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휠체어 못 들어가는 1층 편의점, 국가 책임?…대법 공개변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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휠체어 못 들어가는 1층 편의점, 국가 책임?…대법 공개변론
▲23일 오후 서울 서초구 대법원 대법정에서 '장애인 접근권 국가배상소송' 전원합의체 공개변론이 진행되고 있다.

1층에 위치한 편의점 등 소규모 매장에 지체장애인이 휠체어를 타고 드나들 수 있는 경사로가 없는 상황.

이런 상황을 정부가 24년간 법 개정을 하지 않아 방치했다면, 장애인에게 손해배상 책임을 질까.

이런 문제를 놓고 대법원 전원합의체(주심 이숙연 대법관)는 김명학 노들장애인야학 교장 등 지체장애를 지닌 원고 3명이 국가를 상대로 낸 차별 구제 소송의 공개 변론을 오늘(23일) 대법정에서 열었습니다.

전원합의체 공개 변론은 2021년 이후 3년 만으로, 조희대 대법원장 취임 후론 처음입니다.

○3년 만 공개변론…배경은

사건은 2018년 장애인인 김 교장 등 3명이 편의점 GS25 운영사 GS리테일과 정부를 상대로 "장애인들의 편의점 이용이 부당하게 제한되고 있다"며 차별구제 청구 소송을 내며 시작했습니다.

1998년부터 2022년까지 장애인등편의법 시행령은 바닥 면적이 300제곱미터, 약 90평 이상인 점포만 장애인 출입로나 호출벨 등 설치 의무를 규정해 거의 모든 소매점에 편의시설 설치의무가 면제돼 왔습니다.

통계청 자료상 시행령 시행 시점인 1998년 소매업의 경우 300㎡ 이상 사업장은 전체의 0.1%에 불과했고, 통계가 세분화된 2018년에는 체인화 편의점은 1.2%, 식료품 소매업은 2.3%, 음료·의약품 등 소매업은 1.5% 수준이었습니다.

차별구제 소송에서 1·2심 재판부는 해당 시행령 자체는 위법하고, 위헌적 성격이 있다며 무효로 판단했습니다.

이에 따라 해당 시행령은 2심 재판 중인 2022년 4월 개정돼 바닥 면적 50제곱미터, 약 15평 이상 점포의 경우 장애인 편의시설 설치를 의무로 하도록 강화됐습니다.

다만 1·2심은 입법 미비에 고의나 과실은 없다며 국가의 손해배상 책임은 인정하지 않았습니다.

원고가 불복해 상고하면서 대법원은 2022년 11월부터 사건을 심리해왔습니다.

○쟁점은…'부작위' 위법성·국가 배상 책임 여부

오늘 공개변론의 쟁점은 국가가 옛 장애인등편의법 시행령을 장기간 개정하지 않은 것이 입법자의 부작위, 즉 해야 할 일을 하지 않은 것으로 위법한지, 또 나아가 손해배상 책임까지 성립하는지 여부였습니다.

장애인등편의법 시행령이 시행된 1998년부터 법이 개정된 2022년 사이 24년 간 국가가 위법적인 시행령을 유지한 것이 위법한지, 또 이를 이유로 국가가 배상 책임까지 지는지를 따지는 겁니다.

○ 맞붙은 장애인 원고 측과 정부…대법관 질책도

오늘 공개변론에서 원고 측 대리인은 "관련 법률은 장애인 등이 일상에서 안전하고 편리하게 시설 이용할 수 있도록 접근권과 국가 의무를 정했다"며 "그런데 전국에 바닥면적 300제곱미터 이상인 소매점은 거의 없다"고 주장했습니다.

이어 "시행령이 개정되는데 통상 5~7개월이 소요 되는데 반해 이 사건은 24년이 걸렸다"며 위법성을 강조했습니다.

원고 측은 또 법이 시행된 1998년 이후 2008년 장애인 차별법 시행, 2014년 UN 장애인인권권리위원회 권고, 2017년 국가인권위원회 개정 권고가 있었음에도 개정이 지연됐다고 지적하며 "개정할 기회가 여러 번 있었지만 안 했다"고 했습니다.

반면 정부 측은 "소매점 접근권 개선은 소상공인이나 영세업자가 직접 관련돼 비용을 부담해야 한다"며 "(장애인 입장에서는) 온라인 구매나 대형마트 이용, 보조사 활용 등 대체 구매 수단이 많다"고 맞받았습니다.

또 "부족하나마 정부는 장애인 접근권을 보장하기 위해 최선의 노력을 다하고 있다"며 "이 사건 쟁점 규정과 관련해 구체적인 행정입법 부작위와 위법성, 공무원의 고의나 과실이 인정되기 어렵다"고도 반박했습니다.

정부의 이런 설명에 오경미 대법관은 "온라인 주문으로 대체 가능하다고 말하는 건 장애인에게 집에만 있으면서 온라인만 하라는 것"이라고 질책했습니다.

조희대 대법원장은 바닥면적 300제곱미터 이상 시설이 실제로 전국에 얼마나 되는지 양쪽에 물었고, 원고 쪽은 약 3%, 피고 쪽은 5%는 넘는다고 답했습니다.

이에 조 대법원장은 "법에서 요구하는 시설물에 대해 50% 이상이라도 해놓고, 우리는 '할 만큼 했다'고 해야 한다"며 "이 정도라면 너무나 입법 의무를 게을리한 것이 숫자 자체로 명백한 것이 아닌가"라고 지적했습니다.

정부의 부작위가 위법하다고 인정될 경우 손해배상 책임을 지는지에 관해서도 양쪽은 대립했습니다.

원고 측은 "1인당 100만 원, 그보다 적은 10만 원이라도 손해배상이 인정돼야 한다"며 "국가 재정 문제로 배상책임 자체가 부정되어서는 안 된다"고 했습니다.

반면 정부 측은 접근권이 구체적으로 어떻게 침해됐는지 증명이 되지 않았다고 반박했습니다.

변론에는 한국환경건축원과 한국장애인개발원 관계자,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2명도 참고인으로 출석해 각각 의견을 말했습니다.

원고 측 참고인으로 출석한 배융호 한국환경건축연구원 이사는 "1998년 장애인 편의법이 시행되면서 휠체어 사용자의 삶이 달라질 것이라고 기대했다"면서 "그러나 면적 기준을 제한하면서 음식점과 카페, 약국과 식품점 등 대부분 소매점은 장애인을 차별하는 시설이 됐다"고 말했습니다.

정부 측 참고인인 안성준 한국장애인개발원 팀장은 "정부는 5년마다 편의시설 실태 조사를 실시해 설치율을 98%대까지 끌어올렸다"며 "누군가에게는 느리다고 할 수 있지만 정부는 제도와 정책을 방치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고 했습니다.

○ 장애인단체 "국가 책임 물어야"…변협도 '배상 책임 있다' 회신

공개변론 시작에 앞서 장애인차별금지추진연대는 대법원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국가의 책임을 묻지 않는다면 평등권을 보장하지 못하는 법 규정으로 인해 장애인의 접근불가 시설은 늘어만 갈 것"이라고 호소했습니다.

기자회견에 참석한 원고 당사자인 김명학 노들장애인야학 교장은 경사로를 설치하지 않은 매장이 많은 점을 들며 "1층은 나에게 1층이 아니"라며, "편의점, 약국, 음식점 등 누구나 이용해야 하는 시설들이 60년 넘는 시간 출입금지 구역이었다"고 말했습니다.

대법정에서는 대법원의 의견을 묻는 요구에 따라 기관들이 회신한 답변도 공개됐습니다.

장애물없는생활환경시민연대와 한국지체장애인협회, 한국보건사회연구원은 정부가 시행령을 장기간 개정하지 않은 게 위법하다는 의견을 서면으로 냈습니다.

대한변호사협회와 한국사회보장법학회는 나아가 장애인들에 대한 국가의 배상책임도 인정해야 한다고 회신했습니다.

이 사건 심리 결과에 대한 대법원 전원합의체의 선고는 2~4개월 후 나올 것으로 예상됩니다.

(사진=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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