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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흑백 요리사>가 남긴 것들 - "좋은 경험은 비싼 돈을 지불할 가치가 있다" [스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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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흑백 요리사>가 남긴 것들 - "좋은 경험은 비싼 돈을 지불할 가치가 있다" [스프]
[트렌드 언박싱] 때론 쓸데없어 보이는 낭비도 관대하게 바라봐야 하는 이유 (글 : 기묘한 뉴스레터 트렌드라이트 발행인)
기묘한 트렌드 언박싱
 
기묘한은 국내 최대 규모의 커머스 버티컬 뉴스레터 「트렌드라이트」의 발행인으로, 「기묘한 이커머스 이야기」의 저자이기도 하다. 매주 수요일 뉴스레터를 통해 업계 현직자의 관점을 담은 유통 트렌드 이야기를 전하고 있다.
 

<흑백요리사>를 통해 파인 다이닝이 다시 주목받고 있다. 파인 다이닝은 철저히 고급화된 식당을 뜻하는데, 한 끼에 수십만 원을 호가하는 가격 때문에 대중과는 상당히 거리가 먼 존재였다. 하지만 코로나 팬데믹을 거치며, 오마카세를 필두로 파인 다이닝은 큰 인기를 얻게 됐다. 해외 여행이 막힌 상황에서 새로운 경험을 찾던 젊은 세대가 눈길을 돌린 덕분이다. 그러나 이내 파인 다이닝은 '사치 논란'에 휩싸이게 됐다. 소셜미디어에서 이를 단순히 허세로 여기는 비판이 쏟아졌고, 고금리와 고물가로 인한 수요 감소는 파인 다이닝 시장을 다시 위기로 몰아넣었다.

이때 등장한 구원자가 넷플릭스 예능 <흑백요리사>였다. 이 프로그램이 특별히 파인 다이닝을 변호한 것은 아니었다. 다만 출연한 요리사 중 다수가 파인 다이닝 식당을 운영하고 있었을 뿐이다. 그런데 화면 속 요리사들이 요리에 쏟는 열정과 진지한 태도가 눈길을 끌었다. 그 덕에 대중은 파인 다이닝이 단순한 사치가 아니라, 비싼 가격을 지불할 가치가 있는 특별한 경험을 제공한다는 점을 자연스럽게 깨닫게 된다.

칼질 하나도 다른 것이 파인 다이닝의 경험이라는 걸 자연스럽게 알려준 <흑백요리사>. 출처 : 넷플릭스
이후 출연한 셰프들이 다양한 채널을 통해 파인 다이닝의 현실을 전하면서, 이러한 목소리는 더욱 힘을 얻었다. 알고 보면 한 끼 가격이 비싸다고 생각했던 파인 다이닝 식당들이 그 높은 가격에도 불구하고 적자를 면하기 어려운 경우가 많다는 것이다. 심지어 한국 유일의 미슐랭 3스타 식당이자, <흑백요리사> 심사위원인 안성재 셰프가 운영하던 '모수 서울'마저 휴업을 택할 수밖에 없었다는 사실이 알려지자, 고가 논란은 자연스럽게 사라졌다.

물론 파인 다이닝에 대한 비판이 단순히 원가 대비 비싸다는 인식에서만 나온 것은 아니었다. 사실 그동안 한국 사회에는 사치를 죄악시하는 인식이 강했다. 소득 수준에 맞지 않는 소비는 부도덕하다고 여겼고, 근검한 소비가 미덕이라는 생각이 널리 퍼져 있었다. 소득 구간에 맞춰 사야 할 브랜드를 정해주는 일종의 '등급표'가 유행할 정도였다. 특히 먹는 것에 관한 비판이 더 거셌다. 편의점 라면이나 오마카세 초밥이 얼마나 다르겠냐며, 돈을 그렇게 쓰는 것이 낭비라는 식의 반응이 많았다.

그러나 우리 사회가 진정 발전하려면, 좋은 경험에 더 많은 돈을 지불하는 것에 관대해질 필요가 있지 않을까? 괜히 파인 다이닝이 한 나라의 식문화 수준을 가늠하는 지표로 여겨지는 것이 아니다. 명품 브랜드들이 패션 트렌드를 주도하고, 그 트렌드가 대중에게 확산하듯이, 고급 문화는 새로운 흐름을 만들어내는 힘이 있다. 결국 좋은 식재료와 정교한 조리 방식을 알아보는 안목이 있어야 식문화가 발달할 수 있고, 그런 안목은 경험에서 나온다.

한강 작가가 만년 적자에도 독립서점을 지킨 건 다양성의 중요성을 알았기 때문이다. 출처 : 연합뉴스
또한, '수익과 성장을 우선하지 않는 곳에서 나오는 다양성'은 중요한 변화를 만들어낸다. 모든 분야에서 고급 문화가 트렌드를 주도하는 것은 아니다. 예를 들어 영화나 출판 같은 대중을 대상으로 하는 분야는 고급화하는 것이 거의 불가능하다. 이때 파인 다이닝과 유사한 역할을 하는 것이 바로 독립영화나 독립출판이다. 이들은 주류에서 하지 않는 새로운 도전을 하면서, 전체 생태계에 신선함을 더하는 역할을 한다.

하지만 동시에 파인 다이닝처럼 본질적으로 수익을 기대하기 어려운 구조로 되어 있기도 하다. 한강 작가가 대형 서점이나 온라인 서점에서 주목받지 못했던 책들을 소개하는 데서 오는 애정으로 독립 서점 '책방 오늘'을 운영했지만, 수년간 만성적인 적자에 시달린 것도 결국 이 때문이다.

(남은 이야기는 스프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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