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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천 흑역사' 기억 스멀스멀…반전 이룰까? [이브닝 브리핑]

'공천 흑역사' 기억 스멀스멀…반전 이룰까? [이브닝 브리핑]

공천이 갈랐던 선거 결과

장면 1) 2000년 16대 총선 때입니다. 당시 한나라당 이회창 총재는 당내 중진 43명을 전격적으로 컷오프 했습니다. 언론에서 '공천 학살'이라 부를 정도였습니다. 김윤환, 이기택 등 당의 상징적인 거물들이 대거 배제됐습니다. 거센 반발과 탈당이 이어지며 격렬한 내홍에 휩싸였습니다. 거물들의 빈 자리는 오세훈, 원희룡, 남경필 등의 '젊은 피'로 대체됐습니다. 결과는? 국민에게 "기득권을 내려놓고 변하고 있다"는 강렬한 메시지를 주는 데 성공했습니다. 그리고 불리하다던 예측을 뒤집고 원내 1당을 차지했습니다.

장면 2) 2016년 20대 총선을 앞두고 한나라당 후신인 새누리당에서 전례 없는 해프닝이 벌어집니다. 이른바 '진박 감별사' 파동이 터졌습니다. 친박계였던 공관위가 유승민 의원 등 비박계 중진들을 자르고 친박 인사를 심으려 했습니다. 김무성 당시 대표가 이에 반발해 당 직인을 들고 잠적했습니다. '옥새 들고 나르샤' 사건입니다. 보수 지지층은 새누리당에 환멸을 느꼈습니다. 180석을 호언장담하던 분위기가 한순간에 뒤집혔습니다. 결국 민주당에 1당 자리를 내어주는 충격적인 패배를 당했습니다.

'공천 혁신'과 '사천', 구별 기준은?

2000년에 '공천 학살'이라며 당 내부 반발이 거셌지만 국민 생각은 달랐습니다. 컷오프의 목적이 '특정 계파 심기'가 아닌 '세대 교체'로 받아들였습니다. 당의 공천 갈등을 '건설적 파괴'로 인식했습니다. 지지층은 갈라지거나 돌아서는 대신 '물갈이'에 환호했습니다. 해당 선거에서 이기는 것은 물론 이때 들어온 인사들은 이후 상당 기간 당의 핵심 자산으로 자리매김했습니다.

반면 2016년 공천은 '혁신'이라는 탈을 쓴 '계파 보복'이나 '낙점'으로 비춰졌습니다. '신선한 피의 수혈'이 아닌 '당 사유화를 위한 포석'이라는 비난이 비등했습니다. 중도층은 지지 정당을 바꿨고 핵심 지지층까지 투표장을 외면했습니다.

결국 '공천 혁신'과 '사천'을 가른 기준선은 '국민의 납득'이었습니다. 당이 추구하는 변화, 혁신이 시대 정신에 맞는지, 대안으로 내놓은 인물들이 그런 시대 정신을 표상하는지, 변화를 추진하는 당 수뇌부의 의도가 자신들의 이해를 떠난 당을 위한 것인지 국민은 민감하게 알아챘습니다. 2000년과 2016년 당의 운명은 그렇게 엇갈렸습니다.
이정현, 주호영

대구에서 터져 나온 '파열음'

국민의힘의 아성으로 그나마 광역단체장 배출 가능성이 높다고 평가 받는 대구에서 공천과 관련한 파열음이 터져 나왔습니다. 이정현 국민의힘 공천관리위원장이 대구시장 후보 공천에 나선 주호영 의원 등 중진 의원들을 향해 "꿩도 먹고 알도 먹고 털까지 다 가져가려 한다."며 "후배들에게 길을 열어달라"고 직격했습니다. 특히 주 의원이 "호남 출신이 대구를 얼마나 아느냐"고 말한 데 대해 강도 높게 맞받았습니다. "지역감정을 방패 삼아 혁신을 막는 정치와 싸우겠다."며 "(호남에서 보수를 지켜온) 제가 영남 공천을 말하면 안 되고, 특정 지역 출신만 특정 지역 공천을 말할 수 있다는 발상 자체가 맞느냐"고 공박했습니다. 주호영 의원이 최근 자신의 SNS에서 이 위원장을 향해 "호남 출신이 대구를 얼마나 안다고, 대구를 얼마나 만만하게 봤기에 이런 식으로 대구의 중진들을 짓밟고, 대구를 떠났다가 40여년 만에 돌아온 사람(이진숙 전 방통위원장)을 낙하산처럼 꽂으려 하나"라고 공격하자 맞대응한 것입니다.

하지만 이 위원장의 현역 의원 컷오프 움직임에 대해 당 안팎 시선이 곱지만은 않습니다. 대구시장 출마를 선언한 3선의 추경호 의원은 SNS를 통해 "여론조사 1위를 달리는 자신을 경선조차 배제하려는 것은 대구를 민주당에 상납하려는 행위"라며 "대구시장 공천의 전권이 언제부터 공관위원장 개인의 호주머니 속에 있었나"라고 따졌습니다. 대구에 지역구를 둔 우재준 청년최고위원은 한 라디오 방송에 나와 "적어도 '윤어게인' 세력을 상징하는 분들의 지지를 받아서 선거운동을 하고 있는 이진숙 후보야 말로 첫 번째 컷오프 대상이 돼야 한다."고 꼬집었습니다. 국민의힘 대구 지역 의원 일부는 오늘 오후 국회에서 장동혁 대표와 만나 현역 컷오프에 대한 입장을 전하기로 하는 등 집단행동 움직임도 있습니다. 공천이 실제 이뤄지기도 전에 내홍부터 불거졌습니다.
6·3 지방선거 부산시장에 도전하는 박형준 부산시장(오른쪽)과 국민의힘 주진우 의원 (사진=연합뉴스)

계속 나오는 질문 "공천의 원칙은?"

대구에서 파열음이 크게 일었지만 이미 공천을 둘러싼 국민의힘 내분은 계속돼 왔습니다. 부산 시장 공천을 놓고 박형준 현 시장을 배제한 채 주진우 의원을 전략 공천하려다가 당 내부의 강한 반발에 밀려 철회한 바 있습니다. 충북지사 공천에서는 김영환 현 도지사의 컷오프를 단행했습니다. 김 도지사 측은 강하게 반발하고 있습니다. 오세훈 서울시장은 출마 포기를 걸고 당 혁신을 요구하다 경선 참여로 선회한 바도 있습니다.

표면적으로는 당 중진이나 현직을 최대한 배제해 새로운 인물로 새바람을 일으키겠다는 공관위 움직임과 당선 가능성이 우선인 만큼 중량감 있는 인물들을 내세워야 한다는 당 중진들의 반발이 맞부딪히는 모습입니다. 하지만 공천에 있어 당과 지지자, 국민이 납득할 만한 원칙과 기준이 보이지 않는다는 데 근본적인 원인이 있다는 지적이 나옵니다.

이 위원장은 '세대교체', '기득권 배제'를 앞세우고 있습니다. 하지만 김두겸 울산시장이나 김진태 강원지사, 박완수 경남지사는 단수 공천한다고 발표했습니다. 최민호 세종시장과 이장우 대전시장, 김태흠 충남지사도 단수 공천했습니다. 국민의힘 강세 지역인 경북은 이철우 경북지사와 3선의 임이자 의원이 별 불이익 없이 경선에 나갔습니다. 내세운 공천 원칙이 일관되게 적용되지 않는다는 얘기가 나옵니다.

또 상기한 우재준 청년최고위원의 지적대로 대구 지역 공천의 경우 이진숙 전 방통위원장에게 결과적으로 유리하게 돌아가고 있다는 점도 지적 대상입니다. 알다시피 국민의힘은 이대로는 지방선거를 치를 수 없다며 의원 전원 명의로 '절윤 결의문'을 채택했습니다. 장동혁 대표 등 수뇌부도 함께 이름을 올렸습니다. 당의 마지막 입장이라는 추가 설명까지 붙였습니다. 하지만 이 전 방통위원장은 절윤에 반대하며 '윤어게인' 세력의 핵심으로 평가받는 유튜버 고성국씨와 밀접한 관계를 유지하고 있습니다. 이 전 위원장이 대구 시장 후보로 최종 결정될 경우 국민의힘의 '절윤'은 헛구호로 전락할 따름입니다. 그럼에도 이정현 공관위원장이 무리한 컷오프로 이진숙 전 위원장을 밀어주는 모양새의 공천 관리를 한다면 '원칙과 기준'의 순수성은 더욱 큰 의심을 받을 수밖에 없습니다.
이진숙

'공천 혁신' 납득시키려면

공천은 선거 승리의 기본이고 성공적 공천의 핵심은 국민이 납득할 만한 원칙과 기준이라는 점, 앞서 사례를 통해 확인했습니다. 국민의 동의를 얻을 수 있는 공천의 원칙과 기준은 다음 세 가지로 정리할 수 있습니다. 첫째는 일관성입니다. 모든 경선 참가자에게 동일한 잣대를 적용해야 정당성을 얻을 수 있습니다. 특정 인물을 위해 예외를 뒀다는 인상을 주면 국민은 납득하지 못할 것입니다. 둘째는 컷오프된 중진보다 경쟁력 있는 신인이 와야 한다는 점입니다. 인지도나 능력은 검증되지 않았다 하더라도 적어도 잠재력을 인정받을 수 있어야 합니다. '낙하산'이라는 의심을 주는 순간 전략 공천은 패배로 이끌 덫이 될 뿐입니다. 셋째는 공천을 통해 제시하는 비전이 있어야 합니다. 국민의힘은 무엇보다 과거에 대한 뼈저린 반성과 새출발이라는 비전을 반드시 포함해야 합니다. 따라서 스스로 밝힌 '절윤'의 진정성조차 의심을 받는다면 더 이상 미래는 없습니다.

지금 대구 공천 과정을 저 세 가지 요소에 대입해보면 어떻습니까? 국민이 납득할 만한 원칙과 기준을 국민의힘이 고수하고 있다는 판단이 들까요? 만약 이정현 위원장의 행보가 "이기는 공천"이 아니라 "내 사람 심기"로 결론 난다면, 국민의힘에 미칠 악영향은 대구라는 텃밭에서의 승패에 그치지 않습니다. 전국적으로는 '여전히 정신 못 차린 오만한 야당' 프레임에 갇히게 될 것입니다. 이 위원장이 대구시장 공천부터 천근의 책임감을 갖고 반드시 '공천 혁신'이라는 국민의 납득을 이끌어내야 하는 이유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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