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

"화폐가 불안할 때 금이 춤춘다"…2026년 금값의 향방은? [스프]

[지식의 발견] 김재원 역사학자

"화폐가 불안할 때 금이 춤춘다"…2026년 금값의 향방은? [스프]
⚡ 스프 핵심요약

금값은 전쟁·경제위기·정치 불안 등 미래 불확실성이 커질 때마다 역사적으로 상승해 왔으며, 현재도 지정학적 긴장과 사회 방향성 상실이 맞물려 금값 급등으로 이어지고 있습니다.

조선은 금광 개발을 통제했으나, 대한제국기 열강의 이권 침탈과 1930년대 대공황기 일본의 수탈 정책이 맞물리며 지식인까지 투기에 뛰어든 '조선판 골드러시' 광풍이 불기도 했습니다.

금은 현대에 와서 투자 수단으로 변모했으며, 특히 IMF 외환위기 때는 강한 국가주의 내면화로 국민들이 자발적 금 헌납 운동에 나섰습니다.

금값 오른 시기를 보면 역사적으로 다 이유가 있다?

역사적으로 위험할 때 언제나 금값이 올라갑니다. 미래가 불확실할 때 금값은 올라요. 현금 잘 돌아가고 국제관계 편안하고 정부 정책들도 안정적으로 흘러가면 화폐가 탄탄하게 경제를 돌릴 수 있는 거잖아요. 뭐하러 금값이 굳이 요동을 치겠어요. 그럴 이유가 없는 거죠.

지금 가지고 있는 화폐로 불안할 때가 오는 거죠. 그때마다 금값은 오릅니다. 화폐와 금은 동일하지는 않지만 화폐와 엇비슷한 가치를 갖고 있다고 역사적으로 봐왔었고 안전자산의 느낌으로 가져갈 수 있기 때문에 이때 올라가는 거죠.

여기저기서 전쟁 이야기도 들리고 국제사회에서 동아시아에서도 중국과 일본이 서로 으르렁거리고 타이완이 꿈틀거리고 중심을 잡아준다고 믿었던 미국도 뒷짐 지는 것 같으면서도 들어올 것 같기도 하고 어떻게 되지? 불안하기도 하고, AI니 뭐니 앞으로 뭐가 되지? 대한민국은 어떻게 가야 되지? 사회 전체가 어느 방향으로 가야 되는지 방향성도 못 잡고 있는 것 같고 불안하고.

이게 종합적으로 펼쳐지고 있는 시점이 2025년, 2026년 이 시점인 것 같아요. 그러다 보니까 금값이 치솟고 있는 거고, 역사적으로 금값이 치솟았었던 때들도 다 그런 때들인 거죠.


사람들은 언제부터 금을 좋아했을까?
Q. 옛날 사람들도 금을 많이 좋아했을 것 같은데 지금과 어떻게 달랐을까요?

금이 한정적이라는 걸 그때 사람들도 알고 있기 때문에 가치는 똑같이 높게 이야기합니다만, 권력과 연결되는 경우가 많습니다.

Q. 왕관 같은 것?

그렇죠. 단순히 비싸서 금관을 썼다기보다는 권력자들만 가질 수 있는 특수하고 귀한 소유물, 곧 권력관계의 상징으로 이어지기 때문에 금이 가치있다고 느껴졌던 거지, 지금 투자의 개념과는 달랐다. 이걸로 왕관도 만들고 장신구도 만들면서 권력을 과시하는 용도로 썼던 거죠. 지금이나 예전이나 금을 좋아했던 건 똑같지만 사용하는 방법은 달랐다.


한반도에 금이 많다?
Q. 우리나라에 금이 많이 있어요?

지금 우리가 알고 있는 금으로 먹고사는 나라들에 비해서 우리가 압도적으로 많은 건 아니에요. 세계적 기준으로 금이 꽤 많이 나는 나라인 건 맞습니다. 지금도요.

Q. 우리가 지금 유의미하게 금을 채굴하고 있진 않잖아요?

한국에서 나는 금의 특징 때문이에요. 흔히 금광 하면 산 안에 다이너마이트 폭파하면 금광석들이 무더기로 들어있어서 이걸 캐는 걸 생각하잖아요. 한국은 그렇게 금이 있지는 않아요.

Q. 조금씩 있어요?

널리 퍼져 있습니다.


조선이 금 캐는 걸 금지했던 이유는?
Q. 옛날에는 사람들이 막 금을 캤습니까?

삼국시대와 고려시대까지는 뜨문뜨문 캐고 금도 많이 생산해요. 조선시대부터는 금을 캐는 걸 금지합니다.

여러 가지 이유가 있는데 첫 번째는 금이 많다고 했잖아요. 뜨문뜨문 금광들이 펼쳐져 있거든요. 명나라나 청나라가 알았다면 조선이 바쳐야 할 주요 조공품 목록에 금이 있었을 겁니다. 그러면 조선은 금을 캐야 돼요. 조선이 금을 캐면 조선 안에서 소비되거나 수출할 수 있는 게 아니라 조공으로 내야 되거든요. 조선 입장에서는 금을 많이 캘 필요가 없죠. 받아오는 물건보다 금이 훨씬 가치 있다는 걸 조선이 알기 때문에 '굳이'라는 생각으로 일단 금을 많이 캐지는 않습니다.

두 번째는 금을 캐서 돈 버는 사람들이 생긴다면 누가 농사를 짓겠습니까? 90% 이상이 농사로 먹고살고, 농사를 짓지 않으면 국가 경제가 파탄이 나는데 금으로 돈 버는 사람이 생겼다는 소문만 돌아도 아무도 농사를 짓지 않겠죠. 농기구 버리고 소 팔고 달구지 팔고 낫 팔아서 금을 캐러 갔겠죠? 농업 생산량이 떨어지고 조선은 망했을 겁니다. 금 캐러 다니는 바람에. 그래서 조선이라는 나라에서는 금광 개발 자체를 막아요, 국가에서.

그러다가 조선말, 대한제국으로 넘어가는 과정에서 스스로 금광을 개발해서 금을 캐는 걸 선택하는 게 아니라 금광을 외국 열강에게 파는 걸 선택합니다. 국가에서 캐는 게 아니라 미국·일본에 금광을 통으로 파는 거예요.

Q. 그럴 여력도 없었던 거예요?

그렇죠.


조선의 금으로 미국과 일본이 돈을 많이 벌었다?
Q. 열강들이 금광을 파서 많이 가져가고 돈도 많이 벌었다?

미국에서 캤었던 운산금광이라고 하는 곳에서는 어마어마하게 금이 나왔습니다.

Q. 캐서 그냥 가져가요?

'금광을 개발하겠다'는 권리를 대한제국에서 염가에 사서, 여기서 나오는 금은 가져가는 겁니다. 이걸로 미국이 일단 재미를 보고요. 1905년부터는 통감부 시절로 들어가고 일제강점기로 넘어가잖아요. 일본이 나머지 금광들을 다 먹어치웁니다.

1910년에 일제강점기로 넘어가서부터는 계산을 합니다. 지금 금광 개발을 하는 게 우선일까? 금광을 뜯어가는 것보다 다른 걸 뜯어가는 게 당장 급하다는 생각을 해요. 가장 중요한 게 쌀이기도 했고, 쌀뿐 아니라 다른 이권들도 너무나도 많았으니까 그 이권이 더 우선이라는 생각에서 금광 개발은 1910~20년대까지는 어느 정도 진척되지는 않아요.

Q. 우선순위에서 밀렸다.

1920년대 후반으로 가면서 세계 경제가 안 좋아지기 시작합니다. 1929년이 되면 대공황으로 국제 경기가 완전히 무너진 거예요. 금값이 요동칩니다. 그러면 일본이 다시 계산하겠죠. 조선에 금 많이 나는데 우선순위에 밀렸었다. 다시 한번 계산했더니 이제는 캐는 게 채산이 맞는 거죠. 그래서 캐기 시작합니다. 1930년대로 들어가면 '조선판 골드러시'라고 불릴 만큼 식민지 조선이 금광 공사판으로 변해요.


한반도가 금광공사판 되다! '조선판 골드러시'의 시작은?
Q. 공사판이라고 말씀하시는 건, 다른 주체들도 팠다는 말씀이신가요?

일본이 조선에서 금광을 개발하려면 개발하는 사람들이 필요하겠죠. 그 사람도 조선인들입니다. 조선이 금광 개발을 막았던 이유와 연결돼요. 일본이 대공황을 이겨내는 과정에서 금광 개발을 조선에 적용시켜서 하려고 하니까 원래 농사짓거나 노동하던 사람들이 다 금 캐러 가는 거죠. 아무도 농사를 짓지 않습니다.

Q. 시스템이 어떻게 되는 거예요?

이게 굉장히 특이한 시스템인데, 땅 주인이 있고, 땅 주인과 금광 개발업자는 상관이 없습니다. 내가 금 캐고 싶으면 A지점부터 B지점까지의 금광 채굴권을 사는 겁니다. 땅 주인과 상관없습니다. 내가 여기 캘 거라는 걸 총독부에 신고하면 허락을 해줘요.

Q. 돈 주고 산다.

그렇죠. (채굴권으로) 금을 캘 수 있는 권한을 받으신 거예요. 여기에 금이 나올지 안 나올지 몰라요. 그런데 캐는 거예요.

Q. 로또보다 더한 거 아니에요?

한반도 땅은 확률이 생각보다 높은 거죠. 엄청나게 큰 금광은 아니더라도 파면 자주 나오기는 해요. '금맥을 발견했다' 신고하면 여기에서 금맥을 따라 금을 캘 수 있는 권리를 내가 갖는 겁니다.

Q. 거기에서 나온 금이 다 내 것이 되는 거예요?

그 권한을 갖고 있는 거예요. 가질 수 있습니다. 내가 채굴권을 가져가면 그걸 받아갈 수 있다.


채굴권 사고 금 캐러 가자! 금으로 대박 난 최창학 때문이었다?
Q. 시대적 분위기는? 사람들이 채굴권을 왜 그렇게 샀던 걸까요?

1920년대 중후반에 최창학이라는 사람이 있어요. 해방 직전까지 아마 조선인 중에서는 현금이 제일 많은 사람이었을 겁니다. 뭘로 벌었냐? 금으로 벌거든요. 원래 금 캐러 다니는 사람이에요, 심마니가 아니라 금마니. 금광을 돌아다니면서 금 캐러 다니는 사람. 곡괭이랑 삽만 들고 가요. 10년 가까이 그냥 파요. 안 나와도 파요.

Q. 10년 동안 안 나왔어요?

안 나왔어요. 100명이 같이 시작했는데 1년 지나고 2년 지나고 다 떨어져 나갑니다. 혼자 남아서 계속 파요.

Q. 10년 뒤에 결실을 맺은 거군요.

금광이 터져서 어마어마한 금광을 발견한 거죠. 여기서 나오는 금은 신청을 했으니까 최창학 거예요. 어떻게 돈을 버냐면, 이 금을 팔아서 벌지 않아요. 두 가지 방법을 씁니다. 하나는, 금광을 발견해서 지금 돈으로 몇백억을 받고 미쓰이라고 하는 일본 대기업에 넘깁니다.

두 번째는, 사람들의 마음을 좀 가지고 논 건데, 동네마다 돌아다니면서 금맥을 봐요. 그다음에 금광 (채굴권)을 신청해요. 그러면 사람들은 기대하는 거죠. '저번에 성공했던 최창학이 이 동네에 와서 금광을 신청했다' 그런 소문이 식민지 조선에 파다하게 퍼집니다. 최창학이라는 이름을 믿고 투자를 하는 거죠. 그렇게 돈을 모읍니다.

Q. '금 안 하면 바보인가' 이런 생각을 갖게 돼서 뛰어드는 것 아니에요?

맞습니다. 그런 분위기가 이 시기 1930년대 소설에 많이 등장해요. 김유정의 '금 따는 콩밭'이라든가 당시 채만식이 썼던 소설들. 왜 소설로 쓰이느냐. 노동자, 농민만큼 금 캐러 갔던 계층이 지식인입니다. 당시 이들을 '룸펜 프롤레타이아', 룸펜이라고 부르거든요. 배운 건 많아요. 고등보통학교, 대학, 전문학교 나오고 일본에 유학 갔다 왔습니다. 조선인이면 할 수 있는 일이 없어요. 이들이 금에 미쳐버립니다. 소설이고 시고 집어치우고 문학계가 통째로 금 캐러 가는 거예요.

Q. '한국판 골드러시'라고도 불러요?

이때 당시 '골드러시'라는 표현을 씁니다.

Q. 확률이 굉장히 낮지만 성공한 사람은 대박이 나는 거죠. 지금 주식·코인·부동산도 열풍·광풍이라고 표현 많이 하잖아요. 그때와 비슷한 점이 보이세요?

많이 보이죠. 오히려 비교하기에 적합한 건 비트코인 같은. 물론 비트코인도 긍정하는 분들이 있지만, 누군가는 투기로 바라보는 분들이 있잖아요. 당시에 금 캐러 가는 건 투기입니다. 성공할 확률도 낮고, 성공하더라도 당시의 구조 안에서 사실 일본 배불려 주는 거거든요. 그런 거에 목숨 걸고 뛰어드는 사람들이 늘어나는 거였으니까.


IMF 금 모으기 운동, 우리 국민들은 왜 그렇게 열성적이었나
Q. IMF 때 금 모으기 운동. 그때 우리는 왜 이렇게 금을 모았던 걸까요?

강력한 국가주의적 시스템 속에 오랫동안 살았기 때문으로 보여요. 국가의 위기는 곧 나의 위기라고 하는 혼연일체된 마음가짐을 내면화하고 체내화한 상황에서 국가의 위기가 닥치니까 '이건 나의 위기구나'. 그걸 체내화한 국민들이 '국가가 이걸 이겨내려면 나도 희생해야지'라는 생각을 자연스럽게 하게 되고 금 모으기 운동으로 나아갔던 걸로 보여요.

이 시기에 IMF를 겪거나 국제적 위기가 찾아왔었던 국가에서는 대부분 시위를 합니다. 그런데 국가의 정책적 방향성의 잘못으로 국가가 위기에 빠졌을 때 대한민국 국민들이 선택한 건 희생해서, 집에 있는 금이라도 팔아서 국가를 위해 헌납하겠다는 거잖아요.
이 콘텐츠의 남은 이야기가 궁금하다면 하단 버튼 클릭! | 스브스프리미엄 바로가기 버튼
Copyright Ⓒ SBS. All rights reserved. 무단 전재, 재배포 및 AI학습 이용 금지

많이 본 뉴스

스브스프리미엄

스브스프리미엄이란?

    댓글

    방금 달린 댓글
    댓글 작성
    첫 번째 댓글을 남겨주세요.
    0 / 300

    댓글 ∙ 답글 수 0
    • 최신순
    • 공감순
    • 비공감순
    매너봇 이미지
    매너봇이 작동 중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