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주류란 이유로, 마이크를 가지지 못했던 사람들의 스피커가 되는 저널리즘.
"준혁이는 '딸 같은 아들'이었어요. 항상 어디 가면 제 손을 꼭 잡고 다녔죠. 초등학교 때인가. 길에 돌아다니는 자기 몸집만 한 큰 강아지가 따라온다고 집에 데려와서는 키우고. 길고양이도 보면 캔 사료 사서 꼭 먹여주고. 잔정이 많았죠. 사랑이 많은 아들이었어요."
'사랑이 많았던 외아들'이 에어컨 설치 회사에 취직한 지 이틀째 되던 지난 8월 13일. 준혁 씨의 어머니는 현장팀장이라는 사람으로부터 한 장의 사진과 함께 '애를 데려가라'는 문자 연락을 받았습니다. 땡볕 화단에 쓰러져 누워있는 아들의 사진이었습니다. 팀장은 "평소 (아이에게) 정신질환이 있었느냐"고 묻기도 했습니다. 작업을 하던 급식실에서 땀을 뻘뻘 흘리던 준혁 씨가 밖으로 뛰쳐나간 지 이미 30분이 흐른 뒤였습니다.
사측은 그동안 119에 신고조차 하지 않았습니다. 준혁 씨의 어머니가 "당장 아이를 병원에 데려가 달라"고 재촉하자, 그제야 동료들은 119에 신고했습니다. 폭염으로 전남 장성의 낮 기온이 34도까지 올랐던 날. 쓰러진 준혁 씨의 체온은 측정이 어려울 정도로 치솟아 있었고, 병원으로 옮겨졌지만 끝내 숨졌습니다.
출근 이틀째 숨진 아들... "물도 못 마시게 해"
준혁 씨는 사측에 '냉각 모자를 달라'고 요청했습니다. 업계 동료들로부터 다른 사업장에서는 체온을 식혀주는 '쿨링 모자'를 쓰는 곳이 있다는 걸 들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사측으로부터 돌아온 답변은 "쓰면 안 된다"는 것이었습니다.
"(사고) 전날 준혁이가 퇴근하고 집에 와서 (작업장에서) 물을 못 마시게 했다고 그랬어요. 그래서 '왜 물을 못 마시게 했냐' 물었더니, (사측이) '너무 많이 (물을) 마시면 탈수 현상이 오니까 물을 못 마시게 했다'고…. 그 말을 했었어요."
- 고 양준혁 씨 어머니
'엄마보물♥' 아들이 하늘로... 책임 미루는 사람들
아들이 하늘로 간 지 한 달이 다 되도록 어머니는 검은 상복을 벗지 못했습니다. 아들과 오순도순 둘이 살던 집 대신, 준혁 씨의 어머니는 광주고용노동청 앞에 마련된 아들의 분향소에서 매일 눈물을 쏟아야 했습니다. 하청업체와 원청사, 발주처인 전남교육청까지 묵묵부답으로 일관했기 때문입니다.
'삼성에어컨 설치 기사 20대 청년 노동자 폭염 사망사고 대책 회의'가 꾸려지고, 시민사회와 정치권 압박이 있은 다음에야 책임자들은 유족을 찾아와 고개를 숙였습니다. 준혁 씨가 일했던 유진테크시스템 대표이사가 분향소를 찾아 유족에게 "죄송하다"며 눈물을 흘렸고, 이 업체와 하청 계약을 맺은 삼성전자의 오치호 한국 총괄 부사장 역시 "이번 사고와 관련한 모든 조사에 임하겠다"며 "폭염 대비 대책을 강화하겠다"고 약속했습니다.
이 사건을 담당하는 박영민 노무사는 "신입사원이었던 양준혁 군이 입사 전후 '온열 질환'에 대한 사전 교육이나 안내를 받지 못했다"고 말했습니다. 현재 해당 하청업체에는 산업안전보건법상 위반 사항이 적발돼 과태료가 부과된 상태입니다.
사고 29일 만에 고개 숙이고... 길어진 여름 '온열질환' 급증
강제성 없는 가이드라인... '폭염 사각지대' 곳곳에
'뇌가 익는' 열사병... 사업주 감수성에 맡겨진 노동자의 건강
"온열질환은 노동자들의 건강을 단순히 위협하는 수준이 아닙니다. 열사병의 경우, 제때 적절한 조치를 하지 못했을 때 치사율이 80%에 달하는 병입니다. '뇌가 익는다'는 표현까지 쓰는, 사람의 목숨까지 위협하는 치명적인 질환입니다. 노동부는 해마다 여름이면 온열질환 대비 각종 지침과 가이드라인을 발표하지만, 사실상 그 강제성이 부재합니다. '사업주의 감수성이나 문제의식' 없이는 폭염으로부터 노동자들을 보호할 방법이 없다는 의미입니다."
물, 그늘(바람), 휴식. 이 기본적인 원칙만 지켜져도 대부분의 온열질환은 예방할 수 있다는 걸 사실 사업주도 모르지 않습니다. 하지만, 여전히 많은 사업주는 '안전보건조치'를 제대로 이행하는 것을 비용의 문제로 인식하고 있지요. 기후위기로 해마다 늘고 있는 '폭염 산재'를 고려해, 국회에서는 '폭염시 작업중지권 보장'을 강화하는 산업안전보건법 개정이 논의되고 있습니다. 기후 여건에 따라 노동자의 생명과 안전에 위해를 끼칠 우려가 크다고 판단되면 작업 중지를 노동부 장관이 명령할 수 있도록 한 것이 골자입니다.
여기에 더해 노동자가 현장에서 사용할 수 있는 작업중지권의 요건을 '급박한 산업재해 위험'에서 '기상 여건 등으로 인한 사망·부상 또는 질병이 발생할 위험'으로 확대하고, 위험 여부가 불확실할 때는 노동자가 판단할 수 있도록 한 법안(양준혁 법)도 발의됐습니다. 이 법에는 쓰러진 직원을 119 구급대 등에 지체 없이 신고하지 않으면 최고 3천만 원의 과태료를 부과하는 내용도 포함됐습니다. "사진 찍을 시간에 119에 신고만 했어도 아들이 그렇게 고통당하고 죽지 않았을 텐데. 아직도 그 부분이 납득이 안 되어서 그게 제일 힘들어요." 고 양준혁 씨 어머니의 말입니다.
뜨거운 태양 아래, '열심히 일한 자'의 목숨을 앗아가는 일
우리 몸은 고온에 지속적으로 노출되면 그에 대한 적응 반응이 일어나는데, 이걸 고온 순화라고 부릅니다. 이번에 숨진 양준혁 씨는 입사 이틀 된 신입사원이었습니다. 준혁 씨의 근무 시간은 첫째 날 오전 7시 45분부터 저녁 8시 30분까지 12시간이 넘었고, 둘째 날 역시 같은 시간 출근해 근무하다 오후 4시 40분쯤 쓰러졌습니다. 1년 전 이맘때 취재했던 "폭염 속 일하다 쓰러진 서른 살 청년" 역시 원래 했던 캐셔 업무에서 카트 이동 업무로 작업 환경이 바뀐 지 얼마 지나지 않아 숨졌습니다. 몸이 더위에 적응할 시간을 주지 않으면 온열질환이 발생할 가능성이 더 높은 겁니다.
(남은 이야기는 스프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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