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

[취재파일] '자사주 의무 소각'은 정치 아닌 정책…남은 과제는?

코스피 6천 돌파와 3차 상법개정의 파장

코스피가 사상 첫 6천을 돌파하면서 축포가 터진 날, 우리나라 기업 환경을 획기적으로 바꿀 또 하나의 법 개정안도 국회를 통과했다. 상장기업의 자사주 소각을 의무화하는 내용의 3차 상법개정으로 이른바 '코리아 디스카운트'를 해소해 소액 주주들의 권리가 강화될 전망이다. 하지만 기업들의 우려도 적지 않다. 이번 법 개정이 의도한 경제효과를 내기 위해선 꼼꼼한 후속 관리와 미세 조정이 필수적이다. 정치가 아닌 정책이기 때문이다.

상법 개정안 통과한 날 코스피 6천..기대감 넘친 시장

자사주 의무 소각을 골자로 하는 3차 상법 개정을 앞두고 이미 관련 종목의 주가도 가파르게 올랐다. 그만큼 그동안 기업들의 자사주 보유에 대한 소액주주들의 불만이 많았기 때문이다. 자사주 보유비중이나 소각 규모가 많은 기업들, 대기업 지주회사, 금융지주사나 증권사 주가가 올해 들어 많이 올랐다.

자사주는 시장에 유통되고 있는 자기 회사의 주식을 다시 사서 보유하는 것이다. 최대주주나 기업 오너가 사재로 사는 게 아니고 회사 돈으로 산 것이다. 그래서 보유해도 의결권은 없는 주식이다. 이런 자사주를 소각하면 유통되는 주식수가 줄어들기 때문에 남은 주식의 가치가 오른다. 예를 들어 100주가 있는데 10주를 소각하면 나머지 90주는 그만큼의 가치를 나눠 갖기 때문에 'EPS', 즉 '주당순이익'이 늘어난다. 또 기업의 자본이 줄어드는 거라 'ROE' 자기자본이익률이 높아진다.
취재파일 0225

1년 이내 소각 안하고, 주총 승인 없이 보유하면 불법

기업이 자사주를 매입하면 주가가 오를 때가 많다. 문제는 주주들을 위해 자사주를 샀다고 해놓곤 소각을 안 하는 기업들이 많았다는 점이다. 마치 기업 것인지 오너의 것인지 불분명한 성격으로 자산처럼 갖고 있다가 필요할 때 '쌈짓돈'처럼 쓰는 게 문제였다. 연구개발, 시설투자처럼 기업 가치를 위해 쓰면 차라리 괜찮은데, 최대주주의 지배력이 위험할 때 우호 지분 형성을 위해 매각하는 사례가 많았다. 특수 관계인, 친인척에게 넘기는 경우도 있었다. 자사주를 이렇게 팔면, 그동안 유통되지 않던 주식이 풀리기 때문에 주가하락으로 주주들이 피해를 보게 된다. 신주 발행처럼 기존 주주들에게 동의를 받거나 매수 우선권을 줘야하는데 마음대로 처분한 것이다. 그래서 소각을 강제하는 법 개정이 필요한 상황이 됐다.

이번 상법 개정에 따라, 기업들은 '신규로 취득한 자사주는 1년 이내 소각'해야 한다. '기존에 보유한 자사주는 1년 6개월 이내 역시 소각'해야 한다. 주주총회에서 사유를 설명하고 승인을 받지 않았는데 계속 보유하면 불법이 되고 과태료가 부과된다. 여당은 공공부문이나 방송, 통신처럼 외국인지 지분 제한이 있는 기업은 3년 내 처분하는 유예조치를 뒀다. 예를 들어 KT 같은 경우에 자사주를 소각하면 외국인 지분이 제한선인 50%를 넘을 수 있기 때문이다.
취재파일 0225

"유일한 경영권 방어수단" 경영계의 우려는 왜?

3차 상법 개정안 논의 과정에서 경제단체를 중심으로 재계는 강한 우려를 표시해왔다. 야당이 반대하는 논리도 같은 것이다. 경영계의 입장을 단순화해 정리하면 '그동안 원죄는 있었지만, 자사주가 없으면 현실적으로 사모펀드나 해외 투기자본의 공격에 경영권을 방어할 수단이 없다'는 것이다.

지난 2003년에는 SK가 헤지펀드인 소버린에 경영권을 뺏길 뻔한 사례가 있었다. 이때 소버린이 지분 14%를 확보했고, SK는 13%로 밀렸는데, 당시 최태원 회장 등 경영진은 보유 중인 자사주를 하나은행에 매각해서 우호지분을 만들었고 가까스로 위기를 면했다. 최근엔 글로벌 사모펀드의 활성화 추세 속에 이런 경영권 공격은 더 거세지고 있는 게 현실이다. 특히, 자본력이 취약한 중소기업이나 벤처기업의 경우에는 더 걱정이 크다. 그래서 경제단체들은 준비 기간 확보를 위해 3년 유예기간을 정부에 요구해왔다.

한국 기업들이 자산처럼 활용한 것은 정부 정책 영향도 있었다는 게 재계의 항변이기도 하다. 이전엔 계열사 간 '순환출자'형태로 경영권을 방어했는데, 이런 순환출자는 대주주가 적은 지분으로 기업 지배력을 갖게 되는 문제가 컸다. 2011년 상법 개정에서 정부는 대기업들 중심으로 '지주회사 체제'로의 전환을 유도했고, 한편으론 자사주 관련 규제가 완화되면서 보유가 늘어나는 결과로 이어졌다는 것이다.

이번 법안을 준비한 민주당 오기형 의원은 "핵심은 그동안 기업 이사회가 마음대로 결정하던 것을 주주총회에 맡긴 것"이라고 설명했다. 기업이 자사주 소각이 아닌 보유나 처분이 필요하면 주주들에게 설명하고 허락을 받으면 된다는 의미이다. 그래서 이번 개정안에는 임직원 보상용이나 우리사주조합 이전, 재무구조 개선, 신기술 도입 등에 필요한 경우 주주총회에서 승인을 받으면 보유나 처분이 가능하도록 했다. 우리사주조합이나 임직원에게 자사주를 넘기면 경영권 위협이 들어와도 우호 지분으로 작용할 수 있는 효과가 있다. 하지만, 경영계에선, 기업이 합리적 사유를 설명하더라도, 주주 중에는 단기 수익을 더 우선시 하는 경우가 많고, 주주 중에는 해외자본, 심지어 투기자본 세력도 있기 때문에 승인을 받기가 쉽지 않을 거란 우려가 나오는 게 현실이다.

법무부도 "경영권 방어수단 필요"..보완입법도 준비해야

이번 상법 개정 과정에서 외국에선 자사주 소각을 강제하는 사례가 없다는 반론도 적지 않았는데, 전반적으론 소각 의무 자체는 없지만 자사주의 악용을 막는 장치를 갖췄기 때문에 이런 항변은 설득력이 없다는 지적도 나왔다. 주식시장이 큰 미국, 영국, 일본은 자사주 소각 의무는 없었고, 독일은 자본금의 10% 이내로 제한하고 있다. 하지만, 자사주를 대주주가 마음대로 활용하는 걸 엄격히 막고 있고, 처분할 때도 기존 주주에게 비례원칙 같은 신주 발행절차와 같은 우선권을 주는 게 원칙이다.

다만 이번에 법이 통과되더라도, 경영권 방어 장치를 후속입법으로 고려하는 방안이 필요해 보인다. 실제로 법무부는 이달 초 여당의 자사주 소각 의무화에 찬성하면서도 "경영권 방어 공백을 보완할 수 있는 대체 수단 논의가 필요하다"는 의견을 국회에 전달한 바 있다. 이런 의견은 현행 제도상 자사주가 사실상 유일한 경영권 방어 수단으로 활용되었던 현실을 고려해야한다는 점을 인정한 것으로 볼 수 있다.

예를 들면, 경영권 관련 의결에는 대주주 지분에 투표권을 더 주는 '차등의결권'이라든지, 외국계 투기자본이 경영권을 노릴 때 기업 인수를 어렵게 하는 '포이즌 필' 같은 제도의 도입을 논의할 필요가 있다. 그것은 달라진 세계 질서 때문이기도 하다. 최근에 이른바 '글로벌 스탠더드'를 무너뜨리기 시작한 쪽은 다름 아닌 미국 등 강대국들이다. 특히, 반도체 등 전략물자의 생산시설을 자국 영토에 이전하는 것을 노골적으로 동맹국들에게 요구하는 게 현실이다. 사실상 힘의 우위를 앞세운 무역전쟁 시대를 맞아 한국이 가진 반도체, 조선, 방산, 원전 등의 기술과 대표기업들을 경제의 테두리가 아닌 국가 안보 차원에서 보호하는 것은 다름 아닌 생존의 문제이다.
취재파일 0225
Copyright Ⓒ SBS. All rights reserved. 무단 전재, 재배포 및 AI학습 이용 금지
경제 365
SBS 연예뉴스 가십보단 팩트를, 재미있지만 품격있게!

많이 본 뉴스

    스브스프리미엄

    스브스프리미엄이란?

      댓글

      방금 달린 댓글
      댓글 작성
      첫 번째 댓글을 남겨주세요.
      0 / 300
      • 최신순
      • 공감순
      • 비공감순
      매너봇 이미지
      매너봇이 작동 중입니다.

      댓글 ∙ 답글 수 0
      • 최신순
      • 공감순
      • 비공감순
      매너봇 이미지
      매너봇이 작동 중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