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 권의 책을 읽고, 만 리 길을 가라(讀萬卷書, 行萬里路)'고 하였던가? 장자(莊子)의 큰 새(鵬)는 아홉 개의 만 리(萬里)를 날아올랐다. 시성(詩聖) 두보(杜甫)가 가장 많이 쓴 두 자(字) 시어(詩語)는 '만 리(萬里)'였다. 만 리 길은 무한한 상상(想像)의 영역인 동시에 현실이자 생활이었다. 20여 년간 중국 땅 위에서 일하고 살면서 시간과 공간의 들어가고 나옴 중에서 마주했던 같음과 다름을 지역과 사람, 문화로 쪼개고 다듬어 '종횡만리, 성시인문(縱橫萬里 城市人文)'이라는 이름으로 함께 나누고자 한다.
지난 10월 초 중국 구이저우성(貴州省)에 있는 인구 1천 명의 한 작은 마을이 농구 열기로 전 중국 대륙의 이목을 집중시켰다. 이름하여 '동네판 엔비에이(NBA)', 중국어로는 '춘비에이(村BA)'라고 부른다. 중국에서 인기가 높은 미국 프로농구 리그 NBA와 중국 프로 리그 CBA(中國職業籃球聯賽)에서 BA를 따오고 그 앞에 마을 촌(村-춘) 자를 붙인 이름이다. 중국에서는 축구(蹴球)를 족구(足球-주치우)로, 농구(籠球)를 '남구(籃球-란치우)'라고 부른다. 남구는 말 그대로 바구니인 바스(basket-籃)에 볼(ball-球) 넣는 게임이다.
구이저우성 타이장(台江)현 타이판(台盤)촌 야외 특설 농구 경기장에서 10월 4일 저녁 개최된 2024년 전국 '춘비에이(村BA)' 최종 결승전에서 산둥 대표팀(山東匯東)이 간쑤 대표팀(甘肅臨夏)을 101대 71로 물리치고 대망의 우승을 차지했다. 하이난(海南), 허베이(河北), 지린(吉林) 등 동서남북 각지 19개 성의 20개 팀들이 한 달여에 걸친 지역별 예선전을 치르고 타이판에서의 결선에서 맞붙은 결과이다.
경기가 열린 타이판촌(台盤村)은 272가구, 인구 1,186명의 마을로 대다수인 92%의 주민이 먀오(苗)족이며, 1936년 이래 90년 가까이 매년 동네 농구대회를 개최해 온 전통이 있다. 동네 농구대회는 먀오족 등 소수민족의 전통 명절인 '츠신제(吃新節)'에 개최되는데, 이 명절날에는 중국의 전통 명절 중추절(仲秋節)과 유사하게 가을 추수 시기에 마을 사람들이 모여 새로 수확한 음식을 먹고 춤과 노래, 단체 체육행사를 하면서 즐기게 되며, 음력 7월 7일이자 먀오족의 민족 달력으로는 6월 6일(六月六)에 개최된다고 한다.
동네 축구대회 '춘차오(村超)'로 유명해진 구이저우 롱장(榕江)현과는 약 100킬로미터 거리에 있다.
구이저우의 이 작은 마을 농구 경기가 유명해진 것은 수십 년 넘게 매년 한 번씩 개최되어 오던 동네판 시합이 2022년 인터넷으로 중계되면서다. 10대부터 40대까지의 시골 동네 총각과 옆집 아저씨들로 구성된 선수들의 플레이가 예상을 뛰어넘어 진솔하면서도 박진감 있게 진행되자 이것이 큰 인기를 끌었기 때문이다.
유명세를 타고 다음 해인 2023년 3월에는 경기 규모가 전체 성(省) 규모로 확대되어 '제1회 구이저우성 아름다운 향촌 농구 리그전(首屆貴州省美麗鄕村籃球聯賽)'이라는 명칭으로 타이장(台江)에서 개최된다. 곧이어 전국적 관심으로 중앙정부인 농업농촌부(農業農村部), 국가체육총국(國家體育總局), 중국농구협회(中國籃球協會) 등이 나서 전국 규모의 동네 농구대회 '춘비에이'를 탄생시키고, 전국 8개 지역 16개 팀, 500명의 선수들이 참여하는 예선전이 치러졌다. 결선이 개최되자 1천 명 인구의 시골 지역에 2만 명의 관람객들이 몰려들었다.
이렇게 되자 모바일 숏폼과 라이브 전문 플랫폼인 콰이쇼우(快手)가 발 빠르게 나서 2023년부터 구이저우 안순(貴州安順), 닝샤 중웨이(寧夏中衛), 광둥 둥관(廣東東莞) 등 전국 곳곳의 동네 농구를 찾아 공동 주최하고 중계하게 되었다. 게임에 등장하는 지역별 선수들은 시골의 농민이나 학생들이고, 장소는 화려한 조명을 받는 전문 실내 농구 코트가 아닌 동네의 흙바닥이나 콘크리트 코트들이다. 인기에 힘입어 이 플랫폼에서만 라이브 중계 동시 접속자 800만 명, 누적 방문자 9억 명을 돌파했다고 한다.
흥미로운 것은 중국 농구 팬들뿐 아니라 많은 이들에게 이미 동네 농구 '춘비에이(村BA)' 열기가 정식 전국 농구리그 '씨비에이(CBA)'의 인기를 능가했다는 것이다. 비결은 역시 순수성과 리얼함에 있다. 프로선수보다 기술이나 체력은 떨어지지만, 경기에 임하는 동네 아마추어 선수들의 진정성이 보는 이들을 끌어들인다.
결선 경기의 입상자들에게는 거액의 상금이 아닌 구이저우 타이판 동네에서 잡은 민물고기나 오리, 쌀, 소수민족의 은관(銀冠) 등이 상품으로 수여된다. 경기 중간 휴식 시간에는 화려한 치어리더 쇼가 아닌 전통 복장의 먀오족 공연단이 나와 관중들과 함께 춤을 추며 행진한다. 경기장 입장료는 없으나 좋은 자리를 위해 몇 시간 전 입장은 필수이고, 인산인해를 이룬 경기장 가장자리 위치에서 시합을 보기 위해서는 개인용 사다리 지참이 요구된다고 한다.
조용한 시골 동네가 관광객으로 북적거리면서 식당, 숙박업은 때아닌 호황을 누리고 있다. 다소 갑작스러운 인기에는 정부 관련 기관의 간접적 지원이나 인터넷 매체, 이커머스 업체들의 참여도 영향이 있다고 하겠다.
최근 들어서는 구이저우 롱장(榕江)의 동네 축구대회 '춘차오(村超)'와 타이장(台江)의 농구대회 '춘비에이(村BA)' 이어 동네, 시골, 향촌의 의미를 담은 '춘(村-촌)'을 접두어로 한 브랜드의 배구대회 '춘파이(村排 / 하이난 원창)', 장기대회 '춘자(村甲 / 후난 상잉)', 요리대회 '춘추(村廚 / 후난 바오징)' 등으로 이어지며 '춘'자 형제 시리즈의 영역과 장소가 확장되고 있다. 그간 별 관심을 받지 못하던 지방의 작은 이벤트들이 대중화된 인터넷과 모바일을 통해 전국적 관심의 대상이 된 것이다.
(남은 이야기는 스프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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