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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 세계 시상식 휩쓸었는데 뜨거운 논란…장점과 단점 모두 강렬하다 [스프]

[취향저격] 영화 <에밀리아 페레즈> (글 : 홍수정 영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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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전 세계 유수의 영화제를 들썩이게 만든 영화가 있다. 바로 <에밀리아 페레즈>다. 무수한 찬사와 야유가 동시에 쏟아지는 진풍경. 좋은 의미에서든 나쁜 의미에서든 뜨거운 이슈의 중심에는 이 작품이 있다.

<에밀리아 페레즈>는 여자가 되어 새 삶을 살고 싶은 잔학무도한 마약왕에 대한 이야기다. 스토리만 봐도 아찔한데, 스릴러와 블랙 유머가 더해졌다. 또한 뮤지컬 영화인데, 기존 관습과 달리 예상 못한 지점에서 춤과 노래가 터져 나오고 분위기도 독특하다. 감독 '자크 오디아르'는 일찍이 연출력을 인정받았고, 주연을 맡은 트랜스젠더 배우 '칼라 소피아 가스콘'은 훌륭한 연기를 선보인다.

홍수정 취향저격
여기까지만 보면 <에밀리아 페레즈>는 각종 영화제와 관객의 사랑을 휩쓸어 마땅하다. 무수한 상을 받은 것은 사실이다. 지난해 제77회 칸영화제에서는 심사위원상과 여우주연상을, 올해 제50회 세자르상에서는 7관왕을 꿰찼다. 그러나 기쁨도 잠시, 주연 배우 카를라의 인종 차별 논란 등이 불거지며 제97회 미국 아카데미에서는 2개 부문 수상에 그쳤다. 또한 멕시코 현지를 반영하지 못한 어색한 설정과 발음 등이 거론되며, 영화를 둘러싼 논란은 현재진행형이다.

한 편의 영화가 안팎을 오가며 이토록 다양한 이슈를 만들어내는 일은 흔치 않다. 그런 점에서 <에밀리아 페레즈>는 실로 다면적이다. 그래서 이 영화에 대한 태도를 정하는 일은 까다롭고, 여기에 정답은 없다. 관객이 하나의 태도를 정해야 할 의무도 없다. 나 역시 어느 입장을 택하여 독자를 설득하기 위해 이 글을 쓰는 것이 아니라는 점을 미리 밝혀둔다. 다만 <에밀리아 페레즈>에 담긴 그 독특하고 괴상한 매력과 아쉬운 논란 모두에 대해 다뤄보고자 한다. 아래부터 영화에 관한 약간의 스포일러가 나온다.

<에밀리아 페레즈>가 평단에서 호평받는 이유는 간단히 말해 독창성 때문이다. 분명 뮤지컬 영화이면서, 이 작품은 노래나 가창에는 큰 관심이 없어 보인다. '에밀리아 페레즈'를 연기한 카를라의 노래는 평범하거나 그에 못 미친다. 뮤지컬 영화가 이토록 가창에 무심하다는 사실이 신기할 정도다.

그러나 영화 속 넘버는 예상을 유려하게 빗나가며 신선한 충격을 던진다. 예를 들어 마약왕 델 몬테(칼라 소피아 가스콘)가 성전환을 결심한 뒤, 그의 변호사 리타(조 샐다나)가 수술을 집도할 의사를 찾아가는 장면이 나온다. 이때 의사가 할 수 있는 수술을 줄줄이 읊으며 어색한 노래를 부르는 순간이 등장한다.

이 장면은 트랜스젠더의 의미를 수술 행위로 좁히며 지나치게 가벼이 다룬다는 비판을 받는다. 그 지적에 흔쾌히 동의하지만, 이 장면의 진정한 의미는 역설적으로 그것이 의도되었다는 데 있다. 경박한 말을 뱉어내는 의사와, 수술대 위에 외설적으로 누워 광고의 한 장면처럼 과장되게 웃는 여인들. 이것은 누군가의 삶을 좌우하는 절체절명의 순간이 다른 누군가에게 상품을 찍어내는 작업처럼 경솔하게 다뤄지는 현실을 꼬집는다. 이 순간 느껴지는 기이하고 불쾌한 감정은 의도된 것이다. 이 장면에서 영화는 의료 산업을 정조준하며 찐득찐득한 블랙 유머를 터뜨린다.

또한 <에밀리아 페레즈>에서 성전환은 그 사전적인 의미에 한정되지 않으며, 더 넓은 의미를 내포한다. 델 몬테는 성을 바꾸는 데 그치지 않고, 마약상이었던 과거 역시 벗어던진다. 그에게 성전환은 과거의 정체성을 모두 버리고 새로운 삶을 향해 가는 결단의 일환이다(오해를 막기 위해 강조하자면, 일반적 트랜스젠더가 아니라 델 몬테의 경우 그렇다는 의미다). 이런 설정은 '과거로부터 자유로워지는 일이 가능한가?'라는 질문까지 나아간다. 그래서 영화에서 묘사되는 성전환을 현실과 일대일로 비교하며 평가하는 것은 좀 무리가 있다.

한편 <에밀리아 페레즈>의 서사는 한국의 막장 드라마를 연상시킬 정도로 강렬하다. 이 부분은 영화에서 직접 확인하기를 바라는 마음에 최대한 언급을 자제하려 한다. 그 서사는 영화의 쾌감을 이끄는 주요한 동력이다. 이 과정이 촘촘하지 못하고 과장되었다는 시선도 있다. 이 말에 동의하면서도, 그 투박하고 급한 진행이야말로 자크 오디아르가 의도하는 난장의 블랙코미디를 완성한다고 덧붙이고 싶다. 그러니까 <에밀리아 페레즈>에 대해 가해지는 혹평과 호평은 실은 동전의 양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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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히려 <에밀리아 페레즈>의 가장 큰 약점은 다름 아닌 논란이다. 영화가 실화를 다루며 멕시코의 실정을 제대로 반영하지 않았고, 이를 위한 노력도 부족했다는 비판은 귀담아들을 필요가 있다. 이런 논란을 피하기 위해 가상의 지역을 설정하는 시도를 하지 않은 점도 아쉽다.

(남은 이야기는 스프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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