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에는 없지만, 한국인에게 필요한 뉴스"를 엄선해 전하는 외신 큐레이션 매체 '뉴스페퍼민트'입니다. 뉴스페퍼민트는 스프에서 뉴욕타임스 칼럼을 번역하고, 그 배경과 맥락에 관한 자세한 해설을 함께 제공합니다. 그동안 미국을 비롯해 한국 밖의 사건, 소식, 논의를 열심히 읽고 풀어 전달해 온 경험을 살려, 먼 곳에서 일어난 일이라도 쉽고 재밌게 읽을 수 있도록 부지런히 글을 쓰겠습니다. (글 : 송인근 뉴스페퍼민트 편집장)
트럼프 전 대통령이 다시 백악관으로 갑니다. 글을 쓰는 현재 트럼프 대통령은 선거인단 295명을 확보해 당선을 확정했습니다. 주요 경합주 7개 가운데 5개에서 승리를 확정했고, 개표가 진행 중인 애리조나와 네바다도 근소한 차이지만, 승리할 것으로 보입니다. 무엇보다 4년 전 바이든 대통령에게 전체 득표에서 700만 표 이상 뒤졌는데, 이번에는 해리스 부통령에게 전체 득표에서도 500만 표 이상 앞섰습니다.
미국 초대 워싱턴 대통령이 취임한 게 235년 전인 1789년의 일입니다. 그때부터 대통령 임기는 4년이었으니까 계산해 보면 58명의 대통령이 있어야 하는데, 트럼프는 이번 당선으로 47대 대통령이 됐습니다. 정확히 말하면 45대이자 47대 대통령입니다.
4년 중임제로 연임이 가능한 미국에서는 대통령 앞에 숫자를 붙일 때 연임한 대통령은 한 번으로 칩니다. 예를 들어 가장 최근에 연임해 8년 임기를 채운 오바마는 44대 대통령입니다. 4년 임기를 두 번 따로 마친 대통령은 미국 역사에서 트럼프가 처음이 아닙니다. 그로버 클리블랜드 대통령이 있었습니다. 다만 22대와 24대 대통령이었던 클리블랜드의 임기는 19세기 말(1885~1889, 1893~1897)로 한참 전입니다.
해리스 부통령은 6일 패배를 시인하고, 트럼프 당선자에게 축하 전화를 걸었다고 발표했습니다. 지지자들에게 자신의 이상을 위해, 우리가 목표하는 것을 위해 포기하지 말고 싸워 나가자고 독려하면서도 선거 결과를 받아들이는 건 민주주의의 원칙을 지키는 시민의 책무라고 강조했습니다. 2021년 1월 6일, 당시 부통령이던 마이크 펜스는 선거 결과를 추인했다가 의사당을 습격한 트럼프 지지자들로부터 살해 위협을 받았지만, 이번에 해리스 부통령은 그럴 걱정은 하지 않아도 될 것 같습니다.
트럼프의 승리, 해리스의 패배를 설명하는 분석 기사와 칼럼이 쏟아져 나오고 있습니다. 오늘은 우선 모던 에이지의 편집자 다니엘 매카시가 쓴 칼럼을 번역했습니다.
트럼프의 정치를 민주당은 물론 냉전 종식 후 부시와 체니로 대변되는 전통적인 공화당과도 거리를 둔 "대안 정치"이자, 경제학에서 말하는 "창조적 파괴"에 빗대 설명한 매카시는 공화당의 유력 정치인들이 해리스를 지지했음에도 공화당 지지자들이 해리스 대신 트럼프에게 투표한 데 주목합니다.
실제로 트럼프가 선거인단 과반을 확보한 경로만 놓고 보면 2016년과 닮았지만, 2016년의 공화당과 지금의 공화당은 꽤 다릅니다. 지금의 공화당은 트럼프가 2020년 선거에서 바이든한테 진 걸 인정하지 않는 트럼프를 두둔한 이들만 남은, 사실상 트럼프에 충성하는 이들로만 채워진, 트럼프의 정당입니다. 이번에 투표한 유권자들 가운데 민주주의를 중요한 기준으로 삼고 투표했다고 한 유권자가 적지 않았지만, 마가의 기세를 꺾지 못했죠.
리즈 체니 전 의원은 트럼프 전 대통령이 선거 결과에 불복하고 1월 6일 의사당 테러를 방조 내지 부추긴 혐의로 하원이 임기가 열흘 남짓 남은 트럼프 대통령을 탄핵했을 때 여기에 찬성표를 던진 공화당 의원 7명 중 한 명이었습니다. 이 일로 트럼프의 미움을 사고 트럼프가 말하는 "내부의 적"이 됐죠. 체니 전 의원의 아버지인 딕 체니 전 부통령도 포함입니다. 해리스 캠프는 선거 중에 체니 부녀를 비롯해 무려 200명 넘는 공화당 소속 정치인의 지지를 받았다는 사실을 적극적으로 광고했습니다. 외연을 확장하며 트럼프를 궁지로 몰아넣는 것처럼 보였습니다.
하지만 위의 지도나 선거 결과를 보면 알 수 있듯이 지지 세력의 외연을 확장한 건 해리스와 민주당이 아니라 트럼프의 공화당이었습니다. 심지어 전통적인 공화당 세력의 상당수가 떨어져 나갔지만, 타격은커녕 더 다양한 유권자로부터 더 많은 지지를 받았습니다.
경합주인 애리조나주가 대표적입니다. 유권자 지형의 대전환(great realignment)이 올 수도 있다는 분석을 소개한 글에서 트럼프의 강성 지지자인 캐리 레이크 상원 후보가 고(故) 존 매케인 의원을 지지하는 온건 성향 공화당원을 원색적으로 비난했다는 점을 이야기했습니다. 이른바 '매케인 공화당원'이 대거 해리스와 민주당 지지로 돌아설 것으로 예상됐지만, 개표가 약 70% 진행된 현재 트럼프는 해리스에게 5% P 차이로 앞서서 이변이 없는 한 애리조나도 승리할 것으로 보이고, 레이크 후보도 완패할 거란 예상을 뒤엎고 민주당 후보 루벤 가예고에게 2% P 뒤져 있습니다.
트럼프 2.0, 마가 운동이 지지 세력의 외연을 확장하는 데 성공한 요인은 여러 가지를 꼽을 수 있습니다. 매카시의 분석대로 양대 정당이 모두 해결책을 제시하지 못하자, 기득권 정치에 염증을 느낀 유권자들이 트럼프를 대안으로 여겼다고 볼 수 있습니다. 기록적인 인플레이션 때문에 여당을 심판하는 정서가 강했는데, 해리스가 바이든과 충분히 거리를 두지 못했다는 분석도 있습니다.
특히 인종이나 성별, 세대를 기준으로 정치 성향을 분류, 분석하는 이른바 정체성 정치(identity politics) 분석에서 라티노, 흑인 젊은 남성 사이에서 트럼프 지지가 늘어난 데 주목하는 사람이 많은데, 여기서도 숨은 요인이 경제라는 사실을 간과하면 안 됩니다. 선거인단 싸움에서 결정적인 역할을 한 경합주 안에서 집값이 치솟아 경제적으로 큰 타격을 입은 서민이 누구였는지 살펴보면, 유색인종의 비중이 높습니다. 이는 얼마 전 브렛 스티븐스가 칼럼에서 지적한 내용이기도 합니다.
다시 돌아온 트럼프 시대
- 이민과 국경, 치안
- 사법부 장악과 정적 처단
예를 들어 백악관 기밀문서 유출이나 1월 6일 의사당 테러 관련 연루 혐의를 조사해 기소한 잭 스미스 특별검사는 바이든 대통령이 임명한 메릭 갈랜드 법무장관이 임명했는데, 트럼프가 임명하는 법무장관의 첫 번째 임무가 스미스 특검을 해임하는 일이 될 겁니다.
(남은 이야기는 스프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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