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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뒤통수 차관보'는 거짓…"사퇴 고민하겠다"도 손바닥 뒤집기 [이브닝 브리핑]

'뒤통수 차관보'는 거짓…"사퇴 고민하겠다"도 손바닥 뒤집기 [이브닝 브리핑]
장동혁 국민의힘 대표가 방미 기간 중에 미국 국무부의 차관보를 만났다는 것은 사실이 아니었습니다. 차관보라는 인사가 누구인지 알 수 없게 뒷모습만 찍힌 상태여서 국민의힘의 설명이 사실일지 의심이 가시지 않던 차였습니다. 어제 JTBC의 보도에 따르면, 사진에 등장하는 국무부 인사는 차관보가 아니라 차관의 비서실장인 개빈 왁스(Gavin Wax)였습니다. 이 사람이 보좌하는 차관은 사라 로저스 공공외교 담당 차관이고, 왁스의 직함은 영어로 Chief of Staff to the Under Secretary for Public Diplomacy입니다.
국민의힘이 '미 국무부 차관보 면담' 제목으로 배포한 사진

차관 비서실장 만나고 차관보 만났다고 설명..차관보와 차관보급(級)이 같아?

오늘 아침 장동혁 대표가 기자 간담회에서 해명한 내용을 보면, 만난 사람이 왁스 비서실장이라는 걸 사실상 시인하고 있습니다. 그러면서 장 대표가 한 말이 "직급을 정확하게 밝히면 누군지 특정되기 때문에 차관보급이라고 하는 것을, 표기하면서 실무상 착오가 있었던 것 같다"였습니다. 왁스 실장이 차관보는 아니고 차관보급이었는데 실수가 있었다는 것입니다. 이런 변명으로 넘어갈 수 있는 일인지 살펴보겠습니다. 우선 차관보와 차관보급(級)은 분명히 다릅니다. 누군가 업무차 방문한 회사에서 담당 부장을 만난 것과 부장급(級) 직원을 만난 것이 같을 수 있겠습니까? 정부에도 장관급(級) 공직자는 여럿이지만 그들이 장관일 수는 없습니다. 차관보라는 말은 공식적인 직위를 가리키는 것이고 그 사람의 책임과 권한의 수준을 알려줍니다. 반면 급(級)은 처우의 수준을 가리키는 말입니다. 그 차이를 구분하지 않는 것은 듣는 이를 오도하는 것입니다. 차관보가 아닌데 차관보를 만난 것처럼 오인하게 한 것이죠. 장 대표는 '국무부 차관보 만난 것'을 방미 성과로 설명했습니다.
장동혁 국민의힘 대표 기자간담회, 오늘

'차관보 면담' 오류 방치..신원 비공개 원했다지만 국무부가 공개

지난 20일 월요일 장 대표가 귀국한 뒤 문제의 사진을 둘러싸고 무수한 질문과 응답이 오간 과정에서, 장 대표가 말한 '실무상 착오'를 바로잡을 기회는 얼마든지 있었습니다. 언론이 미국 국무부에서 확인 받아 보도할 때까지 장 대표는 의도치 않은 언론의 '오보'를 방치했습니다. 물론 이 오보는 국민의힘에서 비롯된 것이었고, 국민의힘과 장 대표의 방치는 최소한 '미필적 고의'가 있었다고 할 수 있습니다. 장 대표는 문제의 사진에 등장한 인물이 비공개를 요청해서 신원을 밝힐 수 없고 이것이 외교 관례라고 강변했지만, 국무부가 한국 언론의 취재에 응해 신원을 공개했습니다. 장 대표의 애초 설명이 설득력을 잃었습니다. 사진에 등장하는 인사가 신원 공개를 원치 않았다는 말도 이제 와서는 의심이 생깁니다.
장동혁 대표가 방미 중 만난 개빈 왁스 국무부 공공외교 차관 비서실장 (출처: gavinwax.com)

'차관보급' 해명 진위도 살펴야..'부서 책임자 아닌 참모'가 요체

장동혁 대표는 자신이 만난 인사가 차관보급이라고 말합니다. 이 말의 진위도 따져봐야 합니다. 왁스 실장은 외교관이 아닙니다. 1993년생의 청년 보수 단체 출신인데 정무직 공무원이 된 것입니다. 트럼프의 정치 노선을 추종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고, 자신이 보좌하는 차관이 공공외교 담당인 만큼 한국의 제1 야당 대표를 만나준 것으로 보입니다. 국무부는 왁스 실장이 장 대표를 만난 자리에서 국무부의 공공외교 노력에 대해 강조했다고 설명했습니다. 왁스 실장이 보좌하는 사라 로저스 차관이 이달 초 방한했는데, 그를 응대한 한국의 카운터파트가 외교부의 공공외교대사였습니다. 공공외교대사는 한국의 직제로는 차관보급 내지 실장급입니다. 미국의 차관을 한국에서는 차관보급에서 맞은 것인데, 이유는 한국과는 다른 미국 정부의 직제를 알면 이해할 수 있습니다. 미국의 장관 아래에는 부장관(Deputy Secretary)이 있고, 이 자리가 한국의 차관에 해당합니다. 부장관 아래에는 차관(Under Secretary)이 있고, 그래서 한국의 차관보급 외교관이 응대한 것입니다. 종합해 보자면, 장동혁 대표는 한국 외교부 직제로는 과장급 공무원을 만난 것으로 볼 수 있습니다. 앞서 말씀드린 대로, 한국과 미국의 직제가 달라서 직위를 완전히 1대1로 대응시키기는 어렵습니다. 다만 왁스 실장의 직급은 미국 직제로 보자면 차관보(Assistant Secretary) 아래인 부차관보(Deputy Assistant Secretary)에 해당할 수도 있습니다. 중요한 것은, 왁스 실장이 권한을 갖고 일정한 규모의 부서를 지휘 운영하는 책임자인 차관보가 아니고, 차관이라는 책임자를 보좌하는 참모의 지위를 갖고 있다는 점입니다. 장 대표와 국민의힘이 이를 구분하지 못했던 게 아니라는 점은 오늘 기자들과 문답에서도 확인됐습니다. 자신들의 '착오였다'고 했으니까요.

국민의힘이 현 정부 출범 이후 최저치인 15%의 정당 지지도를 기록한 데는 장 대표 방미에 대한 국민의 실망과 분노가 분명히 작용했을 것입니다. 모를 리 없는 장 대표가 해명한다고 한 해명이 거짓으로 드러나면서 장 대표의 위기는 더욱 심각해지고 있습니다. 외교관 출신의 국민의힘 김건 의원은 오늘 SBS 라디오에 출연해, 미 국무부 차관 비서실장이 "우리나라 제1 야당 대표와 마주앉아 현안을 논의할 만한 급이 되느냐"는 질문을 받았습니다. 김건 의원은 "그렇다고 보지는 않는다"고 답하고, 인사 신원 비공개에 따른 거짓 논란에 대해서는 "자꾸 궁색하게 몰리게 되는 것 같다"고 말했습니다. 배현진 의원은 "만약 거짓말로 당비를 사용해 실체 없는 방미를 열흘간 했다면 당무감사 건"이라고 비판했습니다. 국민의힘은 한 해 수백억 원의 국고 보조금을 받습니다. 야당이라고 해서 아무런 통제나 감시 없이 아무렇게나 써도 되는 돈일 수 없습니다. 그래서 장 대표가 미국에 가서 누굴 만나고 무슨 얘기를 나눴는지 국민들은 물을 수 있고, 장 대표는 소상하고도 솔직하게 공개해야 합니다.
장동혁 대표, 오늘 기자간담회장 떠나는 모습

장동혁, 잇단 사퇴 요구에 "선거 승리에 도움 되는지 여러 고민하겠다"

차관보냐, 차관보급이냐 하는 논란은 장 대표가 사안의 중대성을 이해하지 못하고 우선 몇 마디 말로 넘어가려 들기 때문일 수 있습니다. 그런 일은 오늘 또 있었습니다. 기자 간담회에서 국민의힘 여기저기서 장 대표 사퇴 요구가 이어지는 것에 대한 질문이 있었습니다. 어제 제가 쓴 <이브닝 브리핑>에 윤상현 의원, 주호영 의원, 김진태 강원지사의 장 대표 사퇴 요구에 대해 썼는데, 오세훈 시장이 가세했습니다. 오 시장은 TV조선 유튜브 채널에 출연해, "현장에서 뛰는 후보들의 솔직한 심정은 장 대표가 좀 눈에 덜 띄었으면 좋겠다, 그게 도와주는 것이라는 입장"이라며 장동혁 대표를 향해 "이제 자숙이나 결단이 필요한 시점이 왔다"고 말했습니다. 이런 사퇴 요구 상황과 최저치를 기록한 당 지지도를 묶어 기자가 질문했는데, 장 대표의 답이 이렇게 돌아왔습니다.
"지지율과 관련해 제 거취 내지는 사퇴에 대한 이야기들이 있는데 오늘로 지방선거가 40일 남았습니다. 지선 40일 앞둔 시점에 당 대표에서 물러나는 것이 당 대표로서 책임을 진정 다하는 것인지, 그것이 진정 지방선거 승리에 도움이 되는 것인지 여러 고민을 하겠습니다." (장동혁 국민의힘 대표, 오늘 기자간담회 발언)
문자 그대로 보자면, 지방선거 승리라는 관점에서 당 대표직에서 물러나는 것에 대해 고민하겠다는 것입니다. 그렇지만 지금까지 장 대표의 행보를 잘 알고 있는 기자들은 '고민은 하겠다고 하지만, 물러날 리 없어'라고 대부분 생각했을 겁니다. 최저치 당 지지율과 잇따른 사퇴 요구, 그리고 거짓으로 드러난 '뒤통수 차관보' 사진 등으로 처지가 궁색해지다 보니 오늘 상황에서 밝힌 '성의 표시' 정도로 이해했을 겁니다.

배현진 "전향적 입장" 평가..장 대표 황급히 '사퇴 불가' 밝혀

그런데, 친한동훈계 서울시당 위원장인 배현진 의원이 이를 덥석 물었습니다. 기자회견에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이제까지 장동혁 대표의 입장과 태도를 비춰보면 사퇴할 수도 있겠다는 본인의 어떤 의지를 비춘 것 같아서 전향적인 입장이었다고 생각하고 (중략) 후보들과 당을 위해서 2선 후퇴든 사퇴든 결단할 수 있다는 의지를 처음으로 보여줬다고 생각합니다." (배현진 국민의힘 의원, 오늘 기자회견 발언)

배현진 의원이 장 대표의 말을 곧이곧대로 받아들여 이런 말을 했을 가능성은 크지 않다고 봅니다. 문자 그대로 해석해서, 당신이 '사퇴를 고민하겠다고 말했다'는 걸 다져 두려는 공격성 발언으로 보는 게 자연스럽겠죠. 그런데 이 말에 화들짝 놀란 것일까요? 얼마 지나지 않아 장 대표가 소셜미디어에 글을 올립니다.
내 거취에 대한 말이 많다.
당 대표가 된 이후로 지방선거 승리를 위해 달려왔다.
상황이 좋지 않다고 당 대표에서 물러나는 것은 책임지는 정치인의 모습이 아니다.
그런 정치는 장동혁의 정치도 아니다.
최선을 다해 지방선거를 마무리하고, 당당하게 평가받겠다.
방미에 대해서도 성과로 평가받겠다.
야당 대표로서 할 수 있는 것을, 해야 할 것들을 하기 위해 최선을 다했다.
시간이 지나면 성과도 보일 것이다.
(장동혁 국민의힘 대표 소셜미디어 게재 글)

사퇴를 고민하겠다고 한 지 반나절도 안 됐는데, 치열한 고민의 결과가 '사퇴 불가'였던 것일까요? 저는 그저 식언(食言)이었다고 생각합니다. 겉보기로는 식언이고, 본심으로는 애초에 사퇴 생각 없이 형국이 옹색해 했던 말을 황급히 주워 담은 것으로 봅니다. 이렇게 말의 무게가 없으니 권위(權威)가 끝없이 추락하고 사방에서 물러나라는 요구에서 벗어나질 못합니다. 이제부터라도 단기적인 임기응변으로 위기를 모면하려 들지 말고, 자신과 당의 위기가 어디에서 오는지 진솔하게 성찰하길 바랍니다. 이런 바람을 얘기하는 것은, 앞에서 얘기한 대로 국민의힘이 수백억의 국고 보조금을 받으며 유지되는 공당(公黨)이지, 그 누구의 정치적 이익에 봉사하는 사당(私黨)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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