 진행했다. 카네만 교수는 쾌활하고 생기가 넘쳤으며, 정신도 맑아 보였다. 인터뷰한 다음 날엔 우리에게 대화가 정말 즐거웠다고 메시지를 보내오기도 했다. 그게 그에게서 받은 마지막 메시지였다. 3월 27일, 카네만 교수는 계획한 대로 죽음을 맞았다.

처음 카네만 교수의 죽음이 알려졌을 때는 그가 어디서, 어떻게 죽었는지에 관한 사실이 밝혀지지 않았다. 이제 그런 사실들이 언론에 보도된 만큼 우리는 스스로 생을 마감하기로 한 그의 선택이 제기하는 중요한 문제들에 관해 좀 더 편안하게 논의할 수 있게 됐다.

많은 나라와 미국 내 10개 주에서는 말기 질환을 겪는 환자들에 한해 자발적인 조력 죽음을 허용하고 있다. 또한, 불치병으로 인해 환자가 극심한 고통을 겪는 경우에도 조력 죽음을 허용하는 곳도 있다. 하지만 상대적으로 건강한 사람이 스스로 자기는 살 만큼 살았다고 판단해 생을 마감할 수 있게 하는 건 논란의 여지가 훨씬 크다. 카네만 교수가 스위스에 가서 죽음을 맞은 것도 그 때문이다. 스위스는 죽고 싶다는 의지가 확고한 성인이라면 스위스에 사는 사람이 아니라도 합법적으로 임종을 맞이할 수 있는 나라기 때문이다.

카네만 교수는 90세의 나이에 자신의 삶을 마쳤다고 생각했다. 오랫동안 프린스턴대학교와 인연을 맺은 카네만은 실로 엄청난 업적을 남겼다. 1970년대 그는 행동경제학이라는 분야를 개척해 인간의 의사결정을 이해하는 데 결정적으로 기여했다. 2011년 펴낸 책 "생각에 관한 생각(Thinking, Fast and Slow)"은 전 세계적인 베스트셀러가 됐다.

그러나 나이가 들어서도 카네만은 여전히 연구나 저술 활동을 할 수 있었고, 대중에 더 나은 결정을 내리는 법을 깨우쳐주는 데도 탁월했다. 그의 뛰어난 지적 능력 외에도 그는 친구들과 어울리고 가족과 즐겁게 지내는 데 부족함이 없을 만큼 몸과 마음이 건강했다. 왜 이 모든 것이 그를 더 살게 하는 이유가 되지 못했을까?

우리는 그와 진행한 인터뷰 말미에 그게 한 말에 답이 있다고 생각한다. 그는 자신의 연구에 객관적인 의미, 즉 어떤 보편적인 가치가 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고 말해 우리를 놀라게 했다.
사람들은 제 연구를 인류에게 도움이 되는 일이라고 추켜세우곤 합니다. 사실 저는 그저 제가 하는 일이 좋아서 아침에 눈을 뜨고 일어나는 것뿐인데 말이죠.

우리는 자고로 인생에는 객관적인 의미를 찾을 수 있는 좋은 일이 있지 않느냐고 반박했다. 그러나 그는 우리 생각에 동의하지 않았다.
저는 제가 인생을 잘 살았다고 생각해요. 다만 그건 어디까지나 제 느낌이죠. 저는 제가 해온 일들에 합리적으로 만족해요. 글쎄요, 만약 객관적인 관점 같은 게 있더라도 그건 저랑 아무런 상관이 없습니다. 마치 우리가 우주와 그 우주의 복잡성을 떠올리면 제가 하루 동안 하는 일은 아무런 상관이 없는 것처럼요.

우리는 우주의 크기와 복잡성이 인류를 위해 개인이 할 수 있는 일을 무의미하게 만든다는 말에 동의하지 않는다. 그러나 곰곰이 생각해 보면, 당신이 당신의 삶은 마무리할 때가 됐다는 마음을 먹고 그 마음을 오랫동안 굳게 간직한다면 무엇이 당신에게 좋은지 결정하는 건 결국 당신 본인이 제일 잘할 수 있다. 특히나 삶의 질이 나아지는 걸 기대하기 어려운 나이에 다다른 경우에는 더욱 그렇다.

그래도 죽음을 선택할 권리를 이렇게 확장하는 일은 여전히 신중하게 생각해야 할 근거가 많다. 예를 들어 삶에 지쳤다고 말하는 노인들 가운데는 심리 상담을 받으면 자기 삶을 좀 더 긍정적으로 느낄 수 있는 이들이 있다. 환자가 말기 질환으로 치료를 받는 상황이 아니므로, 이럴 땐 의사가 개입하지 않는 편이 낫다. 만약 말기 질환이나 불치병을 앓지 않는데도 노인들이 조력 죽음을 맞는 상황이 흔해지고 당연한 게 되면 자신이 가족에게 짐이 된다고 믿는 노인들이 스스로 생을 마감해야 한다는 부담을 느낄 수도 있다.

이 모든 반론에는 어느 정도 대응할 수 있다. 즉, 조력 죽음을 신청하는 사람은 누구나 의무적으로 먼저 심리 상담을 받도록 의무화해야 한다. 조력 죽음에 보통 의사가 참여하는 이유도 간단하다. 많은 나라에선 환자의 상태가 의학적으로 심각해야만 조력 죽음을 허용하는데, 이를 판단할 수 있는 건 의사밖에 없고, 약을 처방하거나 사망진단서에 서명할 수 있는 것도 의사뿐이라서 그렇다. 하지만 만약 심각한 질병이 없거나 의학적 상태가 나쁘지 않아도 조력 죽음을 맞이할 수 있다면, 의사 말고 이 일을 맡는 직종이 개발될 수도 있을 것이다.

가족에게 짐이 된다는 생각 때문에 생을 마감하려 하는 노인들이 없다고 말하는 건 아니다. 그러나 그것이 보통 주된 이유라고 여겨서는 안 된다. 조력 죽음이 합법인 오레곤주에서는 주 정부가 매년 법에 따라 진행된 조력 죽음 사례들을 검토한다. 지난해 말기 질환 환자들 가운데 의사 조력 자살로 사망한 사람의 42%는 자신이 가족에게 짐이 된다고 느꼈다. 하지만 자율성을 잃어간다(89%)거나 삶을 즐겁게 만드는 활동에 참여하지 못하는 것(88%), 사람으로서 존엄성을 잃어가는 것(64%)에 비하면 덜 중요했다. 삶이 그나마 괜찮다고 여길 만한 이유도 잘 없어서 간신히 버티는 상태에 처한 이들이 자신이 사랑하는 사람들한테 짐이 된다고 느끼는 건 전혀 무리가 아니다.

(남은 이야기는 스프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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