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잘 몰랐던 동물 이야기, 수의사가 직접 전해드립니다.
자칫 반려동물의 질환은 경증만 있을 것으로 생각하기 쉬우나 전혀 그렇지 않다. 사람이 앓는 병의 대부분이 개와 고양이에서 나타난다고 봐도 무방할 것이다. 그래서 동물병원 약제실에는 생각보다 많은 종류의 약이 존재한다. 항생제, 효과가 조금씩 다른 소화기 약물, 피부과 약을 비롯하여 진통제, 고혈압 약, 심장병 약, 내분비질환에 대한 약, 항경련제, 면역억제제 등을 가지고 있다. 이들 각각에 대해서도 여러 종류의 약이 있고, 신약이 계속 출시되고 있어서 꾸준한 업데이트가 필요하다. 이런 사정으로 어느 동물병원이나 약제실에는 많은 약들이 빼곡히 자리 잡고 있다.
어떤 약이든 투약의 기본은 정해진 양을 정해진 횟수에 맞춰서 먹이는 것이다. 다양한 종류의 약이 처방되기 때문에 약에 따라 먹는 방법과 횟수가 다를 수 있다. 보호자로서 처방받은 약이 어떤 종류의 약인지, 어떻게 먹여야 하는지 등을 파악하는 일은 매우 중요하다. 우선 수의사의 복약 지시를 잘 들어야 한다. 약 봉투에 일반적인 지시사항이 적혀 있기도 하고, 따로 기입이 되어 있는 경우도 있으므로 약 봉투도 꼼꼼하게 챙겨봐야 한다. 그럼에도 기억이 헛갈릴 수 있다. 그럴 경우 반드시 동물병원에 확인 후 약을 먹이는 것이 좋다.
동물병원에서 처방되는 약은 하루 두 번(아침, 저녁) 복용이 일반적이다. 진통제나 피부약은 하루 한 번 복용하기도 하고, 심장약이나 신장질환 환자에게는 하루 4회 복용이 지시되기도 한다. 하루 한 번 먹어야 하는 약을 두 번 먹을 경우 약 용량이 과하여 부작용을 일으킬 수 있고, 공복에 먹어야 하는 심장약을 식사와 함께 먹일 경우 효과가 떨어질 수도 있다. 또는 식사와 함께 먹어야 하는 약을 공복에 먹일 경우는 약효가 없을 수도 있다. 그래서 투약 시 복약 지시대로 먹여야 원하는 약효를 보는 것은 물론이고, 잘못된 투약으로 인한 문제도 예방할 수 있다. 가족 구성원이 돌아가면서 약을 먹인다면 약을 먹인 후 기록해두는 일도 필요하다. 간혹 다른 가족이 먹인 걸 모르고 다시 먹여서 중복 투여되는 사례가 왕왕 있기 때문이다. 두 번 먹었다고 생명에 지장을 줄 정도로 안전역이 낮은 약은 드물지만 (항암제는 다를 수 있음) 환자의 병증에 따라 컨디션에 악영향을 줄 가능성이 있기 때문에 주의하는 것이 좋다.
그리고 반려동물에게 처방된 약이 약을 먹이는 사람에게 영향을 줄 수도 있다. 예를 들어 내분비질환 시 처방되는 특정 약은 가임기 여성이나 임산부에게 영향을 줄 수도 있으므로 직접 약을 먹이는 일은 피하는 것이 좋다. 경구 항암제는 특별한 취급 주의가 필요하다. 약물을 직접 손으로 만지지 말아야 하고(파우더 프리 라텍스 장갑 착용 권장), 약을 쪼개거나 캡슐을 열면 안 된다. 미량의 항암제가 소변, 대변 또는 타액으로 배출될 수 있으므로 이에 대한 노출을 최소화해야 한다.
나이가 많은 반려동물이라면 평생 투약이 필요한 질환을 가진 경우가 많다. 대표적으로 내분비질환(갑상선, 부신 등), 심장질환, 신장질환을 들 수 있다. 하루 두 번 투여가 기본이며, 상태에 따라서 횟수가 늘어나기도 한다. 평생 투약을 해야 하는 약들은 질환의 완치보다는 질병 관리를 목적으로 하기 때문에 매일 꾸준히 약을 먹는 게 중요하다. 어쩌다 한 번 잊었을 때 큰 문제가 안 될 수도 있지만(중증 질환에서는 문제 될 수 있음) 반복적으로 누락되면 증상이 재발하거나 질병의 효과적 관리가 어려울 수 있다.
사람도 마찬가지지만, 반려동물이 나이가 들면 한 곳만 아픈 것이 아니라 여기저기 안 좋은 경우가 많다. 복합 질환 환자는 각각의 질환에 대한 약을 처방받게 되고, 그러다 보면 작은 체구의 아이들이 약을 밥보다 많이 먹는 것 같은 인상을 받기도 한다. 질병 보조제도 많아져서 직구를 하거나 인터넷으로 구입하여 먹이기도 한다. 좋다는 보조제를 하나씩 늘이다 보면 그 수가 많아져서 이렇게 계속 먹여도 되는지, 이 중에 뭘 안 먹이는 게 나은지를 고민하다가 병원에 문의하는 보호자도 있다. 상담 후 현 상태에서 우선순위를 정하고, 중요도가 낮은 보조제의 경우는 안 먹이도록 권하기도 한다.
여러 병원을 다닌다면 중복 처방된 약은 없는지 확인하는 것이 필요하며, 반드시 필요한 약인지를 따져서 조절하는 것이 질병 관리에 오히려 도움이 되기도 한다. 다시 강조하자면, 반려동물에게 약을 먹이는 데 문제나 의문이 있을 때 항상 수의사와 상의하는 것이 좋다. 특정한 상황에 대하여 다른 대안을 가지고 있을 수도 있기 때문이다.
(남은 이야기는 스프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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