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로저 로젠블라트는 여러 편의 소설과 회고록, 명상록을 쓴 작가다. 최근 저서로 "해변의 스타인웨이: 상처와 축복들"이 있다.
1843년 12월에 출간된 찰스 디킨스의 소설 '크리스마스 캐럴'은 해마다 크리스마스 시즌이 돌아오면 사랑받는 작품이다. 디킨스가 빈털터리일 때 돈을 벌기 위해 썼다고 알려진 이 단편 소설은 180년이 넘는 세월 동안 한 번도 절판된 적이 없고, 수십 차례에 걸쳐 알라스테어 심부터 더 머펫츠(The Muppets)에 이르는 스타를 기용한 영화와 연극, 뮤지컬, 드라마로 만들어졌다. 오늘날에도 누구나 크리스마스가 되면 스크루지와 크래칫 가족, 크래칫 가족의 막내 팀의 마지막 대사("하느님이 우리 모두를 축복하시길")를 떠올리곤 한다.
어떤 면에서 이 소설이 오랫동안 인기를 끄는 이유를 찾기란 그리 어렵지 않다. '크리스마스 캐럴'은 무엇보다 어느 시대에나 수요가 있는 유령 이야기다. 하지만 보다 흥미로운 점은 19세기를 배경으로 한 이야기가 주는 도덕적 교훈이 해가 갈수록 더욱 호소력을 높이며 현대의 독자들에게 어필한다는 사실이다.
이야기의 핵심에는 우리가 누구나 가슴속에 품고 있는 여러 가지 마음, 즉 탐욕과 관대함, 증오와 사랑, 후회와 용서가 자리하고 있다. 문학사상 가장 강렬한 캐릭터 가운데 하나인 에비니저 스크루지가 등장한다는 점도 당연히 도움이 된다.
스크루지라는 이름은 인간 혐오자의 대명사가 됐다. 그는 자기 직원들을 함부로 대하고 자신보다 못 가진 자들을 업신여기며 불우이웃돕기 성금을 걷는 이웃을 문전박대한다. 유일한 관심사라고는 재산을 불리는 것뿐이다.
이런 캐릭터가 오늘날까지 사람들에게 어필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그런 결점에도 불구하고 왜 우리는 스크루지의 구원을 바라게 될까? 내 생각에는 죄책감 때문이다. 스크루지가 우리에게 와닿는 이유는 여러 가지 면에서 우리가 스크루지와 별반 다를 게 없기 때문이다.
1980년 무렵, '최종 결산 결과(bottom line)'라는 표현이 성취의 기준으로 우리 문화 속에 자리 잡았다. 어느 정도는 우리 모두가 스크루지가 되었다는 의미다.
최근 대통령 선거를 떠올려보자. 선거운동에서 한 발짝 물러서서, 즉 그 모든 열정에서 건강한 거리를 유지하고 상황을 보면 공화당과 민주당 모두가 어떤 의미에서는 비슷한 이야기를 하고 있고 비슷한 공감대를 끌어내고 있다는 점을 알 수 있다.
도널드 트럼프의 질문을 가장한 주장은 이랬다. "4년 전보다 지금 살림살이가 나아졌습니까?" 1980년의 로널드 레이건을 연상시키는 수사다. 카멀라 해리스는 미국 중산층의 재정 상황 개선을 이야기하며 "나는 중산층의 아이로 자랐다"라고 말했다.
트럼프는 거칠고 때로는 잔혹하지만, 해리스는 대체로 품위 있는 모습을 보였기에 두 사람의 스타일은 정반대라고 할 수 있다. 하지만 두 후보 모두 본질적으로는 미국인들에게 똑같은 질문을 던진 셈이다. "당신의 물질적인 삶은 스스로 만족할 만한 수준입니까?"
정치가 늘 이랬던 것은 아니다.
1961년, 존 F. 케네디는 대통령 취임식에서 이렇게 말했다. "국가가 여러분을 위해 무엇을 해줄 수 있는지 묻지 마십시오. 여러분이 국가를 위해 무엇을 할 수 있는지 물어보십시오." 조지 H. W. 부시의 1989년 대선 운동 슬로건은 '따뜻한 보수주의(compassionate conservatism)'이었다. 두 대통령 모두 개인의 만족과 국가적 번영이 우리가 타인을 위해 무엇을 하려 할 때 가능하다는 점을 시사했다.
누구나 편협함과 이기심, 탐욕에 빠질 수 있다. 물질적 풍요에 관심을 끊고 수도승처럼 살 수 있는 사람은 거의 없다. 하지만 대단한 관대함과 이타심을 발휘할 능력 역시 누구에게나 있다. 디킨스는 이 점을 이해하고 있었다. '크리스마스 캐럴'의 고요한 천재성이 빛을 발한 것도 바로 우리의 도덕적 양심을 드높이는 것의 이점을 보여주었기 때문이다.
물론 소설 속 스크루지는 자신의 행동이 어떤 결과를 초래할지와 더 나은 길로 나아갈 수 있는 가능성을 보여주는 과거, 현재, 미래의 크리스마스 유령이라는 세 영혼의 방문을 받는다. 그는 허물이 많고 이기적인 인물이지만 자신이 본 것을 통해 마음이 움직이게 되고, 회개하여 친절하고 인정 있는 인물로 거듭난다.
하룻밤의 공포와 짧은 설교 세 번으로 구원이 비교적 쉽게 이루어진다는 이야기만큼이나 죄 많은 독자(즉, 우리 모두)를 만족시키는 이야기는 없을 것이다. 우리는 회개하는 스크루지를 보며 생각한다. "저것이 곧 나구나! 앞으로는 다르게, 보다 명예롭게 살 것이다. 달라질 것이다."
(남은 이야기는 스프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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