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회에서 올해 예산 얘기가 거의 없었어요. 국회 출입하면서 이런 적이 또 있었나 싶네요."
인사 발령으로 새롭게 꾸려진 2025년 12월 SBS 탐사기획팀 첫 회의. 인사 발령 전 국회를 출입했던 한 동료가 이런 말을 꺼냈습니다.
생각해 보니 정말 그런 것 같았습니다. 초유의 계엄 후폭풍, 그렇게 이어진 탄핵과 대선까지, 2025년은 치열한 정쟁으로 얼룩졌습니다. 입법과 더불어 국회의 가장 큰 임무인 '예산 심사'는 정치인들 입에서 별로 오르내리지 않았습니다. '728조 원' 역대 최대 슈퍼 예산인 만큼 치열한 토론과 심사가 그 어느 때보다 요구됐지만, 국회는 늘 안녕하지 못했고 예산 심사는 그렇게 후순위로 밀렸습니다.
여러 차례 예산 회의록 전수분석을 통해 국회를 감시해 왔던 SBS 취재팀. 그간 축적된 노하우를 바탕으로 내년도 예산안 분석에 착수하기로 했습니다. 올해 예산은 심사 감시 기능이 유독 필요하다고 봤습니다.
지난해 정기 국회, 즉, 예산 국회 당시 347개, 1만 7,111쪽에 달하는 방대한 회의록을 전수분석했고, 꼬박 두 달이 걸렸습니다.
그렇게 얻어진 탐사기획팀의 최종 결론은 이렇습니다.
"부실 심사, 졸속 심사, 어제 오늘 얘기는 아니지만, 올해 예산은 그 정점을 찍었다."
최근 10년 기준, 예결조정소위 개최 횟수 기준으로 5차례로 '최소' 기록,
예결조정소위 논의 시간 기준으로 22.83시간으로 '최단' 기록,
회의 어휘의 예산 관련 텍스트 분석 기준으로 뒤에서 두 번째 기록.
여기에 시간당 '보류' 언급 횟수 '최다' 기록까지….
앞서 저희 SBS 탐사기획팀이 데이터를 기반으로 살펴본 회의록 전수분석 내용은 이랬습니다. 부실 심사를 의미하는 지표들입니다.
그런데, 이런 와중에 의원들이 열의를 보인 예산이 있습니다. 바로 지역 예산이었습니다.
SBS 탐사기획팀은 정부가 국회에 제출했을 때 없었는데, 국회가 신설한 예산을 중심으로 살펴봤습니다. 국회가 예산 심의 과정에서 추가한 예산들입니다.
포항역 전경.
먼저, 포항역 선상연결통로 용역비 예산입니다.
포항시는 포항역 뒷편 철도 유휴부지에 대규모 주차장을 조성하기로 했는데, 이용객들이 주차장에서 역사로 이동하기 위해 주차장과 역을 이어줄 선상연결통로가 필요해졌습니다.
그렇게 관련 예산 2억 원이 추가됐습니다. 해당 지역구의 김정재 국민의힘 의원은 SNS를 통해 국비 예산을 확보했다며 성과를 알렸습니다.
이 예산이 어떻게 논의됐는지 회의록을 찾아봤습니다.
정부는 난색을 표했습니다. 선상연결통로가 필요해진 이유는 포항시가 주차장을 옮겼기 때문이다, 결국, 원인 행위를 포항시가 했으니, 통로 예산도 포항시가 만들어야 한다는 얘기입니다. 같은 당 소속 국토교통위원회 위원인 정점식 의원이 국비 지원이 가능한지 묻자, 국토교통부가 방법을 찾아보겠지만, 쉽지 않은 부분이 있다고 말합니다.
우여곡절 끝에 포항역은 타당성 검증을 위한 용역비 항목으로 2억 원이 신설됐습니다. SBS 취재 결과, 이건 선상연결통로를 짓는 설치비가 아니라, 국비 지원이 타당한지를 검증하기 위한 용역비로 확인됐습니다. 사실상의 절충안인 셈입니다.
회의록에서는 이런 전후 사정을 확인할 수 없었습니다.
김정재 의원실 측은 SBS에 "포항역은 포항시민뿐만 아니라 전 국민이 모두 이용하는 시설인 만큼 국비 지원이 필요하다"고 밝혔습니다.
익산역 전경.
다음으로, 전북 익산역 확장 및 선상주차장 조성 사업 예산 10억 원입니다. 역시, 정부가 제출할 때 없었던, 국회 신설 예산입니다.
해당 지역구 한병도 민주당 의원 역시 SNS를 통해 국비 예산을 확보했다고 성과를 알렸습니다.
익산역 관련 예산으로는 서부주차장 주차타워 조성 사업과 관련해 논의가 있긴 했습니다.
정부가 난색을 표하면서 이 예산은 반영되지 않았습니다.
반면, 예산이 반영된 익산역 확장 및 선상주차장 조성 사업 예산은 공식 회의록에서 그 근거를 찾을 수 없었습니다.
어떻게 신설된 것인지 취재했습니다. 원래 이 사업은 지난해에도 10억 원이 국회에서 신설됐는데, 이 가운데 1억 5천만 원을 쓰고, 8억 5천만 원은 이월된 걸로 확인됐습니다. 국토부는 지난해 배정된 예산으로 올해까지 사업을 진행할 수 있을 거라고 판단해 정부안에는 반영하지 않았다고 설명했습니다.
한병도 의원실 측은 SBS에 "익산역은 이용객이 증가하고 있지만 역사가 개선되지 않고 있는 만큼 꼭 필요한 예산"이라는 입장을 전해 왔습니다.
이 뿐 아닙니다. 예결위 회의에서 공식적 논의 없이 68억 원이 신설된 '구로역 동서문 출입구 및 진입로 신설' 사업, 정부서 거듭 난색을 표해 상임위에서 보류됐다가 결국 2억 원이 신설된 충북 제천의 '스마트 생활소음 실증평가 및 층간소음 체험센터 구축 사업' 등 어떻게 예산이 배정됐는지 공식 기록으로는 알 수 없는 사업들이 수두룩했습니다.
SBS 탐사기획팀은 올해 예산 가운데 국회에서 새롭게 만들어진 신규 사업 예산을 전수분석했습니다. 모두 441개로 집계됐습니다. 이 가운데 사업명에 지역 이름이 들어간, 지역성 사업은 232개로 전체의 52.6%에 달했습니다.
그렇다면, 의원님들이 늘린 지역성 예산은 주로 어떤 분야일까요. 국회에서 늘린 지역성 예산은 3,029억 원이 넘었는데, 이 가운데, '교통 및 물류' 항목이 1,309.3억 원, '국토 및 지역 개발'이 172.2억 원, 이 두 분야를 보통 '사회간접자본(SOC)이라고 부르는데, 이런 SOC 예산이 국회발 신규 예산의 48.9%에 달했습니다.
국회발 신규 예산이 선심성 SOC 분야에 몰린다는 지적, 어제 오늘 나온 게 아니었는데, 올해도 마찬가지였습니다.
물론, 지역 발전을 위해 국회에서 예산을 신설하는 건 문제가 아닙니다. 국회의원은 국민의 대표이자 지역민의 대표이기도 하기 때문입니다.
다만, 지역을 위해 꼭 필요한 예산인지, 실질적으로 도움이 되는 예산인지는 국민들이 따져볼 수 있어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기록에 남겨야 합니다. 안타깝게도 지역성 예산 상당수는 이런 흔적을 찾아볼 수 없었습니다. 전편에서 말씀드린 대로, 증액 심사가 제대로 이뤄지지 않았던 까닭이 큽니다.
다음 편에서는 국회가 올해 예산 심사 과정에서 첫 성과로 내세운 '농어촌 기본소득 시범사업' 관련 예산을 꼼꼼히 따져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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