먹방과 레시피, 와인 등 우리가 먹고 마시고 즐기는 모든 것들의 이야기. 스프에서 맛깔나게 정리해드립니다.
예전에는 겨울이 별로 반갑지 않았다. 겨울이 다가오면 몸을 잔뜩 웅크리고, 추위를 피해 다니기 바빴다. 추운 겨울에 따뜻한 나라에서 계절을 보내는 삶을 꿈꾸기도 했다. 그런데 채식과 친해진 뒤로는 겨울이 기다려지기 시작했다. 사실 겨울 그 자체보다는 겨울에만 즐길 수 있는 계절 채소들이 기다려진다는 말이 맞겠다. 겨울에 맛있는 채소들이 기다려진다. 어느새 모든 계절이 좋아졌다. 계절마다, 달마다 바뀌는 채소들을 기대하며 그 채소로 이런저런 요리들을 해 먹다 보면 한 계절이 지나간다. 채소를 통해 계절을 즐기는 법을 배운 것이다.
스프카세에서 아직 배추를 다루지 않았다는 사실을 발견하고는 기뻤다. 겨울에 맛있는 채소들이야 많지만 그중에서도 겨울 배추가 으뜸이기 때문이다. 특히 배추 된장국은 추위에 시달린 영혼을 데워주는 겨울 기본값 같은 메뉴다. 나는 딱히 먹고 싶은 메뉴가 생각나지 않으면 자연스럽게 물에 된장 한 스푼을 풀고 배추를 넣어 보글보글 끓인다. 푸근한 배추 된장국을 먹을 때면 집에 돌아온 느낌이 든다. 이제는 집 밖을 나가 한 끼만 외식하더라도 배추 된장국이 생각이 난다. 아마도 배추와 된장에는 영혼 깊숙이, 아니 어쩌면 DNA에 각인된 무언가가 있을지도 모른다. 배추 된장국 한 그릇 먹고 나면, 온종일 은근히 나를 괴롭혔던 모든 잡념이 눈 녹듯 사라진다. 그리고 그제야 비로소 나는 내 집에 돌아왔음을 느낀다.
손질이 간편한 알배추를 사는 것도 좋지만, 시간이 허락한다면 나는 굳이 무거운 김장용 배추를 들고 온다. 손바닥보다 큰 푸른 잎으로 감싸인 배추를 손질하고 요리를 해 먹는 과정들이 나름의 재미를 주기 때문이다. 배추 겉잎을 푹 삶아 껍질을 벗겨내고 세로로 찢어 소분한 뒤 냉동실에 얼려둔다. 냉동실에 우거지가 있으면 미리 사둔 채소가 떨어졌을 때 요긴하게 활용할 수 있다. 우거지를 된장국으로 끓이거나, 고추기름에 볶아서 칼칼한 우거지 해장국으로도 먹을 수 있다. 배추 겉잎은 배추전으로 먹어도 훌륭하다. 부드러운 알배추로 만든 전도 좋지만, 조금 거친 배추를 튀김 반죽에 묻혀 바삭하게 부쳐내면 안주로도 제격이다. 하나의 재료로 여러 가지 요리를 해 먹는 즐거움이 주는 채소들이 있는데 배추가 그렇다.
요리를 열심히 해 먹고도 남은 배추는 백김치로 담가둔다. 배추를 하룻밤 동안 소금에 절여둔 다음 양파, 마늘, 사과, 찹쌀 풀, 생강 조금을 넣고 갈아 만든 양념에 생수와 소금을 섞어 배추에 부어준다. 상온에서 3일간 발효시키면 완성이다. 여기에 무를 추가하면 동치미처럼 더욱 시원한 맛을 낼 수 있다. 백김치까지 오면 이번 겨울도 배추와 함께 풍족하게 보냈음을 깨닫는다. 기후위기로 배추를 재배할 수 있는 지역이 점점 줄어드는 사실이 안타까울 뿐이다.
배추는 뼈 건강에 도움을 주는 비타민 K와 피부 및 면역력에 좋은 비타민 C가 풍부하다. 미네랄과 소량의 엽산과 같은 미량 영양소도 포함되어 있다. 또한 식이섬유가 풍부해 식사 전에 섭취하면 혈당을 천천히 올리고 노폐물 배출에도 유익하다. 발효한 배추에는 프로바이오틱스도 함유되어 있어 비싼 유산균 없이도 건강한 생활이 가능하다. 겨울에 필요한 비타민과 유익균이 풍부하니, 역시 한국인이 가장 많이 소비하는 1등 채소다운 면모다.
그동안 만들어둔 배추로 만든 레시피가 너무 많아서 딱 세 가지만 고르는 게 쉽지 않았다. 겨울 배추 요리들과 함께 계절의 참된 즐거움을 한껏 누려보시길.
배추 레시피 3가지
배추만으로도 충분한 메인 요리로 즐길 수 있다. 배추의 독특한 매운 향이 기름에 지글지글 구워지면서 풍미가 깊어진다. 발사믹 식초를 살짝 찍어 먹으면 고소한 단맛이 증폭된다. 홈 파티로도 추천!
- 재료: 알배추 1/2개, 마늘 2알, 아몬드 7알
- 양념: 올리브유 1T, 발사믹 식초 1T, 소금, 후추 약간
배추는 2등분 하고, 마늘과 아몬드는 얇게 썬다. 예열한 팬에 올리브유를 두르고 마늘을 약불로 익힌다. 배추의 단면을 2분 정도 중불로 노릇하게 굽는다. 배추 밑동에 수분을 뿌린다. 뒤집어 2분 정도 굽다가 뚜껑을 닫고 2분 정도 익힌다. 배추를 접시에 담고 아몬드를 뿌린 뒤 칼로 썰어 발사믹 식초를 곁들여 먹는다.
2. 배추 떡볶이
떡보다 배추가 많은 배추 떡볶이. 배추의 달큼함 덕분에 설탕을 넣지 않아도 충분하다. (당연히 넣으면 더욱 맛있다!)
- 재료: 알배추 1/4개, 떡 100g
- 양념: 식용유 2/3T, 고추장 1.5T, 고춧가루 1T, 카레가루 1t, 비건 다시다 1/2t, 물 300ml
배추는 적당한 크기로 썰고 예열한 팬에 기름, 소금을 뿌려 중불로 살짝 볶는다. 배추 숨이 죽으면 고추장, 고춧가루, 카레가루를 넣고 함께 볶는다. 양념이 눋기 시작하면 물, 떡, 다시다를 넣고 강한 불로 3분간 끓인다. 맛을 보고 소금 또는 설탕으로 간을 맞춘 뒤 원하는 만큼 중불에 졸여 접시에 담는다.
(남은 이야기는 스프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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