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매일 쏟아지는 콘텐츠 홍수와 나도 헷갈리는 내 취향, 뭘 골라야 할지 고민인 당신에게 권해드리는 '취향저격'.
한 분야에서 모두가 인정하는 최고의 레전드가 된다는 것은 어떤 의미일까. 여전히 건재한 가요계의 두 거장, 가황 나훈아와 가왕 조용필. 이들의 공통점이라면 그들의 노래를 여전히 많은 사람들이 사랑하고 있으며 왕성한 에너지로 끊임없이 자신의 노래를 창작하고 있다는 것이다. 과거 영광의 순간에 멈춰 서 있지 않고 현재 진행형인 아티스트로서 경지에 도달한 이들. 요즘 잘파(Zalpha) 세대가 선호하는 크리에이터란 직종의 핵심은 '자신만의 콘텐츠를 보유하고 있는가?'다. 정교하고 디테일하게 만든 창작품이 독보적인 세계관으로 존재할 때 그 창작자는 인정받게 된다.
2024년 나훈아는 은퇴를 선언했다. 1947년 부산 출생, 78세로 팔순을 앞둔 그가 마지막 무대에 서면서 남긴 가장 인상 깊은 한마디는 "평생 구름 위를 걸으며 살아왔으니 이제 들길도 걷고 꽃향기도 맡고 땅에서 걷고 싶다"는 말이었다. 자신을 둘러싼 스캔들에 기자회견을 하며 당당하게 입장 표명하던 그는 얼마 전 은퇴 공연에서 정치적 발언을 했다가 한동안 이슈 파이터가 됐지만 나훈아의 음악적 성과만을 두고 본다면 한국 대중음악사에 큰 영향력을 미친, 수많은 창작을 한 걸출한 크리에이터임은 틀림없다. 한국음악저작권협회에 등록된 발표곡만 1천200여 곡. 그중 90% 가까이 직접 쓰고 만들었다.
'홍시', '18세 순이', '사모' 등 나훈아의 노랫말에 담긴 고향과 누이, 우리네 엄마에 관한 이야기는 가슴속 그립고도 울컥한 존재를 꺼내어 쓰다듬는다. 작곡도 작곡이지만 그만의 가사를 귀담아듣고 있으면 역시 나훈아만의 아우라가 느껴진다. 그간 만든 노래로도 충분히 활동할 수 있으련만 나훈아의 창작열은 여기서 멈추지 않고 2023년 경쾌한 댄스곡 '기장갈매기'를 발표했다.
사랑에 목매지 않는 부산 상남자, B급 감성 가득한 뮤직비디오에서 부산 시골 바다를 배경으로 꽁지 머리에 찢어진 청바지를 입고 영화 <보안관>에 나올 법한 동네 건달들과 맞장을 뜨며 갈매기 댄스를 추는 나훈아의 열정을 누가 이길 수 있으랴. 나훈아는 창작력 하나로도 가요계 레전드가 될 수 있는 위대한 유산을 남긴 셈이다. 은퇴 공연에서 드론에 마이크를 실어 보내며 '사내' 가사처럼 화끈하게 이별을 선택한 나훈아의 명곡들은 지금 이 순간에도 후배 가수들에게 꾸준히 불리며 가요계 레전드로서 존재감을 보여주고 있다.

MV | 나훈아(Na Hoon-A) - 기장갈매기 | 새벽 (SIX STORIES)
자, 그다음은 조용필. 그 역시 데뷔 후 55년 동안 20집 앨범을 내며 꾸준히 당대 최고의 뮤지션들과의 작업을 통해 대중과 소통했다. 전설의 뮤지션이란 멈추지 않는다는 것을 증명하듯이. 조용필은 원곡 '돌아와요 충무항에'를 록 창법으로 부르고 개사해 자신만의 노래로 만들었을 뿐 아니라 항구를 통해 떠났던 1980년대 재일교포에 대한 애틋함을 형제애로 표현해 불렀다.
좋은 가사를 픽하는 안목도 뛰어나 '창밖의 여자'와 '일편단심 민들레'의 노랫말 원작자들과 협업해 실향민의 사랑, 이별의 아픔을 노래했고 '킬리만자로의 표범'과 '꿈'을 통해 꿈을 찾아 도시를 찾아온 이방인의 희망과 좌절을 노래로 풀었다.
그가 만든 곡을 살펴보면 늘 존재에 대한 성찰이 들어있으며 시대정신을 담아 고민한 흔적이 있다. 음유시인이라 칭송받는 '단발머리', '고추잠자리'의 작사가 김순곤부터 MZ세대의 워너비 작사가 김이나까지 폭넓게 협업하며 '바운스' 같은 집단 창작곡과 '찰나'나 '그래도 돼', '라'를 통해 트렌드에 맞춰 변주하며 시대 불변 희망의 메시지와 거장의 따뜻하고도 세련된 위로를 전한다. 이렇게 그는 은퇴를 선언한 나훈아와 또 다르게 자신의 길을 걷고 있다.
나훈아와 조용필은 그렇게 창작자로 자신의 콘텐츠를 끊임없이 만들어왔기에 레전드가 되었다. 이들이 애써 되려고 했던 것이 아니라 그저 잘 걸어왔던 흔적이 그들을 레전드의 반열에 올린 것이다. 물론 그 길은 쉽지 않아 한 분야의 레전드가 되는 길은 외롭고 고독하며 고통을 수반한다. 자신만의 누에고치 속에서 실을 뽑아내며 작품을 창작하고 고독 속에 침잠하며 노래한다. 꾸준함이 쌓이고 쌓여 평판이 되고 평판은 대중의 마음을 움직이고 전설로 박제된다. 끊임없이 자신만의 마르지 않는 에너지를 폭발시킬 때 그들은 별로 남아 사람들의 가슴속에 전설이 된다.
마지막으로 엘비스 프레슬리. 그가 떠난 지 반세기가 다 되어가지만 여전히 프레슬리의 추앙자들은 로큰롤, 컨츄리, R&B까지 다양한 장르로 시대를 풍미한 레전드로 그를 기억한다. 레너드 번스타인이 엘비스 프레슬리를 '모든 것에 리듬을 도입한 문화적 혁명'이라고까지 표현했다는 점에서 그는 분명 혁신적인 크리에이터였다.
엘비스 프레슬리, 조용필과 나훈아. 이들이 레전드가 된 것은 자신이 직접 창작자로서 가슴을 울리는 공감의 음악을 대중에게 전달했다는 데에 있다. 이 셋은 '넘버원'이기도 하지만 유일무이한 '온리원'이기도 했다. 가요계의 레전드인 이들을 굳이 열거한 이유는 그들이 한 무대에 모인 듯한 공연이 바로 2월 끝자락, 지난주에 있었기 때문이다.
나훈아, 조용필, 엘비스 프레슬리가 다 있던 탁쇼3 앙코르

현철과 송대관의 부고는 1980년대 트로트 시장을 주도한 1세대가 저물고 트로트 장르의 전폭적인 세대 교체가 이루어지고 있음을 시사한다. 국악, 성악, 뮤지컬 등 다양한 음악과의 융합과 경계를 넘나드는 시도로 트로트는 젊어졌고, 다양한 음악을 하던 뮤지션들이 그 안에서 자신의 길을 찾아 도전하고 기회를 찾았다. <미스터트롯3>에 출전한 이정과 모세가 천록담과 춘길로, <현역가왕2>에 나온 국악퓨전그룹 '두 번째 달'의 김준수가 그 예다.
이처럼 숨은 실력자들의 대거 등장으로 정글 속 생존처럼 치열해진 트로트계에 일찌감치 출사표를 던지고 여유롭게 자신의 영역을 확장해 나가고 있는 영탁. <미스터트롯> 선으로 이름을 알린 뒤 현재 그의 위치는 어떨까. 영탁 역시 R&B와 발라드 장르에서 활동했고, 영화 OST로 데뷔한 뒤 수많은 영화 주제곡을 불렀던 가수였다. 2020년 <미스터트롯> 선으로 등장해 '막걸리 한잔'과 '찐이야'로 존재감을 폭발시키고 2라운드에서 이미자의 '내 삶의 이유 있음은'으로 명확한 온도차를 보여주던 가수. 그리고 5년이 흘렀다. 그사이 영탁은 3개의 앨범을 냈고 <탁쇼>라는 세 번의 전국 투어를 했으며, 트로트 장르에 국한하지 않고 다양한 장르를 오가며 대중적이고도 실험적인 음악을 선보였다. 좌절의 시간들도 있었지만 그는 멈추지 않고 달렸다.
앙코르는 '다시', 그리고 '아직'이라는 사전적 의미를 가진 불어다. 다시 한번 더 그 감동을 전달한다는 의미, 그리고 아직도 보여줄 게 너무나 많다는 의미였을까? 영탁은 탁쇼3 앙코르를 통해 자신의 모든 것을 쏟아부으며 놀라운 퍼포먼스와 가창력을 선사했다. 그동안 걸어온 음악 인생을 표현한 '담'을 시작으로 포문을 연 영탁은 자신의 앙코르 공연 무대의 목표를 10자로 소개했다. '올타임 레전드 탁쇼 쓰리'. 공연의 모든 순간을 레전드로 만들겠다는 자신감과 넘치는 에너지. 지루할 틈 없이 3시간이 훌쩍 지나갔다. 중반부에는 오은영 박사 패러디인 오은탁 박사의 솔루션을 받고 엘비스 프레슬리로 변신, 'Can't help Falling in Love', 'Hound Dog'로 이어지는 흥겨운 로큰롤을 남진과 '카사블랑카'까지 연결하며 열정의 퍼포먼스를 보여주었다.
콘서트는 크게 세 개의 콘셉트로 현재의 영탁, 과거의 영탁, 그리고 미래의 영탁을 보여주었다. 과거의 영탁에서는 안동의 한 가요제에서 대상을 받은 뒤 바로 서울로 와서 오디션을 보며 끊임없이 도전했던 청년 박영탁을 소환했다. '사람이 꽃보다 아름다워'를 부른 뒤 마이크를 두 손으로 모아 잡고 "스물두 살 박영탁입니다"라고 인사하는 장면은 80년대 젊은 날의 자신과 함께 노래하는 나훈아의 무대를 떠올리게 했다. 나훈아의 가슴 절절한 사모곡 '어매'와 '꿈'을 품게 만든 조용필이 있었고 엘비스 프레슬리로 완벽하게 변신한 무대를 통해 자신의 근원이 록과 리듬앤블루스에 뿌리를 두고 있다는 것을 그는 잊지 않고 보여준 것이다.
크리에이터로서 영탁의 능력 : 관찰력, 언어 감각, 메시지

영탁이 가진 재능 중 하나는 관찰력에서 비롯된 연기다. 브릿지 영상은 대부분 옷을 갈아입거나 무대 교체를 위해 준비되는 영상이 대부분인데, 아주 제대로 웃길 작정을 하고 만든 패러디 영상이 눈에 띄었다. 전국 투어에서 선보인 <흑백요리사> '요리하는 돌아이'를 패러디한 '노래하는 돌아이'를 보고 있자니 영탁이 제이심포니란 듀오 시절 자신의 앨범 뒤 스페셜 땡큐에 썼던 글인 '더 또라이같이 음악할게요!!'가 생각났다. 이 '똘끼'를 어쩔까나. 이번 앙코르에 처음 등장한 오은영 박사의 금쪽이 솔루션 패러디인 오은탁 박사는 말투와 행동이 너무 비슷해서 영탁 콘서트에 온 건지, <개그콘서트>에 온 건지 분간이 안 될 정도. 더구나 영탁은 다른 출연자도 없이 혼자 1인 2역을 연기한다. 조만간 배우 영탁이 스크린이나 드라마에서 비중 있는 역할로 '갑툭튀'해도 전혀 이상하지 않을 정도로 소름 끼치는 코믹 연기에 배꼽을 뺐던 시간이었다. 앞자리에 앉은 관람객의 한마디, "저렇게 웃긴다고?" 개그감 인정!
투머치 토커가 되어 관객들과 수다를 떠는 것도 탁쇼의 특징. 영탁이 왜 소통의 제왕인지, 자신의 무대를 찾은 팬들과 호흡하고 함께 즐기는 무대는 영탁이 가진 온리원의 힘이 아닐까. 또 하나, 그의 음악을 접해본 사람이라면 영탁의 언어 감각에 주목했을 것이다. 가사를 보다 보면 늘 나만의 것을 찾기 위해 노력하는 영탁을 볼 수 있다. 영탁은 자신만의 음악을 찾는 데 성공했을까? 그의 가사에 답이 있다. 비슷한 줄무늬, 블루케찹, 세모난 바퀴, 사막에 빙어. 세상의 모든 삐딱이와 왼손잡이들을 위한 강력한 메시지는 영탁이 추구하는 음악의 스펙트럼을 확장하고 깊이를 완성시킨다.
(남은 이야기는 스프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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