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oading...

야한 영화? 섹스마저 고통스러운 3시간 35분…긴 여정의 진짜 의미 [스프]

[취향저격] 영화 <브루탈리스트> (글 : 이화정 영화심리상담사)
브루탈리스트
 

매일 쏟아지는 콘텐츠 홍수와 나도 헷갈리는 내 취향, 뭘 골라야 할지 고민인 당신에게 권해드리는 '취향저격'.
 

애드리언 브로디가 <브루탈리스트>로 올해 아카데미 남우주연상을 수상했다. 2003년에 <피아니스트>로 최연소 남우주연상을 수상한 후 두 번째다. 애드리언 브로디만큼 <브루탈리스트>에서 시종일관 불안정하고 고통스러우면서도, 끝까지 포기하지 않는 힘을 느끼게 할만한 배우가 있을까 싶다.

이 영화는 19세 이상 관람가로, 예매할 때 성인인증을 하라는 메시지가 뜬다. '그 정도로 야한 영화인가'라는 기대감을 가지고 객석에 앉았다면 뒤통수를 맞는 느낌을 받게 될 것이다. 어떤 육체적 쾌락도 발견할 수 없기 때문이다. 오히려 이 영화에 등장하는 섹스와 포르노 신들은 육체적·정신적 고통과 정체성의 몰락 위기를 표현하는 수단으로 사용된다. 미국에 정착하기 위해 애쓰는 헝가리 출신의 건축가 라즐로 토스(애드리언 브로디)는 허물어져 가는 정신과 육체를 붙들기 위해 '야동'을 보고 마약을 한다. 일반적이라면 그 반대여야 할 텐데 이 영화는 그런 일반적인 논리를 뒤집는다. 이 영화는 모든 것을 뒤집고 어긋나게 설정한 영화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취향저격

홀로코스트에서 살아남아 미국에 도착한 라즐로는 탄성을 지른다. 그의 눈에 자유의 여신상이 들어온다. 그러나 감독은 미국의 상징인 자유의 여신상을 거꾸로 잡는다. 당당하게 자리를 잡고 서 있어야 할 자유의 여신상이 거꾸로 혹은 옆으로 눕듯 우스꽝스럽게 표현되는 신들은 이 영화가 앞으로 어떻게 전개될지 시사하고 있다. 카메라는 수시로 기대가 깨지고 상황이 뒤집히는 순간을 포착한다. 편견과 멸시로 미국 땅에 쉽게 정착하지 못하는 라즐로의 삶처럼 그의 설계는 거부됐다가 인정받고, 건축은 중단됐다가 재개되기를 반복한다. 그처럼 라즐로는 안정적인 느낌을 주지 못하고 늘 부유하는 듯하다.

감독은 의도적으로 그런 불안정한 느낌을 주기 위해 이해하기 힘든 장면들을 연출한다. 천재적인 재능을 인정받은 라즐로가 만찬에 초대됐을 때도 상류층 귀빈들은 마치 라즐로의 존재를 잊은 듯이 행동한다. 라즐로의 말과, 주위에 앉은 손님의 행동은 물과 기름처럼 따로 논다. 파티는 어떤 마찰이나 잡음도 없이 우아하게 진행되고 라즐로는 겉으로는 귀한 대접을 받는 것처럼 보이지만, 그 안에는 소리 없이 움직이는 뱀처럼 소름끼치는 불쾌함이 있다.

종전 후에도 오랫동안 유럽에서 나오지 못해 생이별해야 했던 아내 에르제벳(펠리시티 존스)와 드디어 재회했을 때조차 그는 아내에게 쉽게 접근하지 못한다. 영양실조로 골다공증을 얻어 휠체어를 탄 채 나타난 아내는 우아한 지성인이지만 라즐로처럼 때때로 찾아오는 극심한 육체적 고통 때문에 짐승처럼 울부짖는다. 고통에 울부짖는 아내를 보고 있을 수만 없어 마약을 주입해 진정시킨 뒤에 나누는 두 사람의 섹스는 결코 에로틱하지 않다. 그것은 삶의 끈을 놓지 않으려는 안간힘처럼 애처롭다.
취향저격

<브루탈리스트>라는 제목은 브루탈리즘이라는 적은 창문 노출과 단순한 형태의 거대한 콘크리트 구조물을 지칭하는 건축 양식에서 비롯됐다. 영화에서 건축물은 주인공의 생명과도 같은 정체성이다. 그래서 라즐로는 건축비를 줄이기 위해 천장 몇 미터를 낮추려는 설계 변경을 용납하지 못한다. 심지어 자신이 사비를 내서라도 원래 계획대로 하겠다고 고집한다. 건축은 그에게 돈을 벌거나 유명해지기 위한 수단이 아니라 자신의 존재성에 대한 증명이기 때문이다. 난관 끝에 결국 완성된, 십자가 표시가 돋보이는 건축물에는 나치 치하 때부터 고통받았던 그의 삶이 그대로 담겨 있다.
취향저격

돈 많은 미국인 해리슨이 미국을 대표하고 있다면 나치 하의 희생자를 대표하는 라즐로의 아내 에르제벳은 이성적이고 현명한 인물로 묘사된다. 해리슨은 라즐로의 재능을 높이 사 그를 돕는 구원자처럼 보이지만 영화 후반부로 갈수록 본색을 드러낸다. 그 자체로 마치 아름다운 건축물처럼 보이는 대리석 채석장을 배경으로 해리슨은 이상한 행동을 한다.

갑자기 사라진 라즐로를 찾던 해리슨은 동굴 한쪽에 쓰러져 있는 라즐로를 보더니 강간하는 듯한 행동을 한다. 동성애자도 아닌 해리슨은 왜 그런 행동을 했을까. 그의 행동은 라즐로를 향한 경멸을 보여준다. 그런 식의 모욕적인 경멸은 라즐로에게 익숙하다. 라즐로 사촌의 아내 역시 유사한 행동으로 그를 좌절시킨 적이 있다. 해리슨은 자신의 변태적인 행동을 라즐로가 의식하지 못했을 것이라 생각한다. 라즐로는 그의 행동에 대해 끝까지 침묵한다. 그러나 에르제벳은 해리슨을 향해 강간범이라는 비난을 퍼붓고 미국을 혐오한다.
취향저격


(남은 이야기는 스프에서)

더 깊고 인사이트 넘치는 이야기는 스브스프리미엄에서 보실 수 있습니다.
이 콘텐츠의 남은 이야기가 궁금하다면 하단 버튼 클릭! | 스브스프리미엄 바로가기 버튼
Copyright Ⓒ SBS. All rights reserved.
무단 전재, 재배포 및 AI학습 이용 금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