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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생님, 이 아이 안락사시켜 주세요"…새 가족을 만나 긴 잠에 들기까지 [스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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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려동물 삐뽀삐뽀] 아름다운 동행 그리고 이별 (글 : 오석헌 수의사)
오석헌 반려동물 삐뽀삐뽀 썸네일
 

우리가 잘 몰랐던 동물 이야기, 수의사가 직접 전해드립니다.
 

"안락사를 해주세요. 해주지 않으면 돌아가는 길에 이 아이를 버릴 거예요."

무더운 여름날, 왜소한 체격의 몰티즈 한 마리가 진료실에 들어왔습니다. 불안해하며 보호자 품에 안겨 있는 노견은 눈으로 봐도 건강 상태가 좋지 않았습니다. 상담을 이어가던 중 갑자기 보호자는 안락사를 원한다는 이야기를 꺼내며 검사를 진행하고 싶지 않다는 뜻을 밝혔습니다. 이 아이는 안락사 기준에 충족되지 않기 때문에 안락사를 진행할 수 없다고 말씀을 드렸으나 보호자는 반복적으로 안락사를 요구하며 급기야 오늘 안락사를 시켜주지 않으면 돌아가는 길에 버리겠다는 협박 아닌 협박까지 하는 것이었습니다.

더 이상의 상담은 의미가 없겠다는 생각이 들어 결국 아이에 대한 소유권을 포기하겠다는 동의서를 받고 병원에서 키우기로 결정했습니다. 보호자가 떠난 후 홀로 있는 아이의 모습은 더욱 쓸쓸해 보였지만 자신의 처치도 모르는 듯 연신 꼬리를 흔들며 병원 대기실을 오가며 노는 모습에 직원들 모두 반겨주었습니다.

사연 때문인지 뭔가 아련한 생김새의 아이에게 우리는 병원 앞 글자인 '오'와 복 많이 받으라는 의미로 '복'을 조합해서 '오복'이라는 이름을 지어주었습니다. 14살의 오복이는 종합병원 같은 검진 결과가 나왔습니다. 유선과 복강 내 종양이 자라고 있었고 녹내장으로 인한 안과 질환과 급히 치료가 필요한 심장 질환이 확인되었습니다. 처음 계획은 현재 문제를 치료하고 적절한 분양처를 찾는 것이었는데 어쩌면 병원에서 계속 지내야 할 듯했습니다.

치아도 없고 앞도 잘 보이지 않는 오복이는 배변, 배뇨를 잘 가리지 못하는 것을 제외하고는 생각보다 병원 생활에 잘 적응해 나갔습니다. 직원들도 오복이를 정성스럽게 돌봐주었고 종종 집에 데려가서 함께 지내다 오기도 했습니다. 한 달여의 동거 기간이 계속되던 중, 오복이가 밤에 혼자 있는 것이 안타까웠는지 직원 한 명이 오복이를 입양해서 키우기로 하고 오복이는 새로운 주인을 만나 두 번째 가족을 찾게 되었습니다.

오석헌 반려동물 삐뽀삐뽀
새로운 가족들과의 행복한 시간도 잠시 오복이는 녹내장에 의한 안구 적출, 유선 종양, 난소 종양 적출 그리고 종양 전이에 의한 우측 앞다리 절단술 등 큰 수술들을 차례차례 감당해야 했습니다. 마지막 수술 이후 제대로 일어서기도 힘들어했지만, 일주일이 지나자 천천히 걷는 모습을 보이며 빠르게 회복해 나갔습니다. 조금은 불편해 보였지만 새로운 가족들의 보살핌으로 편안하게 지내는 것처럼 보였습니다. 하지만 복강 안에는 종양이 또 자라고 있었습니다.

오복이가 새로운 가족을 맞이하고 2년이 되었을 무렵, 오복이가 마지막으로 병원을 찾았습니다. 오복이는 이제 근육이 거의 사라졌고 종양으로 배가 부어올라서 제대로 서 있기도 힘들어했으며 남아 있던 우측 안구까지 파열이 되어 통증을 호소하고 있었습니다. 이제 더 이상의 수술과 치료는 무의미해 보였고 오복이를 데려갔던 직원과 가족분들에게 편안히 보내주는 게 좋겠다고 이야기를 전했습니다. 더 이상 아프지 않게 해주는 것이 어쩌면 우리가 오복이한테 마지막으로 해줄 수 있는 선물일 거라고... 그렇게 어두운 조명 아래 오복이는 가족들의 품 안에서 조용히 눈을 감았습니다.

오석헌 반려동물 삐뽀삐뽀
(남은 이야기는 스프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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