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세계 스포츠사를 수놓았던 명승부와 사건, 인물, 교훈까지 별의별 이야기를 들려드리는 '별별스포츠+', 역사와 정치마저 아우르는 맥락 있는 스포츠 이야기까지 보실 수 있습니다.
지난 3월 12일 한국 스포츠계에 큰 소식이 전해졌습니다. 1920년 조선체육회를 포함해 대한체육회가 출범한 지 105년 만에 처음으로 여성인 김나미(54) 전 국제바이애슬론연맹 부회장이 사무총장에 선임된 것입니다. 알파인 스키 국가대표 출신인 김나미 사무총장은 취임 일성으로 변화와 혁신을 이끌겠다며 '선수 중심의 스포츠 환경'과 '국제 경쟁력 강화'를 목표를 내걸었습니다. 이로부터 9일 뒤인 21일, 이번엔 세계가 깜짝 놀랄만한 일이 벌어졌습니다. '세계 스포츠 대통령'으로 불리는 국제올림픽위원회(IOC) 새 위원장에 짐바브웨의 커스티 코번트리가 선출되며 131년 만에 이른바 '유리 천장'이 깨진 것입니다.
여성 최초, 아프리카 최초의 위원장 탄생

코번트리의 당선은 그야말로 '쇼킹'했습니다. 1894년에 창설된 IOC는 '나이 많은 백인 남자 귀족'의 아성이라 할 만큼 보수 색채가 짙은 곳이었기 때문입니다. 코번트리는 IOC 131년 사상 최초의 여성 위원장이란 점에서 신기원을 열었습니다. 나이도 41살로 매우 젊었습니다. 여기에다 역대 최초로 아프리카 출신으로 IOC 수장에 오르는 새 역사를 동시에 썼습니다. 로이터 통신은 "올림픽 역사에서 새로운 시대의 시작을 의미한다"라고 평가했고 코번트리는 당선 후 기자회견에서 "이것은 정말 강력한 신호"라며 "우리는 진정으로 글로벌화하고 있으며, 다양성을 수용하는 방향으로 진화해 왔음을 보여준다. 앞으로 8년 동안 그 길을 계속 걸어갈 것"이라고 밝혔습니다.
2004 아테네 올림픽과 2008 베이징 올림픽에서 수영 여자 배영 200m를 2연속 제패한 코번트리는 올림픽 메달만 7개(금 2, 은 4, 동 1)로 화려한 이력을 자랑하며, 2012 런던 올림픽 기간에 IOC 선수 위원으로 당선돼 체육 행정가로 투신한 뒤 2023년에는 IOC 집행위원에 올랐습니다. 그는 일찌감치 12년간 재임한 토마스 바흐(독일) 현 IOC 위원장의 '후계자'로 낙점됐습니다. 바흐 위원장의 든든한 지원을 받았지만 당선 가능성은 그리 높지 않았습니다. 이번 선거에는 총 7명의 후보가 출마해 역대 최다를 기록했는데 후안 안토니오 사마란치 전 IOC 위원장의 아들인 사마란치 주니어(65·스페인) IOC 부위원장과 육상 스타 출신인 서배스천 코(68·영국) 국제육상경기연맹 회장 등 쟁쟁한 인물이 버티고 있었기 때문이었습니다.
하지만 코번트리는 사람들의 예상을 보기 좋게 깨버렸습니다. 그리스 코스타 나바리노에서 열린 제144차 IOC 총회에서 1차 투표 만에 전체 97표 가운데 당선에 필요한 과반인 49표를 정확하게 얻어 6명의 남성 후보들을 압도적으로 제치고 제10대 위원장으로 당선된 것입니다. 사마란치 주니어가 28표로 2위였고, 강력한 후보로 거론됐던 서배스천 코는 8표에 그치는 망신을 당했습니다. 1980년 모스크바 올림픽, 1984년 LA 올림픽에서 연속 금메달을 따냈고 2012 런던올림픽 조직위원장까지 지낸 세계 스포츠계 거물인 그가 이처럼 초라하게 무너질 줄은 그 누구도 상상하지 못했습니다.
'혁신과 변화에 대한 갈망'

그럼 코번트리가 대이변을 일으킨 원동력은 무엇일까요? 화려한 스펙을 보유해 다소 거만해 보였던 서배스천 코와 달리 겸손하고 온화한 성격으로 빼어난 소통 능력을 갖췄다는 점이 플러스 요인으로 작용한 것은 분명합니다. 하지만 이보다 더 근본적인 힘은 혁신과 변화에 대한 갈망이 투표권을 행사했던 IOC 위원들 사이에서 광범위하게 형성됐기 때문입니다. IOC 사정에 정통한 전문가가 필자에게 전한 분석은 이렇습니다.
"올림픽의 위상과 인기가 예전만 같지 않다는 위기감은 IOC 위원들이 오래전부터 공유하고 있었다. 그래서 스포츠 클라이밍, 스케이트보드 등 청년들이 좋아하는 종목들을 올림픽에 집어넣는 등 대책을 마련했지만 이것만으로는 부족했다. 앞으로 기후 변화에 대처하는 IOC의 역할, 성평등, 다양성, 새로운 시장 개척 등 여러 이슈에 있어서 획기적인 변화가 이뤄지지 않으면 안 된다는 인식이 널리 퍼지기 시작했다. 코번트리 당선은 이젠 바뀌어야 한다는 공감대가 강하게 형성되면서 이뤄진 것이다."
2036 전북 올림픽 유치에 호재?

이제 우리의 관심은 코번트리 위원장의 당선이 한국 스포츠에 유리할 것인가에 쏠립니다. 국내 체육계 인사들의 반응은 대부분 긍정적입니다. 무엇보다 신임 유승민 대한체육회장과 가까운 사이라는 점이 플러스로 작용할 것으로 기대하고 있습니다. 유승민 회장과 코번트리 위원장은 2004년 아테네 올림픽 금메달리스트라는 공통점이 있고 두 사람은 2016년부터 4년간 IOC 선수위원으로 함께 활동하며 우의를 다졌습니다. 1982년생인 유 회장과 1983년생인 코번트리 위원장은 동년배로서 여성 리더를 존중하고 우대한다는 점도 닮았습니다. 전북이 도전장을 낸 2036년 하계 올림픽 개최지 선정이 코번트리 위원장이 주도하는 IOC 총회에서 투표로 결정되는 만큼 둘의 우호적인 관계가 올림픽의 국내 유치에 힘이 실릴 수 있을 것이라는 전망이 나오고 있습니다.

코번트리가 위원장으로 선출되면서 전북특별자치도의 대응도 빨라지고 있습니다. 전북은 '첫 여성 위원장'이라는 상징성을 활용하고 올림픽 철학을 분석해 기존의 전략을 보완, 부각, 발전시킨다는 구상입니다. 전북은 코번트리가 추구하는 올림픽 철학을 다변성, 저비용·고효율, 지속 가능성, 친환경, 선수 역량 강화, 여성 스포츠 보호 등으로 분석했습니다.
(남은 이야기는 스프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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