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파멜라 폴은 뉴욕타임스 오피니언 칼럼니스트다.
미국 내 인종 정의 문제에 대해 글을 쓸 때 나는 몇 가지 단순한 전제를 둔다. 첫째, 1776년부터 민권법이 제정된 1964년까지 미국의 정치 체제는 제도적으로 편견과 그로 인한 폭력을 용인하고 인정했다. 둘째, 우리에게는 우리 자신의 압제가 낳은 결과를 해소하기 위해 지속적으로 노력할 도덕적 책임이 있다.
동시에 우리는 역사적, 동시대적 불의가 낳은 문제를 해결하는 데 추가적인 인종 차별을 저지르지 않을 수 있고, 또한 마땅히 그래야 한다. 미국인들은 연방법에 따른 의무, 그리고 미국에서 일어난 불의에 대해 교육받아야 하고, 이 과정에서 표현의 자유가 억압되거나 과격하고 파괴적인 이념적 세뇌를 받는 일은 없어야 한다.
미국의 모든 대통령과 정부는 이와 같은 원칙을 조화롭게 지켜나갈 도덕적, 법적 책임을 지지만, 도널드 트럼프는 이미 그 책임을 저버렸다. 연방 정부의 다양성, 형평성, 포용성 프로그램(Diversity, Equity, Inclusion; D.E.I)을 금지하는 트럼프의 행정명령은 단순히 불법적이고 비합리적인 D.E.I.를 금지하는 데 그치지 않기 때문이다.
트럼프가 서명해 공표한 행정명령은 연방 정부가 역사적으로 소외된 사람들의 대표성을 높이기 위해 합법적 테두리 내에서 공정하게 노력하는 것을 차단하고, 정부가 옹호한다고 주장하는 연방 민권법의 준수를 약화하는 치명적인 명령이다.
일례로 2025년 1월 21일에 발표된 "불법 차별 종식 및 능력에 기반한 기회 회복"이라는 제목의 행정명령을 살펴보자. 일부는 무해하고, 심지어는 환영할 만한 내용이다. 이 명령은 연방 정부의 채용, 고용 연장 및 승진에서 인종에 따른 특혜를 금지하고 있는데, 이는 이미 대법원 판례에 따라 거의 확실하게 불법으로 규정된 행위다.
대법원은 대학 입시에서 인종이라는 요소를 활용하는 것이 헌법에 어긋난다고 판시한 바 있으므로, 인사 결정에 인종을 부정적으로건, 긍정적으로건 활용하는 모든 정부 기관은 특별 감사 대상이 된다.
해당 행정명령은 또한, 대다수 다양성 교육을 금지하는 결과를 낳는다. 손실이라고 보기는 어렵다. 다양성 교육이 비용이 많이 들고 분열을 초래하는 시간 낭비인 경우가 많다는 연구 결과도 많다. 2023년 제시 싱걸이 뉴욕타임스에 기고한 글에서 밝혔듯, 다양성 교육은 "장기적으로 긍정적인 효과가 거의 없거나, 전혀 없다"고 한다.
싱걸이 지적한 대로 인종적 고정관념이 뿌리 깊이 박히면, 유익하기보다는 해로울 수 있다는 주장을 뒷받침하는 강력한 근거도 있다. 국립 스미스소니언 아프리카계 미국인 역사 문화 박물관이 개인주의와 핵가족을 "객관적이고 합리적인 선형적 사고"로, 매력의 "단조로운" 정의를 "백인성과 백인 문화의 요소 및 추정"으로 묘사한 인포그래픽을 전시했을 때를 예로 들 수 있다. (스미스소니언은 이후 해당 인포그래픽에 대해 사과했다.)
하지만 그렇다고 D.E.I.가 즉각적이고 영원한 정치적 죽음을 마땅히 받아들여야 하는 것일까? 문제는 그렇게 단순하지 않다. 인종에 근거한 특혜는 불법이다. 다양성 교육이 분열을 초래할 수도 있다. 하지만 소수인종 우대 정책이나 다양성 교육이 D.E.I.의 전부는 아니다.
인종에 근거한 특혜 없이도 역사적으로 소외되어 온 집단을 지원할 방법은 많다. 고등 교육 분야만 보더라도 상위 10%의 성적으로 공립 고등학교를 졸업한 모든 학생에게 텍사스주 내 공립대학에 자동 입학 자격을 부여하는 '상위 10% 플랜'과 같은 정책을 예로 들 수 있다.
주 단위에서 소득에 따른 입학 특혜를 제공하거나 특정 소득군을 겨냥한 과외 프로그램을 운영할 수도 있고, 부와 권력을 가진 가정에 추가적인 이득으로 작용하는 동문 자녀 특례 입학(legacy admission) 같은 제도를 금지할 수도 있다.
다시 말해, 똑똑한 정부라면 인종 불균형에 긍정적인 영향을 줄 수 있는 다양한 인종 중립적 정책을 시행할 수 있다는 이야기다. 역사적 인종 차별은 체계적인 경제적 불평등에 이바지해 왔기 때문에, 계급에 기반한 정책을 통해 인종적 포용을 촉진할 수 있는 것이다.
그러나 트럼프의 행정명령은 가장 극단적인 방식으로 가장 극단적인 형태의 D.E.I.에 대응하고 있다. 트럼프는 단지 "다양성을 장려"한다는 이유만으로 노동부 산하 연방 고용계약 이행 부서(Office of Federal Contract Compliance Programs)를 없애버렸다.
트럼프는 D.E.I. 관련 부서 폐쇄와 "모든 '다양성', '형평성', '공평한 의사 결정', '재정 및 기술 지원의 공평한 배치', '형평성 증진' 및 이와 유사한 지시, 요건, 프로그램 및 활동의 종료"를 명령하고 있다.
군대 내 D.E.I.를 금지하는 트럼프의 행정명령에도 마찬가지로 프로파간다 조항이 들어 있다. 군사 학교가 "미국과 미국의 건국 문서는 인류 역사상 가장 강력한 선의의 힘임을 가르치도록" 요구하고 있다.
헌법과 미국 건국의 가치를 수호하는 일이라면 나 역시 둘째가라면 서러운 사람이지만, 이런 조항은 말도 안 되는 소리다. 미국 독립선언문은 성경의 산상수훈과 비교할 수 없다. "긍휼히 여기는 자는 복이 있나니, 그들이 긍휼히 여김을 받을 것이요, 마음이 청결한 자는 복이 있나니, 그들이 하나님을 볼 것이요, 화평케 하는 자는 복이 있나니, 그들이 하나님의 자녀라 불릴 것이다"와 같은 말씀은 수천 년 동안 적용되어 온 말씀일 뿐 아니라, 미국 지도자들의 잔인함과 복수심을 고발하는 문구이기도 하다.
미국을 수호하는 군인들을 독려하기 위해 미국의 미덕을 과장되게 부풀릴 필요는 전혀 없다.
더 큰 문제는 행정명령의 표현이 너무 광범위하고 포괄적이어서 연방법 중 가장 강력한 다양성 보호 조치를 담고 있는 민권법의 집행을 방해할 수 있다는 점이다.
민권법의 조항에 따라 피부색에 구애받지 않는 고용을 요구할 수 있지만, 그 자체가 인종 차별 금지 법령이라고는 할 수 없다. 민권법상 차별과 괴롭힘을 금지하는 조항은 고용 결정 및 직장 내 괴롭힘에서 인종적인 동기가 있었는지를 조사하도록 하고 있다. 법적 원칙, 이를테면 형식적으로는 중립임에도 특정 집단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치는 관행을 칭하는 차별적 영향(disparate impact) 원칙에 따라 연방 고용주는 어떤 정책이 의도치 않은 차별적 효과를 내지 않는지 검토할 의무가 있다.
민권법은 차별과 괴롭힘을 금지하기 때문에 필수적으로 교육의 요소를 포함할 수밖에 없다. 연방 정부의 직원 모두가 일을 시작할 때부터 민권법 전문가일 수는 없으므로, 자신의 의무를 이해하는 데 필요한 교육을 받아야 하는 것이다.
트럼프의 행정명령은 분명 민권법을 준수해야 하는 연방 정부의 의무를 매끄럽게 담아내고 있다. 대통령이 1월 21일에 낸 행정명령은 민권법을 "모든 미국인이 기회의 평등을 누릴 수 있는 기반"이라고 표현하며, "모든 기관이 미국의 유서 깊은 민권법을 집행하고 불법적인 민간의 D.E.I. 특혜, 명령, 정책, 프로그램 및 활동에 맞서 싸워야 한다"고 지시한다.
그러나 해당 행정명령에는 민권법 집행과 상충하는 강력한 강제 조항이 포함되어 있다. 민권법을 수호한다고 주장하는 바로 그 명령이 차별을 금지하는 기존의 행정명령을 폐지한 것이다. 예를 들어 트럼프 대통령의 행정명령은 연방 정부와 계약을 맺는 업체가 "인종, 피부색, 종교, 성별, 성적 지향, 성 정체성 또는 출신 국가를 이유로 직원 또는 지원자를 차별하는 행위를 금지"하는 행정명령 11246호를 폐지했다.
나아가 트럼프의 행정명령은 다양성을 달성하기 위한 모든 노력을 금지함으로써 민권법 집행 인프라의 핵심을 완전히 망가뜨릴 수 있다. 트럼프 행정부가 대통령이 "적절하다"고 판단하지 않는 모든 다양성 프로그램과 활동의 폐지를 명령하면, 복잡한 연방 민권법을 따르기는 훨씬 더 어려워질 것이다.
끝으로 트럼프 행정명령의 문화, 정치적 맥락을 무시하는 것은 어리석은 짓이다. MAGA(미국을 다시 위대하게) 우파는 반 D.E.I. 히스테리에 사로잡혀 있다. 2차대전 당시 군대의 여전한 인종 분리에도 불구하고 용감하게 복무했던 흑인 조종사 부대인 터스키기 부대에 대한 공군의 공식 영상을 트럼프가 금지했는지를 둘러싼 혼란이 있었는데, 이는 광범위한 언어와 격렬한 공포의 조합이 만들어내는 문제를 상징적으로 보여준 사례다.
트럼프 행정부는 성과주의에 얼마나 진심일까? 피트 헥세스 국방부 장관, 로버트 F. 케네디 주니어 보건복지부 장관 지명자, 털시 개버드 국가정보국장 지명자, 캐시 파텔 FBI 국장 지명자를 보고 트럼프가 2기 행정부를 이끌 최고의 인재를 찾기 위해 미국 전역을 샅샅이 뒤졌다고 생각할 사람은 아무도 없을 것이다.
(남은 이야기는 스프에서)
댓글 아이콘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