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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파일] 무안공항 참사, 왜 모두 침묵하는가…"핵심은 덮어둔 채 은근슬쩍 책임 회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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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고 조사 이론 관점에서 보면 사고는 뚫리고 뚫리고 뚫려서 나는 겁니다. 그런데 이번 참사의 경우엔 다 뚫렸어요. 
조류 경보 시스템은 인력에 의존해야 했고, 퇴치 인력은 턱없이 부족했고, 국제선 제대로 돌린 지 3주밖에 안 된 공항이니 대처할 여력도 안 됐을 거고 가장 큰 문제인 콘크리트 둔덕까지. 시작부터 끝까지 뚫리다가 사고가 뻥 나버린 경우죠." 

한 항공학과 교수는 지난해 12월 29일 무안공항에서 일어난 참사를 이렇게 규정했다. "처음부터 끝까지 모든 게 다 뚫려버린 참사"라고 말이다.  참사의 전말이 아직 완전히 규명되진 않았지만, 이번 참사를 부른 근본적 원인은 자못 자명하다.

이번 참사의 경우, 항공기가 동체 착륙해 콘크리트 둔덕과 충돌하고 폭발하기까지, 그 과정이 고스란히 담긴 영상을 국민 모두가 두 눈으로 직접 확인할 수 있었다. 이후 해외 항공 안전 전문가들을 중심으로 처음 콘크리트 둔덕의 존재에 대한 의문이 제기됐고 참사의 결정적인 원인으로 지목됐다. 미국 항공 전문가인 숀 프루치니키 오하이오주립대 공과대학 교수는 CNN과의 인터뷰에서 “한국 항공 관계자들이 한 일보다 더 무책임한 일은 생각할 수 없다”며 “그들은 그 설계로 인해 많은 사람이 사망한 데 대한 책임이 있다”고 진단했다. 전투·항공기 조종사 출신으로 항공 분야 저널리스트인 데이비드 리어마운트 또한 "랜딩기어와 플랩이 작동하지 않았음에도 최선의 수준으로 동체 착륙이 이뤄졌다"며 “대규모 사망자가 나온 원인은 착륙 자체가 아니고, 활주로 끝단 바로 너머에 있는 매우 단단한 장애물과 동체가 충돌했기 때문”이라고 평가했다.  이에 더해 무안공항의 태생적 한계, 부실한 운영과 허술한 관리 문제가 겹치며 대형 참사라는 결과로 이어졌다는 점은 명확해 보인다. 

하지만, 탄핵 국면이라는 혼란한 정치 상황 때문인 걸까?  무려 179명이 숨진 대형 참사임에도 이상하리 만큼 조용하게, 이번 참사는 어느 때보다 빠른 속도로 관심에서 멀어지고 있는 듯하다. 각종 개선책은 내놓으면서도 정작 책임에 있어선 침묵하고, 진상을 규명하려는 의지나 움직임은 감지되지 않는다. 물론 참사가 정쟁화하는 건 경계해야 할 일이다. 하지만 철저한 진상 조사가 이뤄질 수 있게 목소리를 내고 역할을 해야 할 정치권도 조용하기만 하다. 무안공항의 콘크리트 둔덕은 아직 버젓이 존재하고 있지만 누가, 언제, 어떤 과정을 거쳐 만들어지고 승인된 것인지 아무도 제대로 답하지 않은 채 시간만 흐르고 있는 기이한 상황이다.
취파 하정연 기자- 무안공항 참사, 콘크리트 둔덕 사진


국토부 "경험 많은 조종사 우선 배치해라"…조종사들 부글부글 "책임회피"



하정연 취재파일 공문

이번 참사와 관련한 취재파일을 써야겠다고 처음 마음먹게 된 건 참사 이후 국토부가 항공사들에 보냈던 공문 한 통을 보고 나서였다. '긴급 안전운항대책'이란 제목으로 일선 항공사와 조종사들에게 하달된 공문엔 이런 내용이 담겨있었다. 
 
"해당 공항에는 가능한 경험 많은 조종사 위주로 우선 운영"
"로컬라이저 세부 자료를 즉시 공지, 철저히 교육"
"이착륙 브리핑할 때마다 로컬라이저 관련 내용 공지"   


공문이 전파되자 일선 조종사들 커뮤니티에선 분노 섞인 격한 반응이 쏟아졌다. "경험 많은 조종사가 운항하면 콘크리트 둔덕이 스폰지가 되냐", "경험이 많다면 둔덕을 피해갈 수 있다고 생각하냐", "고인 모독이자 책임 회피다"…. 핵심을 벗어난 공문으로 사고기 기장과 부기장의 명예를 훼손하고, 결국은 일선 조종사와 항공사에 책임을 은근슬쩍 돌리고 있다는 성토였다. 이후에도 국토부는 LCC 항공안전 특별점검 회의를 열고 LCC 사장단을 불러 모아 "안전을 무시하는 항공사는 국민의 외면과 함께 사라질 것"이라고 경고하기도 했다. 고강도 혁신 대책을 내놓으라고 말이다. 참사 이후 국토부가 일선에 하달한 공문과 일련의 행보들을 보면서 묻고 싶었다. 국토부는 이번 참사를 부른 원인이 어디 있다고 말하고 싶은 걸까?

블라인드 항공라운지 글 갈무리

"극한의 상황, 완벽한 동체 착륙"…그 끝엔 흙더미 속 거대한 콘크리트 상판 

"마지막 착륙 모습이 너무나 완벽했기 때문에 더 슬픕니다. 조종사라면, 모든 엔진과 계기가 나간 상황에서 그렇게 부드럽게 활주로에 동체 착륙한다는 게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 다 알 겁니다. 유압장치가 고장난 상태에서 돌덩이 같이 무거웠을 조종간을 기장과 부기장이 끝까지 컨트롤해 활주로에 내렸을 때 분명 '살았다'며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을 거라고들 생각합니다. 흙더미를 치고 지나가면 속도가 줄어들 거라고, 충격은 있을지언정 승객들은 살릴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을 텐데 동료들의 마지막 모습을 생각하니 그 대목이 가장 마음 아프고 안타깝습니다." (현직 기장) 

블라인드 항공라운지 글 갈무리
 
이번 참사 취재를 하면서 만난 일선 조종사들이 공통적으로 했던 말이 하나 있다. 사고기 기장과 부기장이 동체 착륙에 성공했을 때 분명 "살았다"고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을 거라는 말이었다. 흙더미와 부딪히더라도 속도가 줄어들 거라고 믿고 끝까지 컨트롤을 놓지 않은 것일 텐데 그 대목이 가장 참담하다는 게 현직 조종사들의 공통적인 반응이었다. 
 
전문가들도 이에 대해선 이견이 없었다. 이강준 한국항공대학교 교수는 "당시 동체 착륙 과정은 긴박한 조건에서 그야말로 조종사들이 혼신의 힘을 다해 활주로에 안정적으로 미끄러졌다는 것이 조종사를 비롯한 항공 전문가들의 일반적 의견"이라고 평가했다. 비행기의 모든 유압과 전기가 나가고 계기도 볼 수 없는 상태에서 비행해야 하는 극한의 상황에서 이뤄진 성공적인 동체 착륙이었다는 것이다. 한 민간 항공사 현직 기장은 "두 개 엔진이 다 나가는 경우는 굉장히 이례적인 경우라 조종사들이 훈련하긴 하지만, 경험에 의의를 둔다고 생각들 한다"며 "보조 동력 장치라도 작동되는 상태에서 훈련하지만 이번엔 그마저도 작동하지 않았는데 그런 극한의 상황에서 실수 없이 완벽히 동체 착륙할 수 있는 조종사는 몇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당시 여객기의 조종간을 잡았던 기장 한 모 씨와 부기장 김 모 씨는 동료들 사이에서도 비행 실력이 좋다는 평가를 들어온 것으로 알려졌다. 한 기장은 공군 학사 장교 조종사 출신으로 6,800시간 넘는 비행 경력을 보유했으며 김 부기장은 1,650시간 넘는 비행 경력이 있다. 한 기장에 대해 동료들은 "비행 교관 경력도 있고 실력이 훌륭하다는 평가를 들어왔다"며 "급박한 상황에서 마지막까지 최선을 다했을 사람"으로 기억하고 있었다. 김 부기장의 동료들도 "비행 지식과 실력이 우수하고 꼼꼼하다는 평가를 듣던 부기장"이라며 "동기들 사이에서도 평소 늘 열정적으로 비행 공부를 하던 사람으로 기억하고 있다"고 입을 모았다. 

취파 하정연 기자- 무안공항 참사, 기장 클로즈업 사진

로컬라이저는 ‘오버런’(활주로 내에서 멈추지 못하는 상황)을 대비해 부러지기 쉬운 재질로 만들어야 한다는 게 상식이다. 국내외 각종 지침들도 그렇게 규정하고 있다. 한 업계 관계자는 "오버런 상황에서 활주로가 제일 안전한 곳일 거라고 생각하는 게 모두의 상식"이라며 "이번 참사에서도 조종사는 이런 상식을 믿고 끝까지 활주로 중앙 유지를 했을 것"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무안공항의 로컬라이저는 콘크리트 둔덕 형태였다. 문제의 콘크리트 둔덕은 2007년 무안공항 개항 당시부터 존재했다. 그리고 지난 2023년 개량 공사를 거치며 더 단단해졌다. 높이 2미터에 가로 길이가 40미터나 되는 거대한 흙더미 속엔, 개항 당시부터 콘크리트 기둥들이 박혀 있었는데, 개량 과정에서 30cm 두께의 콘크리트 상판까지 더해졌다.  <장비 안테나 및 철탑, 기초대 등 계기착륙시설 설계 시 ‘Frangibility’(부서지기 쉬움)를 고려해 설계해야 한다>는 국내외 규정과 정면으로 배치된다. 

참사 직후 국토부는 공항안전운영기준에 명시된 '활주로 240미터 이내 항행 안전시설은 부서지기 쉬워야 한다'는 규정이 2010년부터 적용돼 무안공항은 해당 사항이 없단 입장을 내놨다.  하지만, 그렇다면 2023년 무안공항 시설 개량공사 당시엔 개정된 규정대로 개선했어야 하는 것 아니냐는 핵심적 질문엔 아직도 제대로 된 답을 내놓지 못하고 있다.  지난달 열린 국회 국토교통위원회 현안 질의에서도 개량 공사 당시 '부서지기 쉬움'을 고려해야 한다는 운영 기준을 알고도 무시한 것인지 묻는 의원들 질의가 쏟아졌다. 공항공사는 용역 발주서에 로컬라이저 지지대를 보강할 때 파손성을 고려해 설계하도록 명시했지만, 정반대로 설계 또는 시공이 이뤄졌다. 그리고 이 모든 게 최종적으로 승인되기까지 일체의 과정은 아직 아무 것도 제대로 밝혀진 게 없다.  지난 6일 국회 여객기 참사 특위에서도 의원들은 '관련 문건이 없다', '제출할 수 없다'고 하는 것은 상식적으로 납득이 어렵다며 로컬라이저 설계 자료 일체와 검토 의견서 제출을 재차 요구했다. 

국토부는 참사 이후 콘크리트 둔덕에 대한 문제 제기가 쏟아지자 오락가락한 해명을 내놓으며 말 바꾸기 논란을 자초하기도 했다. 그러면서 꽤 오랜 기간 콘크리트 둔덕의 위법성 여부를 '어떻게 해석하느냐'에 골몰해왔다. 국토부 고시 설치 기준에는 "방위각제공시설(로컬라이저 등)이 제공되는 지점 '까지' 활주로 종단안전구역(Runway End Safety Area·RESA)을 연장해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어 로컬라이저 둔덕이 종단안전구역에 포함되는지가 위법성을 가르는 기준점으로 제시됐다. 당시 국토부는 "문제없다"는 입장을 내놨는데 그 근거는 국내고시나 국제규정이 아닌 미국항공청(FAA)의 규정상 '활주로안전구역(Runway Safety Area·RSA) 끝 ' 너머(beyond)'라는 표현에서 찾아 제시했다. 국제민간항공기, ICAO 기준을 준용하는 FAA는 규정에 '너머'라고 명시해 로컬라이저가 RESA에 포함되지 않아 부러지기 쉽게 만들어야 할 의무도 없단 논리다. 이 때문에 국토부의 아전인수격 해석이란 지적이 제기됐다. 한 전문가는 "국내 모든 민간공항은 ICAO 규정에 따라 만들어졌다"며 "군 공항만 FAA 규정을 따르고 있는데 국토부가 굳이 이번 참사에 FAA 기준을 끌고 온 것 자체가 잘못됐다"고 평가했다. 

쉽게 풀어보면 FAA 규정에선 RSA(활주로안전구역), ICAO 규정에선 RESA(종단안전구역)이란 개념을 사용한다. 둘은 항공기의 활주로 이탈 사고 시 안전을 확보하기 위한 공간이라는 점에서 비슷하지만, ICAO 규정의 RESA(착륙대 제외 안전구역)와 FAA 규정의 RSA(착륙대 포함 안전구역)는 활주로 끝단에 조성하는 착륙대 60m를 안전구역에 포함하는지 여부만 다르다. 그런데 여기서 FAA 규정을 살펴보면 해당 규정은 RSA 개념을 적용하며 오히려 국제 기준보다 더욱 강화해 활주로 안전 구역을 설정했다. 국토부의 설명대로라면 무안공항은 RESA를 활주로 착륙대로부터 90m 이상 확보만 하면 되지만, FAA 규정을 적용하면 로컬라이저는 RSA를 활주로 끝단 착륙대를 포함해 1천ft(약 304m) 떨어진 곳에 세워야 한다. 만약 1천ft 이내로 로컬라이저를 설치할 수밖에 상황이라면 별도 승인받아야 하며 볼트 등 결합구조가 약해 부러지기 쉬워야 하고, 가능한 활주로에서 멀리 떨어트려야 한다는 조건도 붙어있다. 결국 국토부 해석대로 FAA 규정을 무안공항 콘크리트 둔덕 로컬라이저 시설에 적용하면, 해당 시설이 RSA 구역 내에 존재하고 단단한 콘크리트 구조로 지어져 규정 위반 시설인 셈이다. 두 규정을 자신들 편의대로 취사 선택한 것이란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 

결과적으로 국토부의 해명은 '로컬라이저 시설은 종단안전구역에 포함되지 않는다'는 책임 면피성 부분에만 초점이 맞춰졌고, '로컬라이저까지 종단안전구역을 왜 연장해야 하는지'에 대한 근본적인 물음이 결여된 결론이란 지적이 계속해 제기돼왔다. 이와 관련해 조성일 르네방재정책연구원 교수는 "국토부는 FAA 규정에서 '너머'라는 단어만 인용하면서 RSA 304m 너머에 로컬라이저를 설치하거나, 부득이 304m 이내에 설치 시 주변지반과 같은 높이에서 부러지기 쉽게 만들라는 내용은 무시했다"며 "이는 자칫 사실 왜곡이 될 수 있다"고 지적한 바 있다. 그러면서 "'RESA를 로컬라이저까지 연장한다'는 규정은 로컬라이저를 포함해 공항 내 중요 장애물로 관리하라는 취지인데, 이 부분을 무시하기도 했다"고 평가했다. 

'규정과 관계없이', '이유를 막론하고' 개선? 

 

"사고 초반에 실무적으로 설명자료를 낸 것은 규정의 물리적 해석에 너무 쫓아갔다는 아쉬움이 있고 안전구역은 비상상황을 대비해서 만든 것이기 때문에 부근에 위험한 시설물을 둔 것은 규정과 관계없이 잘못됐다는 것이 현재 공식적인 입장입니다. 이유를 막론하고 현재 위험이 있는 시설은 즉시 시정 조치를 하겠습니다" (박상우 국토교통부 장관) 


이와 관련해 박상우 장관은 결국 국회에서 "활주로 인근에 '콘크리트 둔덕' 등 항공기 안전에 위협이 되는 시설물을 설치한 것은 굉장히 잘못된 일"이라고 시인하긴 했지만, 국내외 공항 운영 규정의 문구 해석을 기준으로 국토부가 로컬라이저 설치의 잘잘못을 가릴 일이 아니라는 입장을 밝혔다. 그러면서 국토부는 최근 대대적으로 전국 공항의 로컬라이저 시설을 전면 개선하겠다고 대책을 내놓으면서도 굳이 규정 위반과는 '관계없이' '별개로' '이유를 막론하고'라는 단서를 붙이는 모습을 보였다. 장관이 말한 '굉장히 잘못된' 그 부적절한 그 구조는 왜 그렇게 오랫동안 유지됐어야 했는가? 한 항공학과 교수는 "이번 사태는 정부를 상대로 책임 소재를 가리는 법적 소송까지 갈 수 있으며, ICAO와 FAA 등 국제적 항공 안전 측면에서도 우리의 항공 안전도를 부정적으로 평가할 수 있는 부분이기에 반드시 짚고 넘어가야 하는 부분"이라며 "국토부는 이걸 너무 잘 알고 있기 때문에 계속 회피적 자세를 보이고 있고, 전국 공항을 조사해 실태를 점검하고 개선하겠단 식으로 피해가려 하는 걸로 보인다"고 지적했다. 대한민국조종사노동조합연맹도 며칠 전 "7개 공항에 고경력자를 우선 배치하라는 지시 등을 고려하면 근본적인 원인 분석과 해결을 통한 안전 확보라는 목적보다는 시설 관리 부실 및 개선 책임 회피를 위한 전형적인 탁상 행정"이라며 콘크리트 둔덕 등 위험한 로컬라이저 시설을 즉각 철거하란 공식 입장을 냈다. 

경제성 ·입지 논란에도 정치 논리에 탄생…예견된 참사

취파 하정연 기자- 무안공항 참사, 콘크리트 둔덕 사진

김대중 정부 시절인 1999년 착공된 무안국제공항은 일명 '한화갑 공항'으로 불린다. 김대중 정부 당시 실세로 알려진 한화갑 전 국회의원이 주도해 탄생했기 때문이다.  감사원은 2004년 무안공항의 경제성 분석이 크게 부풀려졌다고 밝혔지만 건설은 계속 추진돼 2007년 완공됐다. 개항 전 연간 이용객이 900만 명을 넘어설 것으로 예측했지만, 이용객은 23만여 명 수준이었다. 예상치의 2%만이 무안공항에서 항공기를 탔다는 얘기다. 정치 논리에 따라 선심성으로 공항을 지었다는 지적이 끊이지 않은 이유다. 

입지 선정 과정에서도 논란은 많았다. 공항 주변에 철새 서식지 창포호와 무안저수지, 청계만 등 6곳의 철새 도래지가 집중돼 있기 때문이다. 주변엔 대규모 무안갯벌습지보호구역도 조성돼 있어 철새들의 중간 기착지 역할을 한다. 2020년 무안공항 전략환경영향평가 보고서도 “항공기가 이착륙할 때 조류 충돌 위험성이 크다”며 저감 대책 마련을 주문한 바 있지만, 활주로 확장 사업을 이유로 보강이 이뤄지지 않았다. 

관제탑 '조류 경보' 1분도 안 돼 충돌…퇴치 인력은 단 1명 

취파 하정연 기자 - 가창오리 군무 사진

일단 지었다면, 잘 관리했어야 하는데 현실은 그렇지 못했다. 국토교통부 항공철도사고조사위원회가 발간한 첫 현장 조사 보고서에 따르면 이번 참사의 최초 원인은 '버드 스트라이크', 조류 충돌이다. 조류 충돌 상황 자체는 언제 어디서든 일어날 수 있는 일이지만, 이번 참사의 경우는 결이 다르다. 조종사들은 버드 스트라이크에 대비한 훈련을 평소 받긴 하지만, 투 엔진 페일, 그러니까 두 개의 엔진이 모두 셧다운되는 경우는 이례적이라고 입을 모은다. 사고기는 대표적인 겨울 철새인 가창오리와 충돌한 걸로 조사됐다. 보통 수백~수천 마리가 함께 날며 ‘군무’를 하는 것으로 알려진 종이다. 아직 새 떼 규모와 충돌 개체 수까진 정확히 조사되지 않았지만 SBS가 사고 직전 찍힌 영상을 정밀 분석한 결과 기체 크기 10배 정도 되는 거대한 새 떼가 여객기와 충돌한 걸로 추정되는 장면이 포착됐다. 지난해 무안공항의 운항 1만회당 조류충돌 발생 건수는 22.23회로 인천공항의 약 10배에 달하는 것으로 드러났다. 전국 14개 지방공항 가운데 조류 충돌 발생률이 가장 높다. 

하지만 이를 예방할 대책은 전무했다. 무안공항에서 참사 열흘 전 열린 조류충돌예방위원회, 인력, 차량 등이 부족해 조류 분산, 포획 실적이 전년 대비 14.4%가 감소했다는 우려가 나왔다. 그런데도 사고 당시 현장에는 조류 퇴치 인력 1명만이 근무하고 있었다. 근무자 1명이 2.5킬로미터 길이 활주로, 최대 150미터 고도까지를 책임져야 하는 것이다. 폭음기와 직원 1명이 엽총 한 자루 가지고 거대한 새떼를 퇴치하는 게 상식적으로 가능할 리 없다. 조류탐지에 필요한 조류감지 장비, 조류탐지 전용 레이더, 열화상 카메라도 없었다. 
 

"조류 경보와 거의 동시에 일어났다고 봐야죠. 관제사 눈에도 보였고, 조종사 눈에도 새가 보인다? 눈에 보였다고 하면 그건 충돌하는 상황이라고 봐야 해요. 안 보이는 새들은 이미 빨려 들어간 건 빨려 들어가고, 도망가는 건 보였고 이렇게 된 거죠." (김영길  한국항공대 항공안전교육원 교수)
 


사고조사위원회가 내놓은 조사 내용을 초 단위로 분석해보면, 사고기는 관제탑의 조류활동 경고를 받고 채 1분도 안 돼 조류와 충돌했다. 관제탑의 조류 경고가 여객기에 전달된 건 8시 57분 50초, 이로부터 21초 뒤, 실제로 항공기 아래 방향에 조류가 있다는 대화가 조종사들 사이에 오간다. 그로부터 39초 뒤인 8시 58분 50초에 블랙박스 기록이 완전히 멈췄다. 조종사들이 조류 경고를 받았지만 대응할 시간은 거의 없었다는 얘기다. 조종사가 육안으로 조류 활동 정보를 안 경우엔 관제 기관에 적극 보고해달라던 국토부의 긴급안전운행대책이 황당하고 공허한 이유다.

 

"어떻게든 막았어야 했다" 죄책감…유족의 몫 아냐 

취파 하정연 기자 - 무안공항 참사 희생자 합동 추모식, 49재 사진

트라우마 치료 전문가들은 참사가 발생했을 때 유족들을 가장 괴롭히는 감정이 바로 '죄책감'이라고 말한다. 어떻게든 그 죽음을 막아야 했다는 결론을 내고 가혹할 정도로 자신에게 책임을 추궁한다는 것이다.  "거기 가는 걸 내가 말렸어야 했다", "여행을 가지 않았더라면?" "그날 일정을 조정했더라면?" 사랑하는 이의 망연자실한 상실 앞에서 대부분은 한없이 자신을 탓하게 된다. 내가 무언가 했더라면 그 사람의 죽음을 막을 수 있을 거라고 말이다.

정신과 전문의 정혜신 씨는 자신의 저서에서 "보통의 사회적 참사에서 그 죽음에 책임이 있는 사람들이 죄의식을 갖는 게 아니라 희생자들을 사랑하는 사람들이 죄의식을 나눠 갖는다"고 진단한다.  그런 의미에서 이번 참사에서 누구보다 자신에게 가혹한 잣대를 들이밀어야 할 이들은 따로 있지 않을까. "어떻게든 이 죽음을 막았어야 했다"는 끝없는 자책과 성찰은 유족들의 몫이 아닌 정부와 정치권의 몫이어야 한다. 

참사 직전 마지막 4분 동안 기장과 부기장의 대화 내용 등이 담긴 블랙박스 기록은 사라졌다. 사고 조사 결과가 나오기까지 최소 수개월, 길게는 2년 가까운 분석과 검증의 시간이 남아있다. 누군가 세상을 떠났더라도, 기억하는 한 살아있다는 말이 있다. 철저한 진상 규명과 수사를 통해 관련자들에게 응분의 책임을 묻기까지는 아마 길고도 지난한 시간이 걸릴 걸로 보인다. 이 과정에서 누구든 은근슬쩍 책임을 회피하거나 넘어가려는 움직임이 있어선 안 될 것이다. 이 모든 과정을 끝까지 함께 지켜보고, 합당한 책임을 묻는 게 남은 자들의 역할이라고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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