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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청난 부자만 먹을 수 있던 게 '꽃빵'? 놀랍고도 화려한 역사 [스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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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덕노의 중식삼림(中食森林)] 고추잡채에 곁들인 꽃빵, 사실은 반대
윤덕노 중국본색 썸네일
 

음식에는 한 나라의 사회 정치 경제가 은연중에 녹아 있다. 중국 음식도 예외가 아닌데 세계로 퍼진 중국 음식 속에는 현지의 문화와 역사까지 곁들어 있다. 지구촌 중국반점의 요리를 통해 중국 본색을 알아보고 세상을 들여다본다.
 

꽃빵과 고추잡채는 우리나라 사람들도 즐겨 먹는 중국음식 중 하나다. 바늘에 실 따라가듯 고추잡채 먹을 때면 꽃빵도 함께 먹는 경우가 많은데 고추잡채와 꽃빵 중 어느 음식이 중심일까? 

이런 의문을 품는다는 것 자체가 터무니없다는 반응이 대다수일 것 같다. 얼핏 봐도 고추잡채가 메인이고 꽃빵은 보조일 수밖에 없는 것이 요리에 들어가는 재료만 봐도 차원이 다르다. 먼저 고추잡채는 고추와 피망, 파프리카, 양파와 돼지고기 혹은 오리고기 그리고 갖은양념을 기름에 달달 볶아 조리한다. 반면 꽃빵은 만두도 아니고 찐빵도 아닌 밀가루 덩어리에 불과(?)한 데다 없으면 밥으로 대체해도 그만이다.

꽃빵(좌)과 고추잡채(우). 출처: 게티이미지
현대적 관점에서 보면 그렇지만 음식의 역사와 음식문화의 차원에서 보면 또 이야기가 달라진다. 꽃빵은 유구한 역사를 자랑하는 품격 있는 음식인 반면 고추잡채는 누가, 언제부터 먹었는지도 모르는 그저 꽃빵을 맛있게 먹기 위한 보조일 뿐이다. 그러니 꽃빵 입장에서 보면 지금의 꽃빵과 고추잡채는 완전 주객이 전도된 셈이다.

꽃빵이 뭐가 그렇게 대단하다고 호들갑일까 싶지만 사실 꽃빵은 족보가 있는 음식이다. 우리는 꽃처럼 생긴 빵이라고 해서 꽃빵이라고 부르지만 실은 만두의 한 종류다. 한자로는 꽃 화(花), 말 권(卷) 자를 쓰고 중국어로는 화쥐앤(花卷)이라고 하는데 어쨌든 꽃처럼 돌돌 말았다는 뜻이다.

화쥐앤(花卷). 출처: 바이두
중국에서는 꽃빵의 기원을 당나라 때로 꼽는다. 중국인들 역사상 가장 화려했다는 잔치로 청나라 때 만주 요리와 한족 요리 180가지가 차려졌다는 만한전석(滿漢全席)을 꼽는다. 하지만 만한전석은 최고의 잔치고, 최초의 화려한 잔치는 소미연(燒尾宴)이라는 잔치다. 당나라 중종 때 위거원이라는 인물이 재상인 좌복야로 승진하자 임금을 초대해 열었던 승진 자축 잔치였는데 여기에 차려진 요리 중에 현재의 꽃빵 원조로 추정되는 음식이 보인다.

만한전석. 출처: 바이두
칠반고(七返膏)라는 음식으로 밀가루를 일곱 번 돌려 말아 둥근 꽃 모양으로 만들어 기름을 발라 찐만두 종류의 음식이다. 영락없는 꽃빵이다. 꽃빵은 이렇듯 당나라 최고의 잔치에 등장했던 초호화 요리였던 것이다.

밀반죽을 일곱 번 말았건 일흔 번 말았건 그래봤자 찐만두 종류인데 이게 왜 초호화 요리일까 싶지만 만두의 역사를 보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중국에서 만두가 처음 퍼진 시기는 대략 3세기 후반으로 추정한다. 삼국지에서 제갈공명이 만두를 발명했다는 이야기는 사실과는 다른 엉터리일 뿐이고 만두라는 단어는 3세기 말 『병부』라는 문헌에 처음 보인다. 여기에서 만두는 음력 정월 초하루 설날에 하늘에 제사를 지내는 음식으로 나온다. 만두가, 바꿔 말해 밀가루 음식이 그만큼 귀했기 때문이다.

비슷한 시기인 진(晉)나라 때 재상 중에 하증이란 인물이 있었다. 엄청난 부자에다 미식가로 소문난 인물로 1만 냥의 돈을 들여 차린 밥상임에도 젓가락 댈 만한 음식이 없다고 투덜거렸던 인물이다. 역사책인 『진서(晉書)』 「하증열전」에는 발효시켜 찐만두 꼭대기가 열 십(十)로 갈라지지 않으면 손도 대지 않았다고 나온다. 이 무렵 만두는 황제의 제례 때 혹은 진짜 부자 아니면 먹지 못했던 음식이었다.

(남은 이야기는 스프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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