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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음을 감수하고서라도 승부를 걸라'…그래서 남은 이름, 페라리 [스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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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향저격] (글 : 홍수정 영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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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 쏟아지는 콘텐츠 홍수와 나도 헷갈리는 내 취향, 뭘 골라야 할지 고민인 당신에게 권해드리는 '취향저격'
 

얼핏 보아 <페라리>는 카 레이싱을 소재로 한 스포츠 영화, 혹은 페라리 가문의 역사를 다룬 작품처럼 보인다. 영화가 시작되면, 예측은 보기 좋게 빗나간다. 하지만 괜찮다. 당신은 예상치 못한 곳에서 감탄하게 될 테니까.

<페라리>는 경영 위기에서 기업을 이끄는 '엔초 페라리' 회장의 실화를 다룬다. 자금은 부족하고, 경주 결과는 예측하기 힘든데, 레이서들은 자꾸만 다치고 죽는다. 아내는 자신을 증오하고, 몰래 낳은 사생아는 날로 커간다.

그러나 엔초(아담 드라이버)는 자기 팀 레이서에게 말한다. "무자비한 투지. 소름 끼치는 기쁨. 일단 내 차를 탔으면 이겨야 해. 브레이크는 나중에 밟아." 이것은 레이서 출신의 페라리가 스스로를 채찍질하며 하는 말이기도 하다. 이런 태도를 긍정하지도, 부정하기도 힘들다. 영화는 그저 징그러울 정도로 집요한 그의 발걸음을 묵묵히 따라갈 뿐이다. 결국 <페라리>는 모든 것을 걸고 자신의 이름을 지키려는 한 남자에 관한 이야기다. 아래부터 영화 결말에 관한 스포일러가 있으니, 유의해 읽어주길 바란다.

홍수정 취향저격
엔초의 곁에는 늘 죽음의 그림자가 어른거린다. 아들 '디노'는 병으로 세상을 떠났고, 아내 라우라(페넬로페 크루즈)의 얼굴에는 생기가 없다. 디노가 잠든 곳을 자주 찾는 이들 부부는 매일이 상중인 것처럼 느껴진다. 회사 '페라리'는 경영 악화로 벼랑 끝에 내몰린 상황. 게다가 페라리 팀의 레이서 '카스텔로티'는 사고로 죽고 만다.

"(카스텔로티가) 그리울 것 같냐"는 질문에 엔초는 답한다. "그런다고 살아나?" 이 단순한 답에는 엔초의 가치관이 숨어있다. 그에게 중요한 건 오직 '살아나는 것'이다. 이것은 그와 가족, 아끼는 레이서들, 그리고 회사 페라리를 관통하는 명제다. 과연 우리는 계속 생존할 수 있을 것인가.

엔초는 누구보다 비정하다. 이것은 그가 삶을 지키는 방식이다. 카스텔로티가 죽자, 엔초는 곧바로 다른 레이서를 찾는다. 이런 비정함 위에서 페라리는 연명한다. 아내 라우라도 마찬가지다. 그녀는 곧바로 보험사에 낼 차량 보고서를 챙긴다. 이들은 서로를 증오하지만, 꽤 잘 맞는 커플이다. 이 장면은 둘이야말로 페라리의 주인이 될 자격이 있음을 보여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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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엔초가 죽음을 개의치 않는 것은 아니다. 그는 자기 차를 타고 죽은 이들의 이름과 날짜를 외고 있다. 다만 거기에 머물지 않고, 멈칫대는 것이 두려워 감정마저 차단한 채, 걷고 또 걷는다. 생존은 그의 유일신이다. 실은 엔초야말로 누구보다 '삶'을 경외하는 자다.

그럼에도 엔초는 비난받는다. 언론은 그가 '자기 자식을 잡아먹는다'라고 표현한다. 그가 자신의 레이서에게 무척 가혹하기 때문이다. 그는 죽음을 감수하고서라도 승부를 걸라고 말한다. 이는 그의 좌우명이기도 하다. 엔초가 이런 태도를 견지하는 데는 이유가 있다. 그가 말하는 '삶'은 단순히 생명 연장이 아니라, 이름을 남기는 일이기 때문이다. 길게 이어져야 하는 것은 목숨이 아니라, 이름이다. 이 영화의 제목이 '페라리'인 이유다.

엔초가 자주 반복하는 말이 있다. 바로 '역사'. 레이싱 경기에서 대형 사고가 터진 이후, 엔초는 우승한 선수에게 전화해 말한다. "축하 인사를 전하고 싶어. (너의 경주는) 역사에 남을 거야." 아내 라우라와 이혼하라는 권유에도 그는 대답한다. "우리에게는 역사가 있어." 그가 말하는 '역사'란 시간 안에 새겨진 이름이다.

이것은 <페라리>의 마지막이 엔초와 라우라의 대화인 이유를 알게 한다. 이 장면은 얼핏 보아 긴장감이 떨어져 결말 부분으로 적절하지 않다. 하지만, 이 짧은 대화에는 그들이 지켜 온 가치가 넘실댄다. 라우라는 회사를 살리기 위해 자신의 돈을 조건 없이 내어주며 한 가지 부탁을 한다. 자신이 살아있는 한, 그 사생아에게 '페라리'라는 성을 물려주지 말라고. 삶, '페라리'라는 기업, 그리고 그 이름. 이들에게는 이것이 전부다.

홍수정 취향저격
(남은 이야기는 스프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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