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0:00 "손톱만큼의 잘못도 없는데"…억울한 옥살이
02:13 "그런 제보를 한 적이 없어요"…유령인가? 충격과 공포
03:37 옥중에서 스스로 밝혀낸 진범 '김 사장'
05:29 갑자기 시작된 의문의 전화, 그리고 황당한 경찰
1. "손톱만큼의 잘못도 없는데"…억울한 옥살이
대한민국에서 검찰과 법원 관련 사건 정보가 가장 많이 그리고 가장 빨리 유통되는 곳이 바로 '서초동'입니다. 하루는 한 사건 관련 판결문의 정보를 입수할 수 있었습니다. 핵심부터 말씀드리면, 법원이 한 사건에서 무죄를 선고하면서 이 사건의 진범이 '누구누구다'라고 지목을 했다는 겁니다. 제 입장에선 굉장히 이례적인 판결이었습니다. 왜냐하면, 형사 법정의 대원칙은 많은 범죄자를 잡는 게 아니라 '100명의 범죄자를 놓치더라도 1명의 억울한 피해자를 만들지 말자' 이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보통 무죄를 선고할 때는 '증거가 부족하다' 정도의 언급만 하지 '이 사건의 진범이 사실은 누구다'라는 언급을 하지는 않습니다. 이 사건 판결문의 주인공은 A 씨입니다. A 씨는 불법 사설 게임장의 업주로 몰려서 징역 1년을 선고받았습니다. 수사 과정부터 재판까지 A 씨는 내내 결백함을 토로했습니다.
[A 씨/'억울한 옥살이' 피해자 : 손톱만큼의 잘못도 없는 내가 구속된다는 생각을 하면서 온몸에 힘이 다 빠지고 아무런 생각이 안 날 정도니까 억울한 징역을 살아본 사람들만이 이런 감정을 이해할 거에요. 아마.]
하지만 경찰 그리고 검찰 그리고 1심 법원까지도 A 씨의 주장을 믿지 않았습니다. 억울함에 A 씨는 옥중에서 항소했고 2심 재판부터 결론이 뒤집혔습니다. 2심 재판부는 A 씨가 유죄라는 증거가 없다면서 무죄를 선고했습니다. 그러면서 이 사건의 진범이 사실은 수사 선상에서 벗어났던, 애초에 수사도 받지 않았던 '김 사장'이란 인물일 수 있다라고 콕 집어서 지목했습니다.
[이승태/변호사 : 'A가 무죄다'라고만 한 것이 아니라 억울한 사람이 생기지 않도록 그 판결문에 'B가 진범일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는 문구를 넣어서 경고해준 거나 마찬가지죠. 다시 수사하지 않을 수가 없는 사건입니다.]
대법원도 이 사건 판결에 문제가 없다면서 지난해 5월, 무죄를 확정 지었습니다.
2. "그런 제보를 한 적이 없어요"…유령인가? 충격과 공포
판결문을 보고 도대체 A 씨가 어쩌다가 이런 일에 휘말렸는지 더 궁금해졌습니다. 그래서 고민의 여지 없이 A 씨가 있는 충남 당진으로 향했습니다. A 씨의 입으로 직접 설명을 들어보니 이 사건은 '충격과 공포' 그 자체였습니다. 우선 경찰의 수사는 1년 반 정도 이어졌습니다. 그런데 A 씨가 진범이라고 지목하는 증거는 매우 빈약했습니다. 제가 수사 기록을 입수해서 살펴보니, 불법 게임장의 종업원들도 공범으로 함께 기소가 됐는데, 이 사람들 중에 한 명도 A 씨가 이 사건 게임장의 실소유주라고 진술한 적이 없었습니다. A 씨가 불법 게임장의 소유주라고 지목한 인물이 딱 한 명 있었습니다. 그 인물은 바로 익명의 제보자였습니다. 그리고 그 익명의 제보로 이 사건 수사가 시작됐습니다. 그런데 이 제보자, 검찰 측 증인으로 법정에 섰는데 법정에서는 전혀 다른 증언을 내놨습니다. 자기는 이 사건 게임장에 가 본 적도 없고 이 사건을 경찰에 제보한 적도 없다고 밝힌 겁니다. 법정 증언이 사실이라면 수사의 단초를 제공했던 익명의 제보는 완전한 허위입니다. 그러니까 첫 단추부터 잘못 꿰진 수사가 억울한 누명으로 이어진 겁니다.
3. 옥중에서 스스로 밝혀낸 진범 '김 사장'
물론 수사기관이 오류를 바로잡을 기회는 있었습니다. 바로 '범죄 수익'입니다. 보통 범죄 수익의 흐름을 쫓다보면 특정 사건의 진짜 배후에 대한 단서나 실마리가 드러나기 마련입니다. 그런데 1년 반 동안 수사를 하면서 경찰 그리고 검찰 둘 중에 어느 누구도 이 사건의 범죄 수익의 흐름을 제대로 쫓지 않았습니다. 대신 A 씨가 억울함을 풀기 위해서 마치 영화처럼 옥중에서 변호인의 조력을 받아서 범죄 수익의 흐름을 쫓기 시작했습니다. 방법은 간단합니다. 먼저 이 사건 게임장의 바지 사장을 법정에 세웁니다. 그다음에 바지 사장에게 그날 하루하루 나온 범죄 수익을 누구에게 전달해줬는지 묻습니다. 그러면 바지 사장이 전달해준 사람이 또 법정에 나오고요. 그러다 보면 그 돈을 받아서 또 다른 누군가에게 송금해 준 '송금책'이 나옵니다. 그럼 그 사람을 잡아서 또 증인을 세우면 송금책으로부터 돈을 받아서 또 다른 누군가에게 돈을 전달해 준 '전달책'이 나옵니다. 이렇게 법정에서 1명씩 타고 타고 타고 가다 보니까 범죄 수익이 '김 사장'이란 인물에게 흘러간 것이 드러났습니다. 물론 김 사장은 이때는 이미 종적을 감춘 상태라서 재판에 부를 수는 없었습니다. 하지만 김 사장 대신 김 사장의 아내를 증인으로 세웠고, 김 사장의 아내는 남편이 신용불량자라서 자신이 범죄 수익을 자신의 계좌로 대신 받아 전달해 줬다라고 증언했습니다. 수사기관이 해야 할 일을 A 씨가 대신 해냈고 덕분에 A 씨는 2심에서 무죄를 받으면서 8개월 만에 억울한 옥살이를 끝낼 수 있었습니다.
4. 갑자기 시작된 의문의 전화, 그리고 황당한 경찰
이렇게 대법원 판결이 나오니까 A 씨는 모르는 번호로부터 전화를 받기 시작했습니다. 그 전화 내용은 '공소시효까지는 문제 삼지 말라'는 거였습니다.
[A 씨/'억울한 옥살이' 피해자 : '공소시효가 안 지나고 아직 경찰서를 들어가면 안 되는 상황이니 좀 지나서 한 번 만나자'라고…]
이거 누가 봐도 김 사장이 한 전화 같은데, 매번 바뀌는 번호로 오다 보니까 민간인인 A 씨가 직접 추적할 수가 없었습니다. 그래서 저랑 A 씨가 경찰에 이 사건을 좀 다시 수사해 달라고 찾아가 봤더니, 경찰은 김 사장이 어디 있는지 모르겠다며 수사를 중단시킨 상태였습니다. 그래서 저희가 김 사장의 추정 도피처와 관련된 정보들을 경찰에 넘겼는데 그런데 더 황당한 답변이 돌아왔습니다.
[사건 담당 경찰관 : 112로 전화를 하셔서 '여기 수배자가 사는 거 같다'라고 신고를 하시면 경찰관이 출동해서 나갈 거예요. 그러면 (수사) 재개가 돼요.]
억울한 누명을 쓴 피해자에게 직접 범인을 찾아서 신고하라고 경찰이 안내한 겁니다. 제가 처음 이 사건 취재를 할 때만 해도 제가 기자임을 밝히지 않고 서울에서 내려온 먼 친척 관계 정도로 저를 소개했습니다. 하지만 제가 이제 기자임을 밝히고 취재를 시작하자 경찰의 태도가 180도 바뀌었습니다. 자신들이 대응을 잘못했음을 인정하고 이 사건을 다시 수사하겠다고 밝힌 겁니다.
[A 씨/'억울한 옥살이' 피해자 : 힘없고 '빽' 없는 사람은 이렇게도 되는가 보다는 생각도 들고 저 말고 다른 사람들이라도 이런 일이 없으면 좋겠어요.]
첫 번째 보도가 나가고 유튜브에 한 2300개가 넘는 댓글이 달렸습니다. 댓글 중에 눈길이 가는 건 '이제 앞으로 수사권 조정을 해서 경찰이 수사권을 쥘 텐데 정말 우리 괜찮은 거냐?' 라는 내용의 댓글이었습니다. 그런데 이번 사건에 한정해서 A 씨의 억울한 옥살이의 책임이 경찰에만 있는 것은 아닙니다. 경찰과 검찰 그리고 법원 모두가 이 옥살이의 공범이었습니다. 그래서 제가 이번 취재를 하면서 느낀 건 특정 권한을 한쪽에 지나치게 집중시키기보다는 서로 권한을 분산시켜서 서로가 견제할 수 있는 사법체계를 만드는 게 중요하다라고 느꼈습니다. 지금의 수사권 조정 방향은 특정 주체에게 권한을 집중시키는 것이기 때문에 올바른 방향이라기보다는 오히려 역행하고 있는 것 아닌가 이런 생각이 들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경찰이 김 사장에 대한 재수사를 결정한 만큼 경찰과 검찰 그리고 법원이 똑같은 실수를 반복하지 않도록 끝까지 지켜보도록 하겠습니다.
(취재 : 안상우, 구성 : 신희숙, VJ : 김준호, 영상편집 : 류지수, 디자인 : 양혜민, 제작 : 디지털뉴스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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