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년 전 아기 엄마들 사이에서 인기를 끌었던 '물 빠짐 아기 욕조'라는 상품이 있었습니다. 플라스틱 욕조 바닥에 물 빠지는 구멍이 나 있어서 마개로 막았다 열었다 편리하게 쓸 수 있는 제품인데, 다이소에서 워낙 저렴하게 살 수 있어서 반응이 좋았습니다.
그런데 바로 그 마개가 문제였습니다. 물이 새지 않도록 밀착시켜야 했고, 이를 위해 플라스틱 마개가 고무와 비슷한 성질을 내도록 가소제라는 첨가 물질이 사용됐습니다. 프탈레이트라는 화학물질로 만든 가소제가 그겁니다.
프탈레이트라는 성분이 간 손상이나 생식 기능 저하를 유발할 수 있는 유해화학물질입니다. 이 때문에 어린이 제품, 전기전자 제품, 식품 용기 및 화장품류에서는 제품 내 함량을 일정치 이상 초과하지 않도록 허용치가 설정돼 있습니다. 그런데 이 아기 욕조의 경우 허용치의 612배를 초과한 걸로 나타났습니다. 지난 2020년 12월 국가기술표준원의 조사 결과입니다.
갓난아이를 깨끗이 씻기기 위한 욕조가 유해화학물질 범벅이란 사실이 알려지면서 부모들이 발칵 뒤집어졌습니다. 손해배상 소송은 물론 형사 기소까지 된 끝에 유죄가 선고됐고 손배 책임도 인정됐습니다.
사라지지 않는 '프탈레이트 범벅' 제품들
일상 주변에서 끊임없는 유해화학물질 노출, 과연 우리 몸속으로 들어와 쌓인 농도는 얼마나 될까요? 이를 위해서 정부가 직접 나서서 국민들의 혈액이나 소변에 쌓인 유해물질 농도를 정기적으로 조사하고 있습니다. 국민환경보건 기초조사라는 겁니다. 3세 이상 이상의 우리 국민이 조사 대상입니다. 조사 물질은 납, 수은, 카드뮴 등 중금속을 비롯해 프탈레이트류, 비스페놀류, 과불화화합물 등 모두 64종입니다.
3년씩 묶어서 한 기수로 조사하고 있고요. 지난 2021년~2023년까지가 제5기였는데, 이 조사 결과가 최근 발표됐습니다.
프탈레이트는 어땠을까요. 다행히 기수가 거듭될수록 농도치가 떨어지고 있습니다. 그런데 큰 문제가 있습니다. 특이하게도 연령대와는 반비례해서 영유아와 초등학생이 가장 농도치가 높고 그다음이 중고등학생, 가장 낮은 게 성인입니다.
성인의 소변에서 검출된 게 12.8㎍/L였는데, 영유아나 초등학생에게선 28.4㎍/L이 나왔습니다. 어른보다 2배 이상 더 많았습니다. 중고등학생도 17.0㎍/L으로, 성인보다 33% 더 많이 검출됐습니다.
어른보다 섭취·호흡률 2~3배 높아
또 하나 기억해야 할 점이 있습니다. 어린이는 몸집이 작지만 발육이 왕성하고 활동량이 많아 단위 체중당 음식 섭취량과 호흡률이 성인보다 2~3배 높다는 점입니다. 체중에 비해서 산소 요구도도 높고 식품이나 수분 섭취율도 높습니다.
다행히 500㎍/L으로 설정된 국제 기준(HBM, 독일 인체모니터링위원회의 권고치)에 비해서는 1/20 수준으로 낮기 때문에 당장 큰 걱정을 할 수준은 아니라는 설명도 있습니다. 하지만 전문가들은 수많은 프탈레이트 대사체 가운데 단 2종만을 조사 물질로 포함시켰기 때문에 규제에 따라 다른 물질로 대체되는 풍선효과를 감안하면 안심할 수 없다는 지적도 많습니다.
소변 내 카드뮴 농도, 전 연령대 증가세
(남은 이야기는 스프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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