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평택항 인근에 수출용 차들이 세워져 있다.
미국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3일(현지시간) 한국에 대해 25%의 상호관세를 발표하면서 자동차를 비롯한 국내 산업계가 이른바 '퍼펙트 스톰'(복합 위기)에 직면했습니다.
다만 앞서 25%라는 품목별 관세가 부과된 수입산 자동차에 대해서는 상호관세가 면제되면서 국내 자동차 업계는 일단 최악의 상황은 피했다는 분위기입니다.
하지만 25%의 품목 관세만으로도 현지 가격 상승에 따른 판매 감소가 불가피해 현대차그룹과 한국GM 등 미국 수출량이 많은 국내 완성차업체의 경영 타격은 불가피할 전망입니다.
여기에 트럼프 대통령이 상호관세의 부과 근거인 불공정 무역의 대표적 예로 한국 자동차 시장의 비관세 장벽을 언급하면서 이번 상호관세 면제만으로는 안심할 수 없는 상황이 됐습니다.
트럼프 대통령이 계속해서 언급하는 관세 '유연성'을 끌어내기 위한 국가 차원의 협상이 필요하다는 조언이 나오는 것도 이 때문입니다.

트럼프 대통령은 오늘 상호관세 부과 기준이 되는 타국의 불공정 무역관행들을 언급하며 한국의 비관세 장벽이 미국산 자동차의 수출을 막고 있다고 비판했습니다.
그는 "한국, 일본과 다른 매우 많은 나라가 부과하는 모든 비(非)금전적 무역 제한이 어쩌면 최악"이라며 "이런 엄청난 무역장벽의 결과로 한국에서 판매되는 자동차의 81%는 한국에서 생산됐다"고 지적했습니다.
한국 자동차 시장의 비관세 장벽이 한국에 대한 관세정책 명분으로 활용되는 것이 아니냐는 우려는 이전부터 제기됐습니다.
주한미국상공회의소(암참)는 지난해 7월 발간한 '2024 국내 비즈니스 환경 인사이트 리포트'에서 한국의 자동차 환경·안전 규제를 언급하며 "환경 혹은 안전이라는 명목으로 부과되는 기술적 조치들은 한국 내 미국 자동차 기업에는 기울어진 운동장과도 같았다"고 지적했습니다.
암참이 문제 삼은 규제는 전기차 보조금 수립 절차, 주행거리 시험 방식, 온실가스 감축 기준, 폐자동차 유해 물질 규제 등입니다.
미국무역대표부(USTR)도 지난달 국가별 무역장벽보고서(NTE)에서 "미국 자동차 제조사의 한국 자동차 시장 진출 확대는 여전히 미국의 주요 우선순위"라고 밝히며 한국의 대기환경보전법에 따른 배출 관련 부품 규제에 문제를 제기했습니다.
또 USTR은 자동차 수입과 관련한 법을 위반할 경우 한국 세관 당국이 업체를 형사 기소할 수 있지만 세관이 한국에서 제조된 차량을 조사할 권한이 없다는 점도 지적했습니다.
상호관세는 피해갔지만 오늘부터 수입 자동차 관세가 부과돼 국내 자동차업체들은 타격을 피할 수 없게 됐습니다.
지난해 한국 자동차 생산 대수는 413만 대이며, 이 중 수출 대수는 278만 대로 비중이 67%에 달했습니다.
이 중 대미 수출 대수는 143만 대(현대차·기아 101만 대, 한국GM 41만 대)로 전체 생산의 35%, 전체 수출의 51%를 차지했습니다.
미국 자동차 수출액도 347억 4천400만 달러(약 50조 원)로 집계됐습니다.
IBK기업은행 경제연구소는 수입산 자동차에 25% 관세가 적용될 경우 한국 자동차 수출액이 지난해 대비 약 63억 5천만 달러(9조 2천억 원) 감소할 것으로 추정했습니다.
국내 최대 자동차업체이자 글로벌 3위 완성차업체인 현대차그룹의 수익성도 악화가 불가피할 전망입니다.
KB증권에 따르면 25% 관세가 부과될 경우 미국으로 수입되는 한국산 자동차에는 약 1천225만 원의 관세가 붙게 되며, 이 중 40%는 미국 소비자가, 60%는 현대차·기아가 부담할 것으로 예상됩니다.
그 결과 현지 가격이 상승하면서 현대차·기아의 미국 판매 대수는 지난해(현대차 91만 1천 대, 기아 79만 5천 대) 대비 6.3% 감소할 것으로 전망됩니다.
KB증권은 현대차와 기아의 연간 이익 감소 폭을 각각 3조 4천억 원, 2조 3천억 원으로 내다봤습니다.
다만 미국 현지화 정도에 따라 가격 상승의 반사 수혜가 관세 부담보다 클 가능성도 있습니다.
현대차그룹은 미국에 현대차 앨라배마공장(33만 대), 기아 조지아공장(35만 대), 현대차그룹 메타플랜트 아메리카(HMGMA·30만 대)를 운영 중이며, 이 세 공장의 생산능력은 총 100만 대에 이릅니다.
현대차그룹은 최근 가동을 시작한 HMGMA의 연산 규모를 50만 대로 늘릴 예정이며, 이 공장이 관세 대응의 핵심이 될 것으로 보입니다.
KB증권은 HMGMA가 계획대로 30만 대를 생산할 경우 영업이익 감소 폭은 현대차 1조 원, 기아 9천억 원으로 줄어든다고 전망했습니다.
또한 HMGMA가 생산 규모를 50만 대로 늘리면 현대차 영업이익은 관세가 없었을 때보다 오히려 5천억 원 증가할 것으로 예상했습니다.
내년부터 HMGMA에서 생산하는 기아는 영업이익에서 큰 차이가 없을 것으로 예측됐습니다.
현대차그룹과는 별도로 북미 수출 비중이 전체 생산의 84%에 달하는 한국GM은 존폐의 위기에 몰렸습니다.
한국GM은 트레일블레이저, 트랙스 등 미국 현지에 가성비 모델을 앞세우고 있지만 관세로 인해 가격이 오를 경우 판매에 타격이 있을 가능성이 큽니다.
이에 따라 과거 군산공장 사례처럼 추가 구조조정이나 장기적으로 철수 가능성까지 거론되고 있습니다.
다만 한국GM이 독점 생산하는 트레일블레이저와 트랙스는 미국 GM 전체 판매량에서 16%를 차지하고 있어 GM 본사가 쉽게 철수를 결정하지는 못할 것이라는 전망도 있습니다.
최근 GM 본사 직원들이 시설 개선 여부를 평가하기 위해 부평·창원공장을 방문한 것으로 전해졌습니다.
헥터 비자레알 한국GM 사장도 지난달 임직원과의 미팅에서 "회사는 다양한 시나리오에 대비해 왔으며, 한국 사업은 계속 운영할 것"이라고 밝혀 철수설을 일축했습니다.
이에 따라 미국 자동차, 부품·물류·철강, 미래 산업·에너지 분야에 총 210억 달러(약 31조 원)를 투자한다는 계획을 지렛대로 정부가 나서 관세 유예 또는 면제를 이끌어내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옵니다.
(사진=게티이미지코리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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