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12월 29일 일요일 오전 9시. 조용하던 보도국에 일순간 긴장감이 돌더니 모두의 손길이 다급해졌습니다. "무안에서 여객기가 추락했대." 이곳저곳 확인을 시도했지만 소방 관계자들 대부분이 연락이 닿지 않을 만큼 상황은 급박했습니다. 탑승객 181명, 구조자 2명, 불길은 잡았다는 일부 확인된 사실들을 토대로 속보를 전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렇게 무안 소식을 전해온 지 벌써 2주째입니다. 불행히도 탑승객 181명 중 2명을 제외한 모두의 시간은 2024년 12월 29일 일요일 오전 9시 무안국제공항에서 멈춰버렸습니다. 최연소 희생자 세 살배기 가족들 발인을 끝으로 모든 희생자들은 영면에 들었습니다.
안타까운 참사 소식에 유족들을 돕기 위한 손길들이 이어졌습니다. 개인, 종교 단체 등에서 온 자원 봉사자들은 지금까지도 활동을 이어가고 있습니다. 무안공항 한편엔 물과 라면 등 생필품 등 물자들이 쌓여갔습니다. 자원 봉사자들이 운영하는 밥차는 일주일 넘게 운영됐습니다.
누군가는 공항을 돌며 청소를 했고, 누군가는 종일 '촬영 금지'라는 손피켓을 들고 빈소를 지켰습니다. 작은 도움이라도 보태겠다며 온 초등학생, 중고등학생들, 심지어 해외에서 입국한 이들도 볼 수 있었습니다.
참사 속 한 줄기 빛과 같았던, 무안공항으로 향했던 도움의 손길들을 전합니다.
해외에서부터 모여든 자원봉사자들
각자의 자리에서 일을 멈춘 이들의 작은 도움이 줄을 이었습니다. 아무래도 가장 빨리 활동을 시작한 건 지역 주민들이었습니다. 목포 출신 청각장애인 부부는 사고 당일부터 매일 커피와 유자차 등 300인분을 준비해 무안공항 현장에서 무료 나눔 봉사를 했습니다. 메뉴판 옆 '저희는 소리를 듣지 못합니다. 손짓으로 말씀해 주세요'라고 적힌 글자가 화제가 되기도 했습니다.
참사 다음날부터 일주일간 봉사한 고등학교 3학년 A 군, 홀로 경기 수원시에서부터 버스를 타고 4시간 반을 달려온 초등학교 5학년 남학생 B 군 등 어린 학생들도 볼 수 있었습니다. A 군은 "유족들이 굶으시는데 나라고 식사할 수 없다"라며 종일 공항 입구에서 피켓을 들고 조문객들을 안내하는 일을 도맡았다고 합니다. B 군도 쓰레기를 줍고 분리수거를 돕는 등 현장을 누볐습니다.
개인뿐 아니라 단체에서도 도움의 손길이 이어졌습니다. 천주교, 불교 등 종교단체부터 국립나주병원, 대한법률구조공단 등이 유가족과 재난구호요원 등의 심리회복을 도왔습니다. 기업 소속 사회봉사단 등이 무료 급식소를 차리거나 긴급 구호물품을 나누기도 했습니다.
"조국에서 벌어진 일을 외면할 수 없었다"며 재외국민이 봉사활동을 온 사례도 있습니다. 전남도 자원봉사센터 측은 미국에서 살고 있는 40대 부부가 귀국해, 8시간 동안 청소와 현장 정리 등을 도왔다고 밝혔습니다. 이렇게 무안군청이나 전남도청 등에 봉사활동을 문의하고 찾아온 이들은 참사 후 열흘 동안 5,509명에 이르는 것으로 집계됐습니다.
천장까지 쌓인 생수와 라면 박스
먼저 유족들이 머물 공간을 제공한 대한적십자사의 역할을 빼놓을 수 없겠습니다. 대한적십자사 광주전남지사는 사고 첫날부터 무안공항 플랫폼 1, 2층에 200여 개의 텐트를 설치했습니다. 유가족들은 이 텐트를 임시 거처 삼아, 희생자들의 시신 수습 소식을 기다렸습니다.
종교단체, 사회봉사단 등에서 마련한 밥차는 참사 후 일주일 넘게 운영되며 유가족과 자원봉사자들에게 따뜻한 식사를 제공했습니다. 새해 첫날, 한국여성농업인 무안군연합회 자원봉사자 20명이 떡국 3,500인분을 준비해 유족들과 사고 수습 중인 공항 직원, 소방대원, 경찰 등 관계자들에게 나눔 한 일도 있었습니다. 밥차 외에도 이 단체들은 생수와 빵, 김밥, 담요, 방한용품 등을 현장에서 무료로 나눠줬습니다.
개개인들의 손길도 이어졌습니다. 현장에서 만난 전남도 자원봉사센터 관계자는 "아침마다 택배 차량에서 온갖 물건을 내리기 바쁘다"라고 혀를 내둘렀습니다. 주로 오는 물건으로는 생필품부터 과일, 과자 등 주로 먹거리였습니다. 공항 내 카페에 커피를 선결제하는 문화도 화제를 모았습니다. 현장 관계자는 유가족과 봉사자들을 위한 선결제 커피 주문 수가 1,000잔을 훌쩍 넘겼다고 귀띔했습니다.
이밖에도 겨울용 패딩 200벌을 보내온 업체, 감귤 156 상자를 보내온 제주도의 한 영농조합법인, 냉동빵 79박스를 기부한 광명의 제과점 등도 있었습니다. 의료업계에서도 현장 치료 등을 지원한 서울시한의사회 등 따뜻한 손길들이 이어졌습니다.
참고로 이번에 모여 사용하지 못한 물품들은 유족 대표단의 논의를 거쳐 사회복지시설에 배부될 예정이라고 합니다. 참사의 아픔 속에서도 이 물품들은 또 다른 손길을 거쳐, 또 다른 위로가 될 준비를 마쳐가고 있습니다.
절망 속에서 목격한 연대의 힘
그러나 무안공항에서 목격한 우리 공동체의 유대 만큼은 그렇지 않았습니다. 도움의 손길을 내민 이들은 하나같이 "내가 당사자였다면" 하는 마음에 왔다고 입을 모았습니다. 끔찍한 참사 속에서도 잠시라도 대화를 하고, 식사를 하며, 서로의 존재는 위안이 되었습니다. 전국에서 모여든 도움의 손길이야말로 절망 속에서 빛났던 유일한 희망이었습니다.
안타까운 이번 참사가 우리에게 남긴 게 있다면 바로 이 유대 아닐까요. 자기 일을 제쳐두고 달려온 이들은 아직 우리 공동체가 살아있음을, 이른바 '회복 탄력성'이 여전히 높다는 사실을 보여줬습니다. IMF 외환위기 때 금 모으기 운동이 그랬고, 태안 앞바다를 뒤덮은 기름을 지우러 나섰던 수많은 사람들이 그랬으며, 세월호로 구조 활동을 나서던 민간 잠수사들의 마음이 그랬듯 말입니다.
그렇게 생각한다면, 참사로 떠난 이들의 영전에 바칠 위로가 하나 더 늘었다고, 우리 스스로를 위로할 수도 있을 겁니다. 개인적으로는 취재진에게도 김밥 한 줄 더 쥐어주며 "먹으면서 하라"던 자원봉사자분들께도 기사를 빌어 감사의 인사를 전합니다. 삼가 참사 희생자들의 명복을 빕니다.
댓글 아이콘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