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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성성 뽐낼 필요 없는 '진짜 사나이'의 등장? 이것은 "한 발짝 진보" [스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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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욕타임스 칼럼] Tim Walz's Superpower, by Jessica Bennett
0827 뉴욕타임스 번역
 
* 제시카 베넷은 오피니언 칼럼니스트다. 주로 젠더, 정치, 개인의 성격에 관한 글을 쓴다.
 

사람들 앞에서 잘 울면서 자기 손가방이 없을 때는 여자친구의 백을 들고 있는  NFL 공격수. 자신의 불임 치료 경험에 대해 공개적으로 이야기하면서 동성애자 인권을 지지하고 미네소타 공립학교가 학생들에게 무료 생리용품을 제공하도록 한, 덕분에  '탬폰 팀'이라는 별명을 얻게 된 고등학교 풋볼팀 코치이자 주 방위군 소속 군인이 있다.

둘 사이에 공통점은 거의 없다. 그리고 둘 중 한 사람만 부통령 후보로 출마한다. 그러나 가수 테일러 스위프트의 남자친구 트래비스 켈시(전자)와 카멀라 해리스의 러닝메이트 팀 월즈(후자)를 합쳐보면 우리가 8년간 도널드 트럼프 시대(그리고 5주간의 J.D. 밴스 시대)를 살며 잊고 지냈던, 자신감 넘치는 건강한 남성성이 무엇인지 알 수 있다. 두 사람은 지나친 자의식 없이 그저 자신의 감정을 솔직히 드러낼 뿐 아니라, 여성을 앞세우며 존경과 감사를 표하는 것도 아주 자연스럽게 한다. 영향력을 얻기 위해 인격자인 척하거나 섬세한 남성 연기를 한다는 가식은 느껴지지 않는다.

월즈와 켈시 사이의 공통점으로 남성성의 매우 미묘한 일면을 들 수 있는데, 여기에는 '운동선수 보험(Jock Insurance)'이라는 재미난 이름이 붙어 있다. 간단히 설명하자면 두 사람은 풋볼, 사냥, 군 경력 등을 통해 '진짜 사나이'로 이미 인증받았기 때문에 나약해 보인다는 낙인 없이 전통적인 의미의 남성성에 반하는 행동을 할 수 있다는 것이다.

'운동선수 보험'은 2000년대 초반 사회학자 C.J. 파스코가 캘리포니아 북부 공립고등학교 두 곳에서 1년간 10대 남자 청소년들을 인터뷰하고서 만들어낸 개념이다. 파스코는 남학생들이 사회적 위계질서를 유지하고 자신의 남성성을 적절하게 인정받기 위해 엄수하는 무언의 규칙이 존재한다고 설명한다. 당시 10대 남성들은 자신의 성정체성과 관계없이 'fag(동성애자를 가리키는 멸칭)'라고 불리는 것을 최악으로 여겼다. 파스코의 인터뷰 대상자들은 어떤 행동을 했을 때 그런 낙인이 찍히는지를 세세하게 설명했는데, 연극 동아리에 가입하거나 너무 자주 웃는 것 등이 대표적으로 금기시됐다.

하지만 여기에는 한 가지 예외가 있었다. 바로 운동선수들이었다. 파스코의 연구 대상이던 학교에는 어떤 이유에서건 이런 규칙과 기대에서 자유로운 운동선수들이 소수 존재했다. 주로 미식축구 선수인 이들은 자신의 감정을 차분하게 이야기했고, 남성 간의 우정과 친밀함에 대해 논할 때도, 가족에 대한 사랑을 표현할 때도 거리낌이 없었다. 다른 남학생들이 무슨 수를 써서라도 그런 행동을 피하려 할 때, 이들은 별다른 수치심을 보이지 않았다.

이들은 도대체 어떻게 낙인을 피할 수 있었을까? 파스코 박사의 머릿속에 어느 정도의 공식이 떠오르기 시작했다. 이들은 이미 운동선수라는 지위를 누리고 있기 때문에 남성성이라는 자원을 충분히 쌓아두었고, 그래서 리스크를 감당할 수 있다는 것이 파스코의 이론이다. 리스크를 기꺼이 감수하는 이들에게 보상은 매우 크고 소중했다. 자기 자신으로 살아갈 수 있었던 것이다.

파스코 박사는 이 연구 결과를  논문에 담았고, 이후 '야, 너 게이잖아: 고등학교의 남성성과 섹슈얼리티'라는 제목의  으로 펴냈다. 나는 월즈와 켈시가 이 사례에 해당한다고 생각해 파스코 박사에게 전화 인터뷰를 요청했다. 태평하고 섬세한 남자 감성이 남성적인 외형과 합쳐졌을 때 매력이 극대화되는 이유는 무엇일까?

월즈의 경우는 특히 빠르게 숭배의 대상이 됐다. 해리스가 월즈를 러닝메이트로 지명한 순간부터 그는 온라인상의  '최애 아빠 캐릭터'로 등극했다. 사람들은 전형적인 이성애자 남성의 전유물인 사냥과 스포츠를 좋아하면서도 자신이 교사로 재직할 때 학교에 처음 생긴  동성애자 지지 연합의 지도교사를 기꺼이 자원한 월즈를 드라마 '테드 라소'의 주인공 같은 인격자로 인식했다.

이 모든 요소가 한데 어우러져 월즈의 매력을 오히려 끌어올렸다. 소셜미디어에서 나온 이야기처럼 그는  고압세척기를 흔쾌히 빌려줄 사람인 동시에  선반을 어떻게 설치하면 되는지 자세히 알려줄 이웃이자, 자기 아이들을 헌신적으로 키우면서도 학생들을 살뜰히 챙기며, "신용카드 안 받는 가게가 있을 수도 있잖아"라는 말과 함께 20달러를 슬쩍 주머니에 찔러주는  운동부 코치 같은 사람이다. 파스코 박사는 월즈가 "편안함을 주는 일상적인 남성성을 말 그대로 뿜어내는 사람"이면서도 "동시에 그런 남성적인 능력을 갖추고 있기 때문에 다른 남자들이 할 수 없는 일을 해내는 사람"이라고 설명했다.

'긍정적인 남성성'의 새 시대가 열린 것일까?  '주변을 해치는 남성성'의 해독제인  '강장제 남성성'이 마침내 등장한 걸까? 아니면  '즐거운 남성성'이라고 이름 붙여야 할까? 아니면 그저 덩치 크고 다정한 남자가  일시적으로 유행일 뿐 이내 잠잠해질까?

어느 쪽이건 일단은 한 발짝 진보임은 분명하다. 최소한 이런 남성들의 매력을 파헤쳐 볼 수 있는 흥미로운 판이 깔린 게 분명하다. 월즈는 마치 미국인들이 '남자라면 마땅히 이래야지'라고 생각하는 요소를 모두 모은 다음(최근 월즈는 CNN 인터뷰에서  J.D. 밴스를 향해 "나만큼 꿩 사냥을 잘할 수는 없을 거라고 확신한다"고 말하기도 했다), 거기에 약간의  유연성을 더해 사람으로 빚은 존재 같다.

유연성은 다양한 형태로 나타난다.  거구의 미식축구 선수 형제가 공개 석상에서 서로에 대한 애정을 표현하고 눈물을 보이면서 감정을 드러내는 것은 수치스러운 일이 아님을 보여주는 형태(트래비스와 제이슨 켈시)일 수도 있다. 아니면 월즈가 총기에 대한 견해를 바꾼 것처럼 자기 잘못을 인정하고 의견을 바꾸는 형태로 드러나기도 한다. 아내의 전담 치어리더 역할을 하기 위해 잘 나가던 연예인 변호사 일을 그만두고는, 어색한 포즈로  아내의 입간판 옆에서 사진을 찍고 유세 연설에서는 자궁경부암 검사법을 논하는 해리스의 남편 더그 엠호프도 마찬가지다.

학술 저널 '남성과 남성성(Men and Masculinities)'의 공동 편집장인 사회학자 트리스탄 브리지스는 "팀 월즈와 더그 엠호프가 켈시 형제와 마찬가지로 자연스러운 남성성을 갖고 있기 때문에 남성성의 규칙을 깰 수 있다"고 설명한다. 이들이 탬폰을 나눠준다거나, 여자친구의 노래를 토씨 하나 틀리지 않고 따라 부르는 것과 같이 통상 남성적이지 못한 것으로 여겨지는 행동을 하고도 오히려 더 남성적으로 보일 수 있는 극소수에 해당한다는 것이다. "'와, 저 사람은 그런 데 신경도 안 쓰네'라는 인상을 주는 거죠."

(남은 이야기는 스프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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