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일(한국시간) 미국 로스앤젤레스 돌비극장에서 열린 제98회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영화 '원 배틀 애프터 어나더'가 작품상과 감독상, 남우조연상 등 6개 부문의 트로피를 거머쥐며 오스카 레이스의 화려한 피날레를 장식했다.
당초 아카데미 역대 최다인 16개 부문 후보에 오른 '씨너스: 죄인들'과의 팽팽한 결쟁이 예상됐지만, '원 배틀 애프터 어나더'는 폴 토마스 앤더슨 감독의 물오른 연출력과 주제의식, 완성도 면에서 아카데미 위원들의 마음을 사로잡았다.
'원 배틀 애프터 어나더'는 지하조직에서 활동하다 정체를 숨긴 채 살고 있던 주인공이 자신의 숙적에게 납치된 딸을 구하러 나서는 내용의 영화다. 폴 토마스 앤더슨 감독은 토머스 핀천의 소설 '바인랜드'(Vineland)를 각색해 미국의 백인 우월주의와 이민정책을 통렬하게 풍자했다.
폴 토마스 앤더슨(Paul Thomas Anderson) 감독은 국내에 PTA라는 약칭으로 유명한 할리우드 거장이다. 1996년, 25살의 나이에 영화 '리노의 도박사'로 데뷔한 폴 토마스 앤더슨 감독은 단번에 미국 평단의 주목을 받았다. 이는 시작일 뿐이었다.
1999년 '부기나이트', 2000년 '매그놀리아', 2003년 '펀치 드렁크 러브', 2008년 '데어 윌 비 블러드', 2013년 '마스터', '2015년 '인히어런트 바이스', 2018년 '팬텀 스레드', 2022년 '리코리쉬 피자'까지 단 한 번도 관객을 실망시키지 않으며 만드는 작품마다 호평 일색의 반응을 끌어냈다.
2008년 '데어 윌 비 블러드'로 아카데미 작품상과 감독상 등 8개 부문 후보에 올랐지만 역대급 경쟁작인 '노인을 위한 나라를 없다'를 만나 남우주연상(다니엘 데이 루이스)만 받는데 그쳤다. 그 전후로 폴 토마스 앤더슨 감독은 작품상과 감독상, 각본상 등 총 14차례 아카데미 시상식에 노미네이트 됐지만 단 하나의 트로피도 가져가지 못했다.
마틴 스콜세지와 비슷한 행보였다. 스콜세지가 수십 년간 수많은 명작을 만들어내고도 2007년 '무간도' 리메이크작인 '디파티드'로 작품상, 감독상, 각색상 등을 받은 것처럼 폴 토마스 앤더슨도 데뷔 30년 만에 아카데미와 뒤늦은 인연을 맺었다. 30년간 오스카 무관이었지만 '원 배틀 애프터 어나더'를 통해 시상식 최고상인 작품상뿐만 아니라 두 개의 개인 트로피(감독상, 각색상)까지 거머쥐었다.
물론 '원 배틀 애프터 어나더'가 폴 토마스 앤더슨의 최고작이냐고 묻는다면 그건 아니다. 다만 이견이 없는 수작임은 틀림없다. 폴 토마스 앤더슨은 실패한 혁명가인 밥이 납치당한 딸을 되찾는 이야기를 통해 현 미국 사회를 투영하고, 동시대의 정치적 갈등과 사회적 불안까지 그려냈다. 비판과 문제의식만 던지는 작품이 아니라 미래 세대를 향한 희망과 불씨를 살려 놓음으로써 보다 큰 담론을 제시한다.
최근 정치·사회적 메시지를 투영하는 작품에 높은 점수를 주는 아카데미의 기류와도 일치한다. '원 배틀 애프터 어나더'는 반정부단체 '프렌치 75'가 이민자를 구출하는 작전으로 문을 여는데 최근 미국의 이민세관단속국(ICE)의 무분별한 민간인 사살과 그에 대항하는 시민들과 맞물리며 다시금 주목받기도 했다.
소재와 주제로 인해 정치 선전물에 가까운 영화라고 생각할 수 있지만 폴 토마스 앤더슨 감독이 만든 영화 중 가장 상업적인 영화다. 영화 시작부터 끝까지 긴장감과 속도감을 잃지 않는 영화로 범죄와 액션, 스릴러 등 장르적 쾌감이 상당하다.
이 작품은 1억 3천만 달러의 제작비를 투입해서 전 세계에서 2억 달러가 넘는 흥행 성적을 올렸다. 독립영화로 분류돼 왔던 종전의 폴 토마스 앤더슨 감독의 작품들과는 기획과 규모부터 달랐다.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 숀 펜, 베네치오 델 토로 등 할리우드 대표 연기파 배우들이 최고의 연기력을 발휘했으며 올해의 신인이라 할 수 있는 체이스 인피니티를 발굴해 영화의 신선도를 높였다. 그 결과 '원 배틀 애프터 어나더'는 올해 아카데미 시상식에 신설된 캐스팅상 부문 초대 수상의 영예까지 안았다.
재미와 의미 모두 잃지 않은 최고 완성도의 영화에 관객들도 공감했고, 물오른 폴 토마스 앤더슨 감독의 연출력에 평단은 열광했으며, 14차례나 후보에 올려놓고 홀대해 왔던 아카데미는 마침내 거장의 세공술을 인정했다.
-다음은 제98회 아카데미 시상식 수상자(작)-
△작품상 : '원 배틀 애프터 어나더'
△감독상 : 폴 토마스 앤더슨('원 배틀 애프터 어나더')
△남우주연상 : 마이클 B. 조던('씨너스: 죄인들')
△여우주연상 : 제시 버클리('햄넷')
△각본상 : 라이언 쿠글러('씨너스: 죄인들')
△각색상 : 폴 토마스 앤더슨('원 배틀 애프터 어나더')
△남우조연상 : 숀 펜('원 배틀 애프터 어나더')
△여우조연상 : 에이미 매디건('웨폰')
△촬영상 : 오텀 듀럴드 아카포('씨너스: 죄인들')
△편집상 : 앤디 저젠슨('원 배틀 애프터 어나더')
△국제장편영화상 : '센티멘탈 밸류'(노르웨이)
△의상상 : 케이트 홀리('프랑켄슈타인')
△분장상 : 마이클 힐, 조던 새뮤얼, 클리오나 퓨리('프랑켄슈타인')
△미술상 : 타마라 데버렐, 쉐인 뷰우('프랑켄슈타인')
△주제가상 : 골든('케이팝 데몬 헌터스')
△음악상 : 루드비히 고란손('씨너스: 죄인들')
△단편 다큐멘터리상 : '텅 빈 모든 방'
△장편 다큐멘터리상 : '푸틴에 반대하는 모든 사람'
△음향상 : 'F1 더 무비'
△시각효과상 : 조 레터리, 리처드 바네함, 메아바타('아바타: 불과 재')
△단편영화상(공동 수상) : '더 싱어스', '투 피플 익스체인징 설라이버'
△장편 애니메이션상 : '케이팝 데몬 헌터스'
△단편 애니메이션상 : '진주눈물을 흘리는 소녀'
△캐스팅상 : 카산드라 콜루쿤디스('원 배틀 애프터 어나더')
(SBS연예뉴스 김지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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