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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파일] "먹을 수 있는데 버려진다"…정부가 배달앱까지 끌어들인 이유

몇 시간 차이, 점심이냐 쓰레기냐

서울 역삼동의 한 편의점. 11시 40분쯤 스마트폰을 든 손님이 들어왔다. 직장인 김진희 씨는 미리 앱으로 주문해둔 김밥 세 줄을 카운터에서 받았다. 정가의 절반도 안 되는 가격이다.

이 편의점은 자체 앱을 통해 소비기한이 임박한 간편식을 '마감 할인' 상품으로 노출한다. 소비기한이 3시간 이하로 남으면 상품이 자동 등록되고, 고객은 결제 후 매장에서 찾아간다.

하지만 계산대 바깥 풍경은 다르다. 뒤편에서는 소비기한이 지난 도시락들이 음식물 분쇄기로 들어간다. 하루에도 몇 번씩 반복되는 풍경이다. 누군가의 점심이 될 뻔한 음식이, 몇 시간 차이로 쓰레기가 된다.
 

싸게 먹고, 버리는 건 줄이고

김진희 씨는 대학 시절 편의점에서 일한 적이 있다.
"예전에 편의점 알바를 해봤었는데, 생각보다 폐기량이 많았어요. 근데 정말 상품 자체는 전혀 문제가 없었거든요."
그는 요즘 마감 할인을 자주 이용한다. 앱에서 알람을 설정해두고, 원하는 메뉴가 뜨자마자 주문한다. 인기 메뉴는 금방 사라진다.
"밖에 점심 먹으러 나가면 가격도 비싸고, 줄 서는 게 힘든데요. 여기서 사면 편하고, 할인도 되니까요. 먹고 싶은 거 있으면 미리 딱 뜨자마자 신청해야 해요. 금방 없어져요."

매장에서도 체감 변화가 있다는 말이 나온다.
"버려지는 음식물 쓰레기가 가시적으로 줄었습니다. 매일 편차가 있어서 평균을 내기는 어렵지만, 어떤 날은 버려지는 양의 절반 가까이 줄기도 했어요"

GS25는 2023년 11월부터 마감 할인 서비스를 운영 중이다. 점포마다 편차는 있지만, "폐기 직전에 많이 남아 있어도 픽업이 진행되고 나면 버려야 할 양이 확실히 줄어드는 게 보인다"는 게 현장 설명이다.
 

481만 톤, '낭비'는 쓰레기통에서 끝나지 않는다

이렇게 버려지는 음식은 얼마나 될까.
정부 공식 통계에 따르면 우리나라 음식물류 폐기물은 2023년 기준 연간 481만 톤, 1인당 하루 0.25kg 수준이다.

하지만 분석 범위를 유통과 외식 부문까지 넓히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유엔환경계획(UNEP)은 각국의 산업 구조와 소득 수준 등을 반영한 모델링을 통해 한국의 배출량을 하루 약 0.36kg으로 추산했다. 가정용 쓰레기뿐 아니라 편의점·마트(유통)와 식당(서비스) 등에서 발생하는 폐기량까지 통합 반영했기 때문이다. 이 기준(가정+유통+외식)으로 비교하면 우리나라는 미국(0.44kg)보다는 적지만, 일본(0.22kg)이나 싱가포르(0.34kg) 등 주변국보다는 여전히 많다. 특히 일본은 우리와 식문화가 유사함에도 통합 배출량이 우리의 60% 수준에 불과해, 유통·외식 단계의 감축 노력이 시급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음식물 쓰레기는 단순한 '낭비'를 넘어 심각한 기후 문제이기도 하다. UNEP는 음식물 손실과 폐기가 전 세계 온실가스 배출의 8~10%를 차지한다고 지적한다. 음식을 만들고 운반하는 에너지가 통째로 버려지는 데다, 썩는 과정에서 메탄까지 발생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버리지 않게 만드는 장치" 자체가 중요한 기후 대책이 된다. '마감 할인'이 단순한 상술을 넘어, 폐기량 자체를 줄이는 유력한 대안으로 주목받는 이유다.
 

"1년 평균 15%는 무조건 버려진다고 봐야 돼요"

동네 빵집을 비롯해 떡집, 반찬 가게 등 50여 곳이 입점한 마감 할인 플랫폼 '마구마켓'. 이 서비스를 운영하는 베이커리 대표 고현준 씨를 만났다.
"폐기는 매일 발생할 수밖에 없어요. 아무리 보수적으로 잡아도 생산이 항상 많아야 되기 때문에. 1년 평균으로 하면 15% 정도는 무조건 버려진다고 봐야 돼요."

그는 처음엔 그냥 버렸다. 그다음엔 기부했다. 하지만 기부된 빵도 결국 상당수가 폐기되는 걸 보면서 다른 방법을 찾기 시작했다.
"기부하기 전에 한 번이라도 고객들을 더 만날 수 있게 제공을 하거나, 혹은 나가서 기부된 것도 폐기되는 게 많기 때문에 근본적으로 폐기량을 줄일 수 있는 방법이 있지 않을까 싶어서 시작했습니다."

고민 끝에 마감 할인 플랫폼을 직접 만들었다. 하루가 지나면 버려질 빵을 묶음으로 싸게 판다. 2만 원어치 빵이 5천 원 정도에 나간다. 결과는 수치로도 남았다.

"2024년 마감 할인을 했을 때랑 안 했을 때랑 비교하면, 폐기되는 양이 30% 이상 줄었습니다. 고객들이 다시 방문해 주시는 경우도 많고요. 선순환 구조가 되고 있어요."
 

"95%가 모르세요"…확산의 벽은 '인식'과 '노출'

하지만 이런 실험이 확산되기까지는 벽이 있다. 고현준 대표는 '버려지는 음식'이라는 인식부터 바뀌어야 한다고 말한다.
"우리나라에서는 버려지는 음식이라고 생각해요. 실질적으로 먹을 수 있고, 팔리지 않아서 버려지는 건데. 한 번이라도 고객들이 더 만날 수 있으면 좋은데."

점주들의 우려도 걸림돌이다.
"음식점주 분들의 생각이 더 바뀌어야 돼요. '브랜드 가치를 훼손시킨다'고 생각하시는 분들이 많은데, 전혀 그렇지 않거든요. 오히려 친환경이라는 이미지까지 가져갈 수 있는 사업이에요."

그가 체감하는 가장 큰 문제는 "알려지지 않았다"는 점이다.
"95%가 모르세요. 아무리 사업적으로 풀어 나간다고 하더라도, 정부에서 좋은 취지의 서비스라고 홍보를 해 주시면 더 많이 활성화될 수 있을 거라 생각합니다."
 

'1kg을 살리면 2.7kg이 줄어든다'는 계산

해외에서는 이 흐름이 이미 하나의 산업으로 자리 잡았다. 2015년 덴마크에서 시작된 '투굿투고(Too Good To Go)'. 남은 음식을 앱에 올리고, 소비자가 묶음으로 찾아가도록 연결하는 플랫폼이다. 현재 유럽과 북미 17개국에서 14만 개 매장이 참여한다.

투굿투고는 2023년 한 해에만 1억 2천만 끼가 넘는 음식이 버려지지 않고 소비자와 연결됐다고 밝혔다. 전년 대비 46% 증가한 수치다. 그리고 이 플랫폼은 "절감 효과"를 숫자로 제시한다.

음식물 쓰레기 탄소배출 감소

투굿투고가 의뢰하고 옥스퍼드대·WRAP 등이 검토한 전 과정 평가 결과에 따르면, 음식 낭비를 1kg 줄이면 온실가스 2.7kg 감소는 물론, 연간 2.8㎡의 토지 보존과 810리터의 물 절약 효과가 뒤따른다. 1kg의 음식을 살리는 것이 거대한 환경 보호로 이어지는 셈이다.
 

그래서 배달앱까지…'노출' 키워 확산 속도 올린다

한국 정부도 움직였다. 기후에너지환경부는 배달의민족, 쿠팡이츠, 요기요 등 배달 플랫폼 3사와 협력 체계를 구축했다.

오는 3월부터 배달앱에서도 마감 할인 상품을 구매할 수 있다. 샐러드, 샌드위치처럼 소비기한이 수 시간 단위로 짧은 신선식품이 주력 타깃이다. 배달이 아닌 '픽업' 방식이다. 매장의 재고 정보를 실시간으로 소비자에게 전달해 "한 번 더 팔 기회"를 넓히겠다는 구상이다.

배달 플랫폼 3사가 참여하면서 기대되는 건 '실시간성'이다. 특히 샐러드나 샌드위치처럼 소비기한이 수 시간 단위로 짧아 재고 관리가 까다로웠던 신선 식품 업종에 활로가 될 전망이다. 점주가 일일이 대응하기 힘들었던 마감 직전의 재고 정보를 배달 앱이 실시간으로 인근 소비자에게 '픽업' 주문으로 연결해 주기 때문이다.

올해 하반기부터는 참여 매장과 소비자에게 탄소포인트도 지급한다. 현금처럼 쓸 수 있는 인센티브로 참여를 끌어내겠다는 것이다.
편의점 음식, 마감 할인

'확산' 다음은 '정착'…성과가 보이는 구조가 필요하다

배달앱이 들어오면 확산 속도는 빨라질 수 있다. 수천만 명이 쓰는 플랫폼에서 마감 상품이 '보이기' 시작하면, 소비자의 선택지는 넓어진다. 소규모 가게가 혼자 감당하던 홍보·노출의 벽도 낮아질 수 있다.

다만 시장이 커질수록 중요한 건 "정책 목적이 흐려지지 않는 것"이다. 마감 할인은 결국 '폐기 감축'이 목표다. 참여가 늘어나는 만큼, 실제로 무엇이 얼마나 줄었는지 현장에서 체감되는 변화가 구조적으로 확인되고 공유되는 단계로 넘어가야 한다.

정부가 배달앱까지 끌어들인 이유는 단순히 "할인을 늘리기 위해서"가 아니라, 쓰레기통으로 향하던 음식을 "한 번 더 팔 수 있는 길"로 돌려세우기 위해서다. 그 길이 더 넓어진 만큼, 이제는 그 변화가 일상에서 '습관'과 '문화'로 자리 잡을 수 있도록 설계하는 단계가 남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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