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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상 공범 수준…이건 미국이 UN서 던진 역사상 가장 수치스러운 투표" [스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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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욕타임스 칼럼] America's Most Shameful Vote Ever at the U.N. by Bret Stephens
0228 뉴욕타임스 번역
 

* 브렛 스티븐스는 뉴욕타임스 오피니언 칼럼니스트다.
 

지난 2007년 봄, 나는 체코 프라하에 있는 체르닌 궁전 정원 벤치에 앉아 바츨라프 하벨을 인터뷰했다. 극작가이자 체코 대통령을 지냈던 하벨은 이라크 전쟁에 대한 자신의 의견 변화, 자유가 없는 국가에서 예술의 역할, 정치를 향한 집착과 무관심이 낳을 수 있는 위험, 담배를 끊은 지 11년이 지나도 여전히 참기 어려운 흡연 욕구 등에 관해 이야기했다.

우리는 특히 국제 외교 문제에서 진실이 얼마나 중요한지에 관해서도 이야기를 나눴다. 그는 "저는 어떤 정치 지도자와도 이야기할 수 있어야 한다고 생각해요. 다만 여기서 중요한 전제는 항상 진실을 이야기해야 한다는 거죠"라고 말했다. 이어 블라디미르 푸틴 - 하벨은 그를 "라스(Ras)푸틴"이라고 칭했다 - 에 관해 다음과 같이 덧붙였다.
 
저는 사실 그 사람(푸틴)이 점점 더 의심스러워요. 우리가 그의 행동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지 분명하게 말해줄 필요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푸틴에 대한 하벨의 평가 이후 많은 일이 있었다. 언론인 안나 폴리트코브스카야와 저명한 비평가 알렉산더 리트비넨코가 살해됐고, 러시아는 조지아를 침공하고 크름반도를 무력으로 점령했다. 말레이시아 항공 비행기가 격추됐고, 야당 지도자 알렉세이 나발니는 정권의 독살 시도를 가까스로 피해 갔지만, 감옥에 갇혀 있다가 옥사했다. 또 전쟁을 일으킨 뒤에는 부차 학살과 마리우폴의 잔혹한 소거 작전도 있었다. 미국이 이번 주 UN에서 역사상 가장 추악한 투표를 한 뒤 나는 푸틴 대통령이 저지른 모든 일보다도 바츨라프 하벨이 18년 전 인터뷰에서 했던 말을 먼저 떠올렸다.

지난 24일은 러시아가 우크라이나 키이우를 향해 무도한 침공을 개시한 지 3년째 되는 날이었다. 이날에 맞춰 우크라이나 정부는 "포괄적이고 오랫동안 지속될 수 있는 정의로운 평화"의 기초로서 러시아가 군대를 철수하고 전쟁범죄에 대해 책임질 것을 요구하는 결의안을 UN 총회에 제출했다. 93개국이 이 결의안에 찬성했다. 중국을 포함한 65개 나라는 기권했다. 결의안에 반대한 18개국은 러시아, 북한, 니카라과, 벨라루스, 적도기니 등이었는데, 이스라엘과 미국도 이 욕지기 나는 명단에 이름을 올렸다.

이어 미국은 안전보장이사회에서 누가 이 전쟁을 시작했는지에 대한 언급을 쏙 빼놓고, 막연하게 전쟁 종식을 촉구하는 결의안을 따로 상정했다. 안보리 이사국 15개국 가운데 영국, 프랑스를 포함한 5개국이 기권하면서 결의안은 찬성 10, 반대 0으로 통과됐다. 러시아를 꾸짖고 전쟁 책임을 묻는 것이 외교적 해결을 가져오는 데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현실주의적 판단이 작용했다는 평가가 나온다.

좀 더 넓은 차원에서 트럼프 행정부가 푸틴을 다시 서방으로 끌어당기려는 전략의 일환으로 보는 시각도 있다. 그럼으로써 푸틴이 중국의 시진핑과 맺은 종속적인 협력 관계에 제동을 걸려 한다는 것이다. 외교 정책 전문가들은 이를 "리버스 닉슨(Reverse Nixon)" 전략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닉슨 대통령이 당시 중국과 화해 무드를 조성하며 중국을 소련의 궤도 밖으로 끌어내려고 폈던 것과 기제는 같은데, 중국과 러시아(구소련)만 위치가 바뀌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런 노력은 실패할 수밖에 없다. 이건 지금의 러시아가 중국과 아주 가까운 사이가 됐고, 트럼프 행정부가 러시아 앞에 서면 작아지기 때문만은 아니다. 물론 지금의 러시아는 1970년대 중국과 다르다. 당시 중국은 문화대혁명으로 스스로 사회를 거대한 혼란의 소용돌이에 빠뜨렸고, 중소 분쟁으로 긴장이 고조돼 소련과 전면전까지 각오하던, 여러모로 궁지에 몰려 있었다.

하벨이라면 더 깊은 이유가 무엇인지 이해했을 것이다.

하벨은 1978년에 쓴 "힘없는 자의 힘"이란 제목의 에세이에서 체코슬로바키아 같은 공산주의 정권이 사회를 통제하는 방식에 관해 설명했다. 그저 무력의 위협으로만 되는 게 아니고, 심지어 무력은 가장 중요한 요인도 아니었다. 오히려 더 중요한 역할을 한 건 서로 뒷받침하는 "일련의" 구호들이었다. 사람들은 쉽게 따라 할 수 있는 구호를 비판 없이 받아들였다. 심지어 시간이 흐른 뒤 이 구호들이 역사를 터무니없이 왜곡하고 명백한 거짓말로 가득 찼다는 걸 깨닫고 나서도 구호를 폐기하는 대신 거짓으로 쌓아 올린 구호 속 세계에 스스로 복종했다.

푸틴은 정치 이력 초기에 이런 억압적인 기제를 집행하는 일을 맡았다. 그가 권좌에 머문 지난 25년간 러시아는 온통 거짓뿐인 평행우주를 만들어내는 데 성공했다. 푸틴의 독재는 "주권 민주주의"로 미화됐고, 푸틴에 대한 정치적 반대에는 "테러"라는 딱지가 붙었다. 우크라이나의 유대인 대통령은 "네오 나치"가 됐고, 러시아 사람들은 80년 만에 유럽에서 일어난 가장 커다란 전쟁조차 '전쟁'이라고 부르지 못했다. 푸틴이 우크라이나 침공에 "특별군사작전"이란 이름을 붙였기 때문이다. 러시아는 전쟁을 일으킨 게 아니라, 끝없이 영토를 확장하려는 나토(NATO)의 야욕을 저지하고자 테러리스트를 처단하는 군사 작전을 벌였을 뿐이다.

푸틴은 큰 저항을 받지 않고 러시아 안에 '거짓으로 가득한 평행우주'를 쌓아 올릴 수 있었다. 조지 W. 부시부터 앙겔라 메르켈에 이르기까지 많은 서방 세계 지도자들은 푸틴이 벌이는 짓을 애써 못 본 척했다. 푸틴이 잘못하더라도 외교적인 예의를 차리며 눈을 감아주고 문제 삼지 않았다. 하지만 도널드 트럼프는 아예 차원이 다른, 사실상 공범이나 다름없는 수준으로 푸틴의 기만적인 작전에 힘을 보태고 있다.

(남은 이야기는 스프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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