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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DDX 난제의 열쇠…'19년 9월 지침 변경' 의혹 해소해야 [취재파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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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DDX 난제의 열쇠…'19년 9월 지침 변경' 의혹 해소해야 [취재파일]
▲ HD현대중공업의 KDDX 모형

12·3 비상계엄의 폭풍이 군과 주변 기관을 뒤흔드는 통에 작년 여름부터 뜨거웠던 차기 한국형 구축함 KDDX 사업 기밀탈취와 상세설계, 선도함 건조 이슈는 뒷전으로 밀린 것 같은 분위기입니다. 겉으로 여론의 주목도가 떨어져 보일 뿐, 실상은 다릅니다. KDDX 상세설계와 선도함 건조를 노리는 HD현대중공업(HD현중)과 한화오션의 물밑 경쟁은 여전합니다. 산업자원부의 KDDX 방산업체 지정을 앞두고 두 업체의 신경전은 오히려 더 뜨거워졌습니다.

어느 쪽이 이기든, 또는 비기든 방사청이 어련히 알아서 잘 정리하면 좋겠지만 방사청만 믿고 손 놓을 수 없는 사정이 있습니다. 여전히 미궁 속에 있는 2019년 9월 9일 방사청의 제안서 평가업무 지침 변경 사건입니다. 방사청은 KDDX 기본설계 공고 몇 달 전 HD현중의 감점 요인을 제거할 수 있는 문구를 은밀하게 지침에 삽입했습니다. KDDX 개념설계 사업을 놓친 HD현중이 개념설계서 등 기밀을 무더기로 훔치고도 KDDX 기본설계 사업을 따낼 수 있었던 결정적 계기가 바로 그 지침 변경입니다.

방사청은 지침을 바꾸기에 앞서 시뮬레이션을 돌려 지침을 변경했을 때와 안 했을 때 각각의 결과를 정밀하게 따져본 것으로 파악됐습니다. 지침 변경 감독의 절차는 생략했습니다. 몹시 수상한 일이지만 공론화 없이 지금까지 덮였습니다. 방사청은 이제라도 2019년 9월 9일 지침 변경의 과정을 면밀히 검토해 잘잘못을 따져야 할 것입니다. 지침 변경을 둘러싼 여러 의혹들을 해소하다 보면 업체들의 다툼으로 늪에 빠진 KDDX 상세설계와 선도함 건조 사업의 해법도 찾을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됩니다.

HD현중의 원전 비리와 방사청의 제안서 평가 지침 변경


대법원은 지난 2014년 12월 UAE 수출용 원전의 부품을 납품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대가로 HD현중 측으로부터 거액의 뇌물을 수수한 한국수력원자력 송 모 부장의 징역 12년, 벌금 35억 원 등의 형을 확정했습니다. 뇌물 전달을 총괄한 김 모 전무 등 HD현중 임직원 2명의 징역 3년형도 최종적으로 판결됐습니다.

이에 따라 한국수력원자력의 모회사인 한국전력은 HD현중에 2년 입찰 참가 자격 제한의 처분을 내렸습니다. HD현중은 한국전력 처분의 취소를 요구하는 행정소송 등을 제기했지만 대법원에서 패소했습니다. 그래서 HD현중은 2017년 12월 23일부터 2019년 11월 24일까지 한국전력의 입찰 참가 자격 제한 처분을 받았습니다.

2019년 11월까지 유효했던 한국전력의 처분으로 인해 2020년 7월 20일 입찰 등록이 마감된 KDDX 기본설계 사업에서 HD현중은 희망이 없었습니다. "입찰 등록 마감일 전일 기준 '최근 2년 이내' 부정당업자 제재"를 받은 경우 감점한다는 방사청의 무기체계 제안서 평가업무 지침에 정통으로 걸리기 때문입니다. 한국전력의 부정당 제재는 2년이 아니라 단 몇 달 전까지 유효했던 바, HD현중은 방사청의 지침에 따라 약 0.8점의 감점이 불가피했습니다.

놀라운 일이 벌어집니다. SBS 취재를 종합하면 방사청은 2019년 9월 9일 무기체계 제안서 평가 지침 중 제재 기관의 조건을 변경했습니다. "입찰 등록 마감일 전일 기준 최근 2년 이내 부정당업자 제재" 조항에 "부정당업자 제재 및 과징금 부과는 대한민국 정부기관으로부터 받은 모든 제재를 포함" 문구를 추가한 것입니다. 방사청은 변경된 지침에 의거해 "HD현중에 입찰 참가 제한 처분을 내린 한국전력을 정부기관이 아니"라고 해석했고, HD현중은 '0.8점 감점 삭제'라는 선물을 받았습니다.

'HD현중 특혜' 지침 변경 위해 시뮬레이션까지

한화오션의 KDDX 조감도

결과적으로 2020년 KDDX 기본설계 사업에서 HD현중은 대우조선해양을 0.0565 차이로 이겼습니다. 만약 방사청이 2019년 9월 9일 무기체계 제안서 평가 지침을 바꾸지 않고 HD현중에 0.8점의 감점을 줬다면 KDDX 기본설계는 대우조선해양, 즉 한화오션의 몫이었습니다. 문구 하나 덧붙이는 지침의 변경으로 KDDX 사업에 대격변이 일어난 것입니다.

방사청의 한 소식통은 "방사청이 지침을 변경했을 때와 안 했을 때 각각의 경우에 대해 HD현중과 대우조선해양의 상황을 대입해 시뮬레이션을 돌려봤다", "지침을 살짝 바꾸면 HD현중이 이긴다는 시뮬레이션 결론에 도달했다"고 밝혔습니다. 주도면밀하게, 또 이례적으로 시뮬레이션까지 한 다음 지침을 변경했고, HD현중에 살 길을 열어준 셈입니다. 방사청이 HD현중을 위해 무기체계 제안서 평가 지침 중 제재 기관 항목에 '대한민국 정부기관'을 삽입했다는 의심이 아니 생길 수 없습니다.

방사청의 이상한 행동은 더 있습니다. 방사청은 무기체계 제안서 평가 지침의 조항 변경 과정에서 정책심의위원회, 타기관 의견 조회도 거치지 않은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방사청 소식통은 "지침 변경은 정책심의위에서 토의해야 하는데 왕정홍 당시 방사청장이 전결로 처리하라고 했다", "별도의 감독 절차 없이 남몰래 지침을 변경한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HD현중의 유불리를 점검하는 시뮬레이션은 집어넣고, 필수적인 정책심의위와 타기관 의견 조회는 건너뛴 것입니다.

방사청은 이제 와서 "HD현중 뿐 아니라 대우조선해양도 함께 건의해서 지침을 바꿨다"고 해명합니다. 하지만 당시 대우조선해양은 HD현중의 공격적 인수합병전에 휘말려 발언권을 거의 잃은 상태였습니다. 그때나 지금이나 HD현중은 조선업계 최강이고, 가공할 대언론 영향력도 휘두르고 있습니다. 핑계와 해명 대신, 냉정하게 2019년 9월 9일 이전으로 시계를 되돌려볼 것을 방사청에 제안합니다. 그때의 부조리를 바로잡다 보면 방사청은 KDDX 상세설계 및 선도함 건조 사업 정상화의 길을 찾을 수 있을지도 모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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