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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자는 예뻐야 해"…'서브스턴스', 한물간 줄 알았던 데미 무어의 재발견 [스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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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즐레]
김지혜 주즐레 썸네일
 

'주말에 뭐 볼까?' 주말을 즐겁게 보내는 방법을 스프가 알려드립니다.
 

(SBS 연예뉴스 김지혜 기자)

'서브스턴스'는 브레이크 없이 폭주하는 영화다. 이 영화를 두고 '미친 영화'라는 소리가 절로 나오는 것은 도무지 어디까지 갈지 가늠이 안 되고, 상상 그 이상의 것을 보여주기 때문이다. 그야말로 갈 데까지 간다.

이 영화는 자기 혐오라는 주제로, 미모 지상주의 사회를 풍자하며 놀라운 흡입력을 보여준다. 단, 임산부와 심약자는 주의할 것. 왜? 보고 나면 기가 쫙쫙 빨리니까.

엘리자베스(데미 무어)는 아카데미상을 받고 명예의 거리에까지 입성한 스타 배우지만, 지금은 TV 에어로빅 쇼 진행자로 전락했다. 한물간 배우임을 자각하며 현재의 위치에서 최선을 다한다. 하지만 그녀는 자신의 처지를 한순간에 깨닫게 되는 뒷담화를 듣고 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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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려야 해, 섹시해야 해. 바꿔!"

방송국 사장이 TV쇼 진행자 교체를 지시하는 전화 통화를 엿듣게 된 것. 엘리자베스는 좌절한다. 더 이상 젊지 않고, 관능적이지 않아 버려지게 된 그녀는 혼돈에 휩싸여 교통사고까지 내고 만다.

병원에서 치료를 받고 퇴원하려던 찰나, 한 남자 간호사로부터 뜻밖의 제안을 받게 된다. "제 인생을 바꿔줬어요"라고 쓰인 쪽지와 '서브스턴스'라고 적힌 USB를 받는다. 이 물질(substance)의 실체(substance)는 무엇인가. 마법과 물약일까, 금단의 열매일까. 이를 통해 데미 무어가, 코랄리 파르자 감독이 말하고자 하는 바는 무엇일까.
 

"여자는 예뻐야지"·"예쁜 여자는 웃어야 해"... 반기와 수긍 사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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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걀 한 알이 '톡' 하고 터트려진다. 노른자에 주사기 속 약물을 주입하니 똑같은 노른자가 복제된다. '서브스턴스'의 속성을 단순하고 선명한 이미지로 보여주는 오프닝 컷이다. LA 베벌리힐스 명예의 거리에 엘리자베스 스파클이라는 이름이 새긴 동판이 만들어지는 장면으로 이어진다. 세월은 속절없이 흐르고, 사람들의 수많은 발길이 닿은 동판에는 먼지가 쌓이고 그녀의 이름마저 흐릿해진다. 이어 현재의 엘리자베스가 화면에 등장한다. 총기를 잃은 눈과 주름 가득한 피부, 늘어진 가슴, 쌓인 세월의 무게는 화장과 옷으로도 가릴 수 없다.

대중 매체에 노출된 스타는 동경과 선망의 대상이다. 외모와 끼, 인간적 매력 등 연예인을 좋아하는 이유는 각양각색이지만 외모의 우월성에서 오는 경외감은 무시할 수 없는 요소다. 엔터테인먼트 산업에서 스타는 하나의 상품이다. 상품의 외형이 곧 질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지만 미의 경연장과 같은 속성을 띄는 쇼비즈니스 세계에서 나이 든다는 것은 곧 경쟁에서 도태된다는 것을 의미한다. 무엇보다 이 세계 속 상품은 언제나 대체가 가능하다. 별은 수없이 뜨고 진다.

영화에서 외모 지상주의이자 시청률 맹신자인 방송국 사장 하비의 멘트가 폐부를 찌른다. 그는 여성의 성상품화를 부추기는 사회적 시선을 극단적으로 표현한 캐릭터다. '여자는 어리고 예뻐야지', '예쁜 여자는 웃어야 해'와 같은 말은 강력한 거부감을 불러일으키지만, 엘리자베스가 속한 세계를 생각하면 수긍할 수밖에 없는 측면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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엘리자베스는 서브스턴스라는 약물을 받고 반신반의하며 테스트한다. 사용법에 따라 약물을 주입하자 의식을 잃고 쓰러진다. 이내 엘리자베스의 등가죽을 뚫고 '더 나은 나'인 수가 태어난다. 엘리자베스의 늙은 육체는 벗어 놓은 옷마냥 바닥에 널브러져 있다. 서브스턴스 1회분의 지속 시간은 일주일. 엘리자베스는 일주일 간격으로 젊고 아름다운 나와 늙고 추한 나를 오가는 삶을 시작한다.

서브스턴스의 대전제는 'You are the one'(너는 하나)이다. 나는 또 다른 나로 살아갈 수 있지만, 복제된 인간의 원천 소스도 나다. 이 한 문장에는 새로운 가능성과 함께 무시무시한 경고가 담겨 있다. 젊고 아름다운 나를 사랑할수록 늙고 추한 내가 혐오스럽다. 반대로 늙고 추한 내가 실제의 나라고 인정하고 나면, 젊고 아름다운 또 다른 나에 대한 끊임없는 질투와 증오가 불타오른다. 

이브가 선악과를 따먹음으로 인해 파국을 맞이한 것처럼 영화는 과욕에는 대가가 따른다는 것을 처절하게 보여준다. 나는 나를 파괴할 권리가 있지만 그 반대로는 불가능하다는 것. 애초부터 하나인 엘리자베스와 수는 공존할 수도 있었으나 시간을 나눠 쓰는 경쟁 관계로 돌입하며 서로를 증오하고 경멸한다. 이것은 곧 스스로에 대한 뿌리 깊은 혐오로 이어진다.
 

데미 무어, 삶을 연기하듯... '자기 반영'→'자기 혐오' 극복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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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는 데미 무어와 마가릿 퀄리의 얼굴과 몸을 잔인하리만큼 비교한다. 늙어 추한 얼굴과 젊고 탱탱한 육체를 대비시켜 아름다움과 아름답지 않은 것을 시각적으로 재단하게끔 한다.

이 가차 없는 대비는 잘못된 유혹에 빠지는 엘리자베스의 심리를 이해하는 효과를 낸다. '단 하루만이라도 저 얼굴, 저 몸으로 살 수 있다면 악마와도 거래하겠다'와 같은 마음을 인간의 어리석음으로 조소하긴 쉽지 않다.

이 영화의 설득력은 데미 무어라는 배우 그 자체에서 발생한다. 데미 무어가 누구인가. '사랑의 영혼'(1990)으로 스타덤에 올라 '어 퓨 굿 맨'(1992), '은밀한 유혹'(1993), '스트립티즈'(1996), 'G.I. 제인'(1997) 등의 작품으로 끊임없이 변신을 추구했던 1990년대 최고의 스타 중 한 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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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리우드를 대표하는 액션 스타인 브루스 윌리스와의 이혼, 18살 연하의 애쉬톤 커쳐와의 결혼과 이혼 등으로 할리우드 가십란을 빼곡히 채웠으며 옐로우 저널리즘의 희생양이 되기도 했다. 특히 성형에 대한 보도, 7억을 들여 전신 성형을 했다는 루머는 정설처럼 굳어졌다. 2000년대 이후 성형 중독으로 자멸한 할리우드 배우라는 이미지만 남긴 채 그녀는 서서히 잊혀졌다.

활동을 하지 않은 것은 아니다. 매년 한 편 이상씩의 작품을 하며 배우 활동을 이어왔다. 다만 그저 그런 B급 영화에 출연해 존재감을 발산할 일이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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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0대에 접어든 데미 무어에게 도착한 '서브스턴스' 각본은 일생일대 기회이자 모험이었다. '외모 강박으로 자신을 갉아먹는 여배우'라는 캐릭터는 자기 반영적 요소가 강했다. 데미 무어는 "이 대담하고 용감하고 미친 시나리오는 세계가 제게 '아직 끝나지 않았다'고 말해주는 것 같았다"고 말했다. 그렇게 그녀는 모험을 기회로 받아들였다.

데미 무어는 이 작품으로 데뷔 45년 만에 처음으로 골든글로브 여우주연상을 받았다. 등락이 컸던 배우 인생을 회고한 듯한 수상 소감은 기립 박수를 받기에 충분했다.

"30년 전에 한 프로듀서는 제게 팝콘 배우라고 말했고, 그때 저는 이런 상은 제게 어울리지 않는다고 생각했습니다. 그 말은, 제가 성공적인 영화를 찍고 많은 돈을 벌 수는 있지만, 배우로서 인정받을 수는 없다는 뜻으로 느껴졌어요. 이런 생각은 계속 저를 갉아먹었고, 제가 할 수 있는 일은 이미 다 했다고 생각했죠. 힘든 시기를 보내고 있을 때, 대담하고, 용감하며, 완전히 미친 '서브스턴스'의 시나리오를 받았어요. 그때 세계는 제게 '아직 끝나지 않았다'고 말해주는 듯했죠."
 

장르와 메시지의 조화... 파격만 남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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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브스턴스'는 전반적으로 과하다. 이야기의 흡입력과 경쾌한 속도감, 난사에 가까운 이미지의 향연은 도파민 지수를 최대로 끌어올리지만 후반부의 고어한 이미지와 피칠갑은 보는 사람을 괴롭게 하기도 한다. 그러나 이 이야기가 택한 장르와 연출 방식은 메시지와 절묘한 조화를 이룬다.

영화를 연출한 코랄리 파르자 감독은 강렬한 비주얼과 직선적인 화법으로 여성에게 가해지는 폭력을 다뤄왔다. 장편 데뷔작 '리벤지'(2020)가 여성이 당한 육체적 폭력을 주체적인 복수극 형식으로 다뤘다면, '서브스턴스'는 사회가 여성에게 가하는 심리적 폭력을 바디호러 장르로 풀어냈다.

(남은 이야기는 스프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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