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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5년 전 '서울의 봄'…꼭 닮은 '서울의 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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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5년 전 서울의 봄…꼭 닮은 서울의 밤
<앵커>

45년 전 오늘(12일)은 전두환, 노태우가 주축이 된 신군부 세력이 12·12 군사 반란을 일으킨 날입니다. 유신 체제가 무너진 뒤 민주화에 대한 열망이 높아졌던 이른바 '서울의 봄'은 이듬해 5월 17일 신군부의 비상계엄 확대 선포로 짓밟혔는데요. 지난 3일 밤, 윤석열 대통령의 비상계엄 선포는 여러모로 12·12 군사 반란과 닮았다는 평가를 받습니다.

'서울의 봄'에 빗대 '서울의 밤'이라는 말까지 나왔는데, 이혜미 기자가 비교해 봤습니다.

<기자>

대한민국 시계를 45년 전으로 되돌려놓은 12·3 비상계엄 사태.

전두환 등 신군부가 군부, 나아가 정권을 장악하려 반란을 일으킨 반면, 윤석열 대통령은 국회 무력화를 시도했다는 점에서 차이는 있지만 무장한 계엄군을 동원한 사실은 같습니다.

○ 포고령 1호 vs 10호

윤 대통령의 계엄 선포 뒤 계엄사령관 명의로 발표된 포고령 1호는 정당 활동과 일체의 정치 활동을 금지하고, 언론과 출판을 통제한다는 내용 등을 담았습니다.

1980년 5월 17일 신군부가 비상계엄 확대 직후 내린, 정치 집회와 언론, 출판·보도 등의 사전 검열을 적시한 포고령 10호와 내용이 흡사합니다.

김용현 전 국방장관은 계엄 포고령 초안을 작성하면서 신군부의 포고령을 참고했다고 진술한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 충암파 vs 하나회

이번 비상계엄은 윤 대통령의 모교, 충암고 출신 인사들이 주도했습니다.

계엄 선포를 건의한 김용현 전 장관은 윤 대통령의 고교 선배, 경찰을 관할하는 이상민 전 행정안전부 장관과 선관위 등에 병력을 보낸 여인형 방첩사령관은 윤 대통령의 고교 후배입니다.

12·12 군사 반란은 군내 육사출신 사조직 하나회가 중심이 됐는데, 특정 인맥을 중심으로 군을 움직였다는 점에서 유사합니다.

특수전사령부 예하 부대가 출동한 것도 45년 전과 같습니다.

하지만 이번에는 현장에 투입된 계엄군의 대응이 소극적이었고 한국 사회의 민주주의와 시민 의식은 한층 성숙 돼있었습니다.

[박원호/서울대 정치외교학부 교수 : 시위하는 젊은 MZ 세대들뿐만 아니라 국회에 투입됐던 젊은 군인들도 사실 마찬가지고 이건 이분들이 상상할 수 있는 영역을 이미 벗어난 거였다는 점에서 실패가 예정돼 있었던 게 아닌가 (생각합니다.)]

지난 3일 '서울의 밤'이 40여 년 전 '서울의 봄'과 다른 결과를 만들어낼 수 있었던 이유입니다.

(영상편집 : 이소영, CG : 최재영·이소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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