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렌드를 알면 오늘을 이해하고 내일을 예측할 수 있습니다. 요즘 내가 놓치고 있는 흐름이 있는지, 지금 세상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궁금한 사람이라면 '트렌드 언박싱'.
올해 4월, 필자는 미국 캘리포니아 산타클라라에 위치한 NVIDIA의 본사, Voyager 빌딩을 방문할 기회가 있었다. 빌딩 곳곳을 안내하던 내부 임원은 2022년에 완공된 이 빌딩이 설계 단계에서부터 "디지털 트윈(digital twins)" 기술을 활용해 건물 설계를 최적화했다고 설명했다. 즉, 극한의 날씨나 자연재해가 건물에 미칠 영향, 자연광이 에너지 효율과 공기 순환에 미치는 영향, 건축 구조가 직원들의 공간 활용도에 미치는 영향 등을 가상으로 시뮬레이션하여 잠재적인 문제를 사전에 파악하고 최적의 건물 구조와 설계로 건물을 완성한 것이다.
이 혁신적인 디지털 트윈 기술의 정체는 무엇이며, 비즈니스 환경을 포함한 사회 전반에 어떤 변화를 가져올 수 있을까?
디지털 트윈: 물리적 세계를 가상 세계로 Ctrl+C, Ctrl+V
즉, 디지털 트윈은 물리적 세계의 변화에 실시간으로 반응하는 동적 모델로서 해당 기술의 핵심은 현실과 가상 세계의 '연결성'에 있다. 즉, 현실에서 발생할 수 있는 상황을 가상의 공간에서 시뮬레이션함으로써 결과를 미리 예측하는 기술이 주축을 이룬다.
비즈니스 의사결정의 효율성 높이는 디지털 트윈
제조업의 경우, 디지털 트윈의 도입은 생산 공정의 효율성을 극대화할 뿐 아니라, 생산 환경에서 발생할 수 있는 여러 예측 불가능한 상황에 대한 대응을 가능케 한다. 가령, BMW의 경우 2025년부터 헝가리 데브레첸 (Debrecen)에서 생산 과정에서 화석연료를 일절 사용하지 않는 전기차 공장 (BMW iFactory)을 가동할 예정인데, 해당 공장을 가동하기 2년 전부터 공장의 디지털 트윈을 구축하였다.
아직 완공되지 않은 공장의 가상 공간에서 여러 가지 물류 시스템, 로봇, 기계, 생산 라인 등을 완벽히 구현하고 가상의 시나리오를 시뮬레이션함으로써, 로봇과 작업자의 동선, 설비 배치, 자재 흐름 등을 최적화한다. 뿐만 아니라, 예상치 못했던 화재나 물류 사고, 기계 오작동 등에 대한 시나리오를 디지털 트윈 내에서 학습시킴으로써 실제로 공장 내에서 예기치 못한 상황이 일어나더라도 빠르고 효과적인 의사결정을 내릴 수 있다.
리테일 환경에서도 디지털 트윈 기술은 고객 경험(CX)을 극대화하고 효율적 매장 운영을 가능케 하는 도구로 자리 잡고 있다. IKEA는 3D 기술을 활용하여 개별 제품 단위의 디지털 트윈을 생성하고, 증강현실(Augmented Rality, AR)을 통해 소비자들이 이를 실제 환경에 오버레이할 수 있게 하는 기능을 브랜드 애플리케이션에 일찍이 탑재하였다. 이는 IKEA로 하여금 구매 전환율의 증가와 제품 반품률의 감소라는 성과를 이루게 하는 동력이 되었다.
가구와 같은 고관여 제품의 경우, 소비자들이 구매와 관련하여 인지된 위험(perceived risk; e.g., 재무적 위험, 기능적 위험, 사회적 위험 등)을 크게 느끼는 경향이 있는데, 실제 제품과 동일한 디지털 트윈과 상호작용할 수 있는 경험은 구매로부터 기인하는 소비자들의 불확실성을 현저히 감소시킬 수 있다.
소비자들은 쇼핑을 가기 전 심적 회계 과정(mental accounting)을 통해 쇼핑 예산을 결정하기도 하고, 어떠한 제품이나 브랜드를 구매할지 계획한다. 하지만, 실제 리테일 매장에서 구매 의사결정의 1/3 이상은 매장 내 디스플레이, 제품 위치, 매장 내 동선, 프로모션 등 매장 내의 요인들에 의해 영향을 받는다. 이러한 점에 주목하여, 미국 월마트의 경우, 디지털 트윈 기술을 활용하여 다양한 매장 레이아웃, 제품 디스플레이, 통로 배치 등의 요인들이 매장 내 혼잡도, 소비자의 동선 및 소비자 구매 행동에 미치는 영향을 시뮬레이션한다. 소비자들이 더욱 편리하게 쇼핑을 할 수 있는 매장 환경을 조성하는 것이다.
이에 그치지 않고, 월마트는 시뮬레이션을 통한 요일별, 시즌별 재고 수준을 예측하고, 이를 통해 제품 가용성을 향상시켜 고객 만족도 역시 증가시키고 있다. 제품 간 기능 차이가 점차 감소하고 있는 오늘날의 B2C 비즈니스 환경에서, 소비자와 상호작용하는 접점을 맞춤화할 수 있게 하는 디지털 트윈 기술은 차별화된 고객 경험을 창출하며 게임 체인저로서의 저력을 보여주고 있다.
디지털 트윈 혁신, 대기업의 전유물 될까
하지만, 늘 그렇듯 이러한 혁신적 기술의 도입은 높은 기술적 장벽과 초기 투자 비용으로 인해 대기업의 전유물처럼 느껴지는 경향이 있다. 실제로 디지털 트윈을 구축할 수 있는 플랫폼인 Omniverse의 경우에도 BMW, 벤츠 등 세계적인 브랜드들이 먼저 도입했다. 이러한 글로벌 대기업들은 디지털 트윈 기술을 통해 생산 공정과 재고 관리의 효율성을 극대화하고, 고객 경험을 개선하며, 비즈니스를 한 단계 더 성장시킬 기회를 얻고 있다.
이러한 점에서, 디지털 트윈과 같은 혁신적 기술이 대기업과 중소기업(SMEs) 간의 격차를 더욱 심화시키는 것이 아니냐는 우려의 목소리가 존재한다. 그러나 어렵고 멀게만 느껴졌던 AI 기술이 오늘날 개개인 소비자들조차 일상에서 쉽게 활용하는 기술로 자리 잡았듯, 디지털 트윈 기술 역시 기술 확산의 전환점(tipping point)을 맞이한다면 특정 기업이나 산업에만 국한되지 않고 다양한 산업과 기업 전반에서 혁신의 도구로 자리 잡을 가능성이 크다.
최근 국내 여러 디지털 트윈 플랫폼 기업들이 시리즈 시리즈 B, 시리즈 C 등 투자 유치에 연이어 성공했다는 소식은 반가운 신호다. 이는 디지털 트윈 기술이 점차 대기업의 전유물에서 벗어나, 보다 폭넓은 기업들과 다양한 산업군으로 확산될 가능성을 시사한다. 디지털 트윈 기술이 중소기업에게도 혁신과 성장의 기회를 제공할 수 있는 새로운 시대가 열릴 수 있기를 기대해 본다.
디지털 트윈: 사회 문제 해결과 지속 가능한 미래의 열쇠
NVIDIA는 지난 3월 지구의 디지털 트윈을 구현한 AI 기반 기후 예측 플랫폼 Earth-2를 공개했다. 해당 플랫폼은 지구 환경을 가상 세계에 재현하여 날씨 데이터를 기반으로 기후변화를 정밀하게 시뮬레이션함으로써 자연재해를 예측하고 대응할 수 있도록 설계되었다.
가령, Earth-2는 태풍의 경로와 상륙 시점을 세밀하게 예측할 뿐만 아니라, 태풍이 도시 내에서 건물 사이로 이동할 때의 바람 흐름까지 분석하여 태풍이 보행자와 차량에 미칠 영향까지 시뮬레이션한다. 이를 통해 해당 지역의 인명 피해와 재산 손실을 최소화할 수 있도록 돕는 것이다. 지난 25년간 130개 이상의 태풍이 상륙했던 대만에서는 중앙기상국이 Earth-2를 도입하여 태풍으로 인한 피해를 줄이고, 기후변화에 효과적으로 대응하기 위한 전략 수립에 활용하고 있다.
(남은 이야기는 스프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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