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보물 '대명률'
도난당한 고서를 사들여 보물에 올린 사실이 적발돼 논란이 된 '대명률'(大明律)'이 보물에서 제외됩니다.
국보, 보물과 같은 국가지정유산을 취소하는 첫 사례여서 주목됩니다.
오늘(11일) 국가유산청에 따르면 문화유산위원회 산하 동산문화유산 분과는 최근 열린 회의에서 보물 '대명률'의 지정을 취소하기 위한 행정처분 취소 계획을 논의해 가결했습니다.
지난 2016년 보물로 지정된 지 9년 만의 불명예입니다.
문화유산위원회 측은 "(보물) 허위 지정 유도에 따른 형이 집행됨에 따라 이에 따른 후속 처리를 진행하기 위한 조치"라며 법률 자문을 거쳐 결정했다고 설명했습니다.
'대명률'은 조선시대 형법의 근간이 되는 중요한 자료로 여겨져 왔습니다.
중국 명나라의 형률(刑律·범죄와 형벌에 관한 법률 체계) 서적으로, 1389년에 간행된 것으로 추정됩니다.
국내외에 전해 내려온 책이 없는 것으로 알려진 희귀본입니다.
국가유산청은 '2015∼2016 국보·보물 지정 보고서'에서 "조선시대의 법률은 물론 조선 전기의 서지학 연구를 위한 소중한 자료"라고 의미를 설명한 바 있습니다.
그러나 '대명률'은 보물로 지정된 지 4개월여 만에 논란에 휩싸였습니다.
2016년 경기북부경찰청(당시 경기북부지방경찰청)이 전국 사찰과 사적, 고택 등에서 문화유산을 훔친 도굴꾼과 절도범을 검거하는 과정에서 '장물'로 확인됐기 때문입니다.
실제로 '대명률'은 2011년 도난 신고된 상태였습니다.
문화 류 씨 집안이 1878년 경북 경주에 세운 서당인 육신당 측은 1998년 무렵 건물 현판과 고서 등 총 81건 235점의 유물이 사라졌다고 관할 지방자치단체에 신고했습니다.
당시 수사 결과에 따르면 경북 지역의 한 사립 박물관장이던 A 씨는 2012년 장물을 취급하는 업자로부터 1천500만 원에 '대명률'을 사들였고, 이후 보물 지정을 신청한 것으로 파악됐습니다.
이 과정에서 A 씨는 '선친으로부터 물려받은 유물'이라며 입수 경위를 속인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장물을 사들인 사실이 들통나면서 A 씨는 문화재보호법(현재 '문화유산의 보존 및 활용에 관한 법률') 위반 혐의로 재판에 넘겨져 징역 3년의 실형이 확정됐습니다.

당국은 법원 판결이 나온 뒤 후속 조치를 고심했던 것으로 전해졌습니다.
국가유산청은 보물 지정 당시 중대한 하자가 있었다고 판단하고, 위법하거나 부당한 처분을 취소할 수 있도록 한 '행정기본법'을 근거로 취소 처분을 내리기로 했습니다.
보물 지정을 취소하는 건 이번이 처음으로 알려졌습니다.
국가유산청 관계자는 "문화유산의 가치가 달라지거나 상실했다고 판단돼 지정을 해제한 사례는 있으나, 국보나 보물급 문화유산 지정 취소 결정은 처음"이라고 말했습니다.
학계 안팎에서는 국가유산 지정 시 철저한 검증이 필요하다는 지적이 나옵니다.
국보나 보물의 경우, 소유자가 신청하면 관할 지방자치단체가 필요한 자료를 갖춰 국가유산청에 보고하고, 이후 시·도문화유산위원회, 문화유산위원회 심의를 거치도록 하고 있습니다.
'대명률' 역시 2013년 12월 경북 영천시를 통해 보물 지정을 신청했으며, 경북도문화유산위원회 심의를 거쳤습니다.
이후 관계 전문가 3명 이상의 조사를 거쳐 문화유산위원회 논의 절차도 마쳤습니다.
유물 입수 경위와 소유 사실을 면밀히 들여다볼 기회가 여러 차례 있었다는 의미입니다.
신청 2년 전인 2011년부터는 국가유산청 누리집을 통해 '대명률' 도난 사실도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익명을 요구한 한 전문가는 "유물이 사라진 경주와 영천은 같은 경북도"라며 "당시 희귀한 자료로 알려졌던 만큼 문화유산으로서 가치는 물론 소유 정보와 출처 등도 철저하게 검증했어야 한다"고 말했습니다.
현재 '대명률'은 국립고궁박물관에서 임시로 보관 중입니다.
국가유산청은 조만간 보물 지정 취소 계획을 누리집과 관보 등을 통해 공고할 예정입니다.
(사진=국가유산청 국가유산포털 제공,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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