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주류란 이유로, 마이크를 가지지 못했던 사람들의 스피커가 되는 저널리즘.
"공익신고자가 왜 싸워야 합니까?"
지난달 28일, 전직 보험설계사 송 모 씨는 국회 기자회견장에 섰습니다.
"그냥 모르는 척했으면 좋았을까요? 믿고 있었던 국가기관에서는 왜 아무것도 하지 않았고, 저는 왜 공익신고 후 사회생활을 하지 못하고 피해를 봐야 하는 건가요?"
송 씨에게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요? 송 씨는 지난 2020년 5월, 국내 굴지의 보험대리점인 ㈜글로벌금융판매를 금융감독원에 신고했습니다. 이 보험대리점은 송 씨가 몇 년간 일했던 곳입니다. 재직 기간 목격해 왔던 보험 대납 사기와 탈세 행위들을 용기 내서 공익신고 한 겁니다.
신고 내용은 이렇습니다. 보험대리점이 고객들과 이면 계약서를 작성해 가며 삼성생명이나 현대해상 같은 원수보험사로부터 거액의 수수료를 빼돌리고 있다는 게 골자입니다. 좀 더 설명하자면, 이들은 기업 고객들과 '3년만 계약을 유지하고 중도 해지한다'는 이면 계약서를 작성합니다. '이렇게 되면 고객 손해 아닌가?' 싶은데, 보험대리점이 해약 위약금까지 내줍니다. 여기에 더해 일정 기간 보험금도 대납해 준다고 합니다.
보험대리점이 왜 그러는지 이해가 안 가는 행동인데, 보험업계 사람들이라면 수긍이 간다고 합니다. 왜일까요? 이렇게까지 보험대리점이 대납을 해줘도, 보험사로부터 받는 계약 성공 수수료가 훨씬 더 크기 때문입니다. 그 금액이 월 보험료의 20배가 넘기도 합니다. 결국 보험료를 대납해도 남는 장사를 하게 되는 구조인데, 계약 당사자들은 모두 이득이기 때문에 함구하는 상황이었습니다.
송 씨는 보험대리점 대표로부터 이런 수법으로 영업해 보라는 지시를 받았습니다. 실제로 계약을 진행하기도 했습니다. 그러던 중 불법 행위를 계속할 수 없단 생각에 이면 계약서 등 자료를 수집해 금감원에 신고하게 됐습니다.
이때부터 송 씨의 인생은 꼬이기 시작했습니다. 신고를 하면 그릇된 일이 올바르게 고쳐질 줄 알았는데 아니었습니다. 신고를 접수한 금감원은 "인력이 부족하다", "언젠가는 조사할 거니 기다려달라. 언제가 될지는 알 수가 없다"며 계속 기다려 달라며 제대로 조치를 취하지 않았습니다. 답답한 마음에 송 씨는 그해 12월 국민권익위원회에도 신고를 넣었습니다. 사건을 다시 이첩받은 금감원은 입증 자료가 부족하다며 조사를 종결했습니다. 송 씨는 여러 증거들을 보강해 금감원과 권익위, 감사원 문을 여러 차례 두드렸지만 기다림은 끝이 없었습니다.
아니나 다를까, 그사이 송 씨는 피의자 신분이 됐습니다. 2022년 3월, 보험대리점 본사로부터 보복 고소를 당한 겁니다. 송 씨가 보험료 대납 사기 행위에 가담했고, 거기에 송 씨의 가족 계좌도 쓰였다며 보험업법 위반 행위를 저질렀단 내용이었습니다. 송 씨는 "자신들이 대외비로 저질러왔던 불법 행위들을 외부에 신고하니까 꼬리 자르기를 하려고 했던 것 같다"고 토로했습니다. 본사에서는 주동자인 대리점 대표는 제쳐두고, '눈엣가시'인 송 씨를 내치기 바빴습니다. 송 씨는 이때까지만 해도 '그래도 신고를 해놨으니 진짜 주범들의 혐의를 잘 밝혀주겠지'라며 국가기관을 믿었다고 합니다. 하지만 사건은 이상하게만 흘러갔습니다.
다섯 달 뒤, 서울경찰청 금융범죄수사대에서 송 씨가 공익신고한 사건에 대한 수사에 착수했습니다. 그러나 여기에 송 씨도 공범으로 입건됐습니다. 대표의 지시에 따랐던 게 문제가 된 겁니다. 졸지에 송 씨는 자신이 공익신고한 사건과 역고소당한 사건, 이렇게 같은 내용으로 총 2건을 수사받게 됐습니다.
그러다 올해 1월, 송 씨는 견디다 못해 SBS에 제보를 해왔습니다. 검찰이 송 씨만 기소를 한 겁니다. 송 씨가 보험대리점을 공익신고 한 사건은 담당 검사가 3차례나 바뀌며 10개월째 수사에 진전이 없었고, 보복 고소 사건만 재빠르게 수사해 재판장에 혼자 서게 됐습니다. SBS는 검찰이 같은 사건을 병합 처리도 하지 않고, 공익신고자를 보호하지 않는 문제를 지적하는 보도를 했습니다. 불행 중 다행일까요, 보도 후 한 달 정도 지났을 때 공익신고 사건도 바로 기소되면서 보험대리점 대표도 함께 재판을 받게 됐습니다.
보복 소송당했는데... 권익위는 공익신고자 보호 조치 기각
"그냥 모르는 척했으면 좋았을까요? 보험사의 눈먼 사업비를 윗선에서 현금으로 가져가고 호의호식하는 걸 알고 있으면서요?"
- 전직 보험설계사 송 모 씨
결과적으로 송 씨의 제보는 틀리지 않았습니다. 보험 대납 사기 실체가 드러났습니다. 올해 6월, 금감원도 뒤늦게 보험대리점의 대납 행위 등을 적발했다며 어떤 조치를 내릴지 논의 중에 있다고 밝혔습니다. 송 씨가 금감원에 첫 공익신고를 한 지 무려 4년 만입니다. 그러나 그사이 송 씨는 몸도 마음도 많이 망가져 있었습니다. 불법 행위를 세상에 알리려 했는데 국가기관은 도와주지를 않았고, 그사이에 역고소를 당하며 혼자 보험대리점과 싸워야 했습니다. 또 업계 비밀을 폭로했다는 이유로 업계에서 퇴출까지 당하며 경제적인 어려움까지 찾아왔습니다.
송 씨는 검찰 수사를 받으면서, 어쩌면 정말 '버림받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에 미쳤습니다. 지푸라기 잡는 심정으로 송 씨는 국민권익위원회에 공익신고자 보호 조치(책임 감면)를 요청했습니다. 공익신고자 보호 조치는 부정부패 등을 신고한 사람이 불이익을 받지 않도록 신변 보호를 하고, 형벌이나 징계 등 불리한 행정 처분을 감경해 주는 제도입니다.
하지만 올해 9월, 권익위는 책임 감면 신청을 기각했습니다. 사기 행위는 공익신고자보호법상 불이익 조치에 해당하지 않는다는 이유였습니다. 송 씨가 받는 혐의는 보험업법 위반과 사기였는데, 형법상 사기는 현행법상 책임 감면을 시켜줄 수 있는 대상이 아니라는 설명이었습니다. 보험업법 위반은 감면 대상이 맞지만, 수사가 늦어지면서 공소시효도 만료된 상황이었습니다.
송 씨는 허탈함을 감출 수 없었습니다. 송 씨의 법률 대리인 박은선 변호사는 "권익위 결정은 말이 안 되는 판단"이라고 지적했습니다. 박은선 변호사는 "공익신고자가 통상적으로 보복 고소를 당하는 경우는 업무방해죄, 명예훼손죄 등으로 모두 형법상 범죄다"라며 "보복 고소된 범죄가 공익신고자보호법상 공익 침해 행위 대상 법률에 해당하는 행위가 아니라는 이유로 공익신고자를 보호하지 않는다는 건 제도에 구멍이 있는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실제로 현행 공익신고자 보호 제도에 대해서 개선이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일각에서 나오고 있습니다. 참여연대와 더불어민주당 을지로위원회는 지난 9월 '공익신고자 대상 보복 소송, 이대로 괜찮은가'라는 주제로 토론회를 열었습니다. 박상현 의원은 "보복적 형사 고소가 부패방지법상 불이익 조치로 들어가 있지 않기 때문에 보복적 조치가 일상적으로 이뤄지고 있다"고 지적했습니다. 또 민병덕 의원실 자료에 따르면, 최근 5년간 공익신고 보호 신청 사건 접수 건수는 늘어나는 추세지만, 인용률은 66%에서 21%로 3분의 1토막이 난 상황입니다.
사실 오랜 시간 걸쳐서 진행되는 보복 소송은 공익제보자를 정신적, 경제적으로 가장 고통스럽게 하는 불이익 조치 중 하나입니다. 이런 상황에서 공익신고자 보호의 방법도 다변화될 필요성이 있어 보입니다.
"당신이 사회를 지킬 때 법은 당신을 지킵니다. 안심하고 신고하세요!"
지난 10월 국정감사에서 송 씨에게 사과할 용의가 있는지 공개 질의가 나왔습니다. 민병덕 의원은 이복현 금감원장과 차수환 전 생명보험 검사국 국장에게 "감사원의 지시로 금감원이 결국 보험대리점 보험업법 위반 혐의를 밝혀냈지만, 4년 동안 송 씨의 삶은 망가졌다"며 "또 결국 보험대리점 대표는 보험업법 위반 혐의가 공소시효 5년을 도과해서 처벌할 수 없게 됐다"며 사과할 용의가 있는지 물었습니다. 이복현 원장은 이에 "생명보험협회 조사 문제 등 다양한 지점이 있어서 검토해 보겠다"고 답했습니다.
(남은 이야기는 스프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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