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미국 마약단속국(DEA) 작전 및 펜타닐 위기에 대해 발언하는 뉴잉글랜드주 특수요원 책임자 자로드 포겟이 발언하고 있다
미국에서 합성 마약의 일종인 펜타닐은 이제 단순한 마약이 아닙니다.
미국 정부는 지난해 12월 펜타닐과 핵심 원료인 전구체를 대량살상무기(WMD)로 지정했습니다.
7일(현지시간) 찾은 미 마약단속국(DEA) 북동부 지부에서는 펜타닐이 단순 마약을 넘어 미국의 국가안보 위협으로 다뤄지는 현실을 체감할 수 있었습니다.
인구 밀도가 높은 미 북동부는 마약 '소비·유통의 허브'다.
남서부 국경의 DEA가 밀수 경로를 차단하는 역할이라면, 북동부 DEA는 카르텔의 수익과 자금흐름을 추적하는 임무를 맡습니다.
프랭크 타렌티노 DEA 북동부 작전총괄 책임자는 약 30년간 특수작전과 국제공조를 두루 거친 현장 출신입니다.
그는 뉴욕 내 마약 거점으로 브롱크스와 워싱턴하이츠를 지목하고, 중국을 거쳐 멕시코에서 온 원료나 알약을 재가공하는 도심형 공장이 존재한다고 말했습니다.
의사 처방약 대신 '가짜약'…모르고 먹습니다
1990년대∼2000년대 초반엔 의사의 마약성 진통제 과잉 처방이 문제였습니다.
이후 병원 단속이 강화되자, 헤로인을 거쳐 코로나19 이후엔 펜타닐이 시장을 완전히 장악했습니다.
지금은 범죄조직이 정식 의약품처럼 위조한 '가짜약'이 문젭니다.
일반인들로선 '저렴한 처방약'을 산다고 생각하지만, 실제로는 치사량의 펜타닐이 섞인 가짜 약에 노출된다는 게 DEA 설명입니다.
이런 약은 겉보기엔 자낙스(불안치료제)나 퍼코셋(진통제)처럼 보이지만, 연필심 끝에 올릴 정도로 작은 양인 2㎎ 치사량의 펜타닐이 들어있습니다.
실험실에서 직접 본 'M30' 역시 일반인의 눈에는 처방 약과 다를 바가 없었습니다.
양쪽에 각각 M, 30이 새겨진 하늘색 알약은 정식 옥시코돈 30㎎을 그대로 모방한 것입니다.
특히 비극은 일상에서 시작됩니다.
부상 치료를 위해 정식 처방 약을 먹다가 처방이 끊긴 학생 운동선수들이 스냅챗 등 사회관계망서비스(SNS)를 통해 저렴한 가짜 약을 구입하면서 중독과 사망으로 이어지는 사례가 적지 않다고 DEA는 설명했습니다.
"과다복용 아닌 독살"…'초콜릿칩 쿠키'가 된 알약
타렌티노 책임자는 "사람들은 정식 약인 줄 알고 먹는다"며 "서사 자체가 달라져야 한다"고 말했습니다.
불법 실험실에서 제조된 약물은 공정이 조잡해 더 위험합니다.
DEA 관계자는 이를 '초콜릿칩 쿠키'에 비유했습니다.
반죽에 초콜릿 칩이 뭉치듯, 알약 안에서도 특정 부분에 펜타닐이 고농도로 몰리는 '핫스폿' 현상이 나타난다는 것입니다.
운 좋게 반알을 먹고 살아남았더라도, 남은 반쪽에 치사량이 들어있을 수 있는 '러시안룰렛'과 같습니다.
"스마트폰 있으면 이미 마약상 곁에…범죄판 아마존"
타렌티노 책임자는 "주머니 속에 스마트폰이 있다면 이미 마약 판매상을 곁에 둔 셈"이라며 현재 유통망을 "범죄판 아마존"이라 불렀습니다.
SNS 클릭 한 번에 문 앞까지 '정시 배달'되는 시스템이 이미 구축됐다는 것입니다.
DEA는 그 배후에 중국과 멕시코 카르텔의 분업 구조가 있다고 봅니다.
타렌티노 책임자는 특히 중국의 '일대일로' 정책에 주목했습니다.
일대일로로 구축된 글로벌 물류망과 항만 인프라가 마약 공급망의 통로로 악용돼 '마약의 세계화'를 가속하고 있다는 지적입니다.
크리스토퍼 로버츠 뉴욕 태스크포스(TF) 작전 책임자는 멕시코 기반의 '시날로아 카르텔'을 예로 들어 이미 아시아를 포함해 세계 50개국 이상에 뻗어있다고 말했습니다.
실제 시날로아 카르텔이 일본, 태국, 한국 등 아시아 시장을 공략 중이라는 내용은 외신 등을 통해 알려진 바 있습니다.
다만 그는 "미국 관점에서 흐름은 단순하다"며 "펜타닐 제조는 멕시코에서 이뤄지며, 전구체 대부분은 중국에서 온다"고 전했습니다.
중국 범죄조직은 자금 세탁 시장까지 장악했습니다.
이들은 뉴욕 퀸스와 브루클린에서 낮은 수수료를 앞세워 기존 콜롬비아 조직을 밀어내고 독점적 지위를 누리고 있습니다.
위안화와 달러를 맞교환하는 이른바 '미러링' 방식과, 달러 가치 연동 스테이블코인 '테더'를 활용한 자금 세탁도 주류가 됐습니다.
DEA는 뉴저지 지부에서만 최근 한 달간 작전으로 800만 달러(약 120억 원) 이상의 가상화폐를 압수했으며, 대부분이 테더였다고 밝혔습니다.
포켓몬·BMW 로고 달고…구매자 속이는 '껍데기 마케팅'
DEA에 따르면 최근에는 트레일러 강철 프레임 내부나 파파야 상자 받침대 틈에 마약을 숨기는 방식까지 등장했습니다.
이는 첨단 엑스레이로도 적발이 쉽지 않고, 탐지견이나 내부 첩보가 있어야 가능하다고 합니다.
DEA가 공개한 압수품 포장지에는 포켓몬, BMW, 프라다, 탈레반 등 각종 로고와 문구가 찍혀 있었습니다.
젊은층에 친숙한 이미지를 활용해 거부감을 낮추고 재구매를 유도하려는 전략이라는 설명입니다.
DEA 소속 화학자는 "가방 하나에서 20개가 넘는 로고가 발견됐지만 성분은 모두 똑같은 펜타닐이었다"며 "결국 구매자를 속이기 위한 껍데기 마케팅"이라고 말했습니다.
펜타닐 자체도 위험합니다.
원료 자체가 독성이 강하기에 제조 환경도, 연구 환경도 위험합니다.
DEA 화학자들은 음압 시설 안에서 보호장비를 착용한 채 극도로 조심스럽게 약물을 다루고 있습니다.
펜타닐은 소량 유출만으로도 치명적 사고로 이어질 수 있어 현장 요원들은 압수 단계부터 이중 봉투로 밀봉해 운반합니다.
DEA 화학자는 과거 탄저균 테러처럼 편지 봉투를 이용한 방식으로 악용될 가능성도 우려했습니다.
진화하는 펜타닐…"공중보건·교육 중요"
뉴잉글랜드주 특수요원 책임자 자로드 포겟은 "순수한 코카인을 구할 수 있던 시대는 끝났다"며 "'칵테일 마약'이 주류가 됐고, 그 어떤 성분도 신뢰할 수 없다"고 말했습니다.
DEA는 온라인 약국으로 위장한 웹사이트 상당수가 실제로는 중국·인도 기반 범죄조직의 '미끼'라고 경고했습니다.
일부 의료기업의 무분별한 원격진료와 남발하는 처방 관행 역시 문제로 지목됩니다.
DEA는 '알약 한 알이 목숨을 앗아갈 수 있다'(One pill can kill) 캠페인을 통해 출처가 불분명한 온라인 약 구매를 경고하고 있습니다.
다만 희망적인 신호도 있습니다.
미국의 연간 마약 사망자 수는 2023년 6월 11만 2천여 명으로 정점을 찍고 감소세로 돌아섰습니다.
2024년 10월 기준 8만 4천 명으로 줄었습니다.
타렌티노 지부장은 "법 집행만이 아니라 공중보건과 교육·예방 공조에 따른 성과"라고 강조했습니다.
그는 "펜타닐은 더 이상 단순한 마약이 아니다"라며 "미국 정부가 이를 WMD로 규정한 것은 이것이 우리 사회의 근간을 뒤흔드는 안보 위협이기 때문"이라고 덧붙였습니다.
(사진=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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