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하버드대
미국의 번영과 국력을 뒷받침하는 학문적 성취의 상징과도 같은 하버드대와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의 충돌이 격화하고 있습니다.
하버드대가 연방 지원금 삭감 압박에도 정책 변경 요구를 받아들이지 않자 트럼프 대통령은 자금 지원 동결에 그치지 않고 '면세 지위'도 박탈하겠다고 위협 수위를 높였습니다.
트럼프 대통령은 15일(현지시간) 오전 자신의 소셜미디어(SNS) 트루스소셜에 올린 글에서 "면세 지위는 전적으로 공공의 이익에 따른 행동에 달렸다는 점을 기억하라"며 "만약 계속해서 정치적이고 이념적이며 테러리스트의 영감을 받거나 (테러리스트가) 지지하는 '질병'을 추진한다면 아마 하버드는 면세 지위를 잃고 정치 단체로 세금이 매겨져야 할 것"이라고 밝혔습니다.
전날 미국 행정부가 하버드대에 수년간 22억 달러(약 3조 1천억 원) 규모의 보조금과 6천만 달러(약 854억 원) 규모의 계약을 동결하겠다고 밝힌 데 이어 트럼프 대통령이 직접 추가 조치를 거론한 것입니다.
14일 하버드대가 캠퍼스 내 반유대주의 근절 등을 명분으로 한 트럼프 정부의 교내 정책 변경 요구를 주요 명문대학 중 최초로 공개 거부한 지 하루 만입니다.
미국 일간 뉴욕타임스(NYT)에 따르면 트럼프 대통령은 14일 밤 하버드대의 입장을 다룬 뉴스를 보고 직접 조치 수위를 높이기로 결정했다고 합니다.
이런 연쇄적인 조치는 하버드대에 상당한 압력으로 작용할 것으로 보입니다.
우선 앞서 행정부가 발표한 연방 보조금의 동결만으로도 세계 선두권으로 분류되던 하버드대의 첨단 의료 및 과학기술 연구 역량에 타격이 불가피합니다.
지난해 연방정부가 지급한 보조금은 6억 8천600만 달러(약 9천800억 원)로, 이는 하버드대 총 후원 수입의 68%를 차지했습니다.

물론 하버드대는 지난해 기준으로 연간 5천320억 달러(약 760조 원)의 기부금을 받는, 미국에서 가장 '부유한' 대학입니다.
이는 세계 100개국의 국내총생산(GDP)을 합친 규모보다 큽니다.
하지만 워싱턴포스트(WP)에 따르면 이들 기금은 상당 부분 기부자에 의해 사용처가 제한돼 있어 당장 연방 보조금의 결손을 막는 데 사용하기는 어렵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대부분 세금을 내지 않아도 되는 면세 지위까지 박탈되면 수십억 달러의 손실을 입을 수 있다고 NYT는 전했습니다.
여기에 대학에 대한 기부금에 대한 세금 공제 혜택까지 영향을 받을 경우 초부유층의 기부금 규모도 축소될 가능성을 배제하기 어렵습니다.
미국 연방 법률이 직접적으로든 간접적으로든 대통령이 국세청(IRS)의 세무조사를 지시해서는 안 된다고 규정하고 있고, 하버드대의 면세 지위를 박탈할 만한 명분도 없는 만큼 현실화하기 어려운 압박이란 전망도 나옵니다.
하버드대의 면세 지위를 박탈하려면 IRS가 조사를 진행한 뒤, 정치적·경제적으로 중립성을 잃어버렸다는 등의 문제를 발견해야 합니다.
빌 클린턴 행정부에서 재무부 장관을 지낸 로런스 서머스 전 하버드대 총장은 "세무 시스템을 이용해 정적을 선택적으로 괴롭히는 것은 일종의 독재"라며 "만약 정말 하버드대의 면세 지위가 박탈된다면 이는 의료·과학의 발전과 서구사회의 가치, 후손들의 기회, 세계 속의 미국의 위상을 파괴하는 일이 될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그러나 트럼프 행정부가 이미 불법 이민자 대응 등에 있어서 정치적 중립 위반 논란을 무릅쓰고 IRS를 활용한 전력이 있는 만큼 이번에도 밀어붙일 가능성도 있습니다.
소송 등을 무릅쓰고 이를 실행하는 것 자체가 하버드대에는 압박이 될 수도 있습니다.
이렇게 즉각적인 강경 대응이 이어지는 것은 그만큼 하버드가 가진 상징성이 크기 때문으로 분석됩니다.
하버드대는 1636년에 설립된 미국 최초의 고등교육기관으로, 1776년에 독립한 미국보다 역사가 140년이나 깁니다.
역대 미국 대통령만 8명을 배출하는 등 세계 최강대국으로 군림하는 미국의 성취를 상징하는 곳입니다.
미국 사회 곳곳에서 주도권을 행사하는 좌파 엘리트의 성채를 무너뜨리겠다는 '큰 그림'의 일부분으로 명문대학 때리기에 나선 트럼프 행정부로서는 반드시 굴복시켜야 할 대상인 셈입니다.
반대로 하버드대가 '깃발'을 들면 트럼프 대통령의 '문화 전쟁'에 직면한 각 기관의 저항이 들불처럼 확산할 수도 있습니다.
특히 대학들만이 아니라 그간 다양한 방식의 직간접적 압력을 받아 왔던 대형 로펌 등 법조계나 언론계 등에서도 반발이 이어질 수 있다고 NYT는 전망했습니다.
실제 대학가에서는 하버드대를 지지하는 목소리가 줄을 잇고 있습니다.
영국 BBC에 따르면 예일대에서는 수백 명의 교수진이 공개서한을 통해 "미국 대학들은 민주사회의 기반이 되는 원칙인 표현의 자유, 결사의 자유, 학문의 자유에 대한 비상한 공격에 직면해 있다"며 "교수진이 한 목소리로 함께 해 달라"고 호소했습니다.
스탠퍼드대는 총장과 교무처장 명의의 성명을 내고 "국가의 과학 연구 역량을 망가뜨리거나 정부가 민간 기관을 장악하는 방식으로는 건설적 변화를 가져올 수 없다"고 밝혔습니다.
매사추세츠공대(MIT)는 15일 하버드의 뒤를 이어 트럼프 행정부의 요구를 거부했습니다.
고등교육 비영리조직인 미국교육협의회(ACE) 테드 미첼 회장은 "하버드가 이런 입장을 취하지 않았다면 다른 기관들이 같은 일을 하는 것은 거의 불가능했을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하버드대는 트럼프 대통령의 면제 지위 위협에 대해서는 공식 반응을 내놓지 않고 있습니다.
다만 트럼프 행정부의 요구 거부를 앞둔 지난주, 7억 5천만 달러(약 1조 원) 규모의 채권을 발행해 유동성을 확보했다고 WP는 전했습니다.
(사진=AP,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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